:::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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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6. 제자 이승만에 대한 서재필의 날카로운 비판-애국을 빙자한 사욕,사재축적한 매국노




당시 이승만 심판위원회의 위원장은 나 창헌, 위원은 곽 헌, 채 원개, 김 현구 등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승만이 강제 축출된 후 이튿날,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쓴 69 세의 백암 박은식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2주 뒤 4월 7일에는 대한민국 임시헌법 공포식을 거행할 신임 의정원 의장 최 창식이 일어나 개회를 선언하고 나서 「민도의 향상과 시대의 대세며 우리의 모든 사정에 대조하여 새로이 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현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 각하가 공포하겠다」고 하자 박은식이 일어나서

「이제 본 임시 대통령은 인민을 대표한 임시 의정원에서 임시헌법 제 11 조에 의하여 대한민국 7년(1925) 3월 30일 임시의정원에서 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공표하나이다」라는 인사말에 이어 개헌을 선언하고 동시에 국무총리 겸 군무총장에 노백린 등 신임각료를 선정했다.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 - 그는 1857년 항해도 해주 생으로 갑신정변, 갑오경장, 청일전쟁, 동학혁명 등의 역사적 격랑을 몸소 체험했으며, 장 지연, 남 궁억,유 근 등이 <대한 황성신문>을 인수하여 국한문 혼용의 <황성신문>으로 발간하자 1898년 42세의 나이로 주필로 취임하여 민족혼을 진작시켰으며, 1902년 46세 때에는 이 상재, 민 영환, 이 상설, 이 도재, 이 동휘, 양 기탁과 함께 <개혁당>을 발기한 바 있으며, <서북 협성학교> 교장을 지낸 바 있다.

또 그는 한일합방을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서북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데, 당시 베델이 창건하고 양 기탁이 다리를 놓아 항일언론을 펴 온 <매일신보>에는 <서북학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는데 박은식은 <매일신보>의 주필을 맡아 단재 신 채호, 장 도빈, 옥 관빈, 변 일 등의 편집진 동지들과 함께 구국운동의 호흡을 함께 하고

이 갑, 안 창호, 양 기탁, 안 태국, 임 치정 등 <서북학회> 인사들과 <매일신보>를 함께 운영하며 암울한 난세를 같이 호흡하며 교유했던 민족 지도자였다.

그는 한일합방이 되자 최 남선이 설립한 <광문회>에서 고전간행을 통해 민족혼을 고취하다 1911년 고구려 환도성이 있던 서간도 환인현에서 <동명왕실기><명림답부전><천개소문전><몽견금태조전> 등의 저서를 탈고하고

1918년 3월에는 46세 이상의 회원으로 이루어진 <노인동맹단>을 결성한 바 있으며 이듬해 3.1 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한성정부」에 평정관으로 추대되었으며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어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렀다.

박은식은 대통령에 취임한 바로 그 해 11월 1일 신병으로 서거했으니 인재가 부족했던 임시정부로서도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서거하자 임시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흠모해 최초의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상해와 국내는 물론 동경, 남경의 교포사회에서까지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백범일지에 자세히 소개되어 나오지만 임정의 수위로 자처하고 나선 김구는 경무국장에서 1923년 내무총장, 1927년 국무령이 되어 임정의 첫 내각을 조직하고 의정원에 개헌안을 제출하여 독재적인 국무령제를 평등한 위원제로 정함으로써 이 승만의 경우에서 본 것처럼 말썽 많은 정부 수반을 없애고 집단 지도체제를 채택했으며 호선제로 서로 돌아가며 선출될 수 있는 무 특권의 주석을 국무회의에 두었다.

월 35달러의 임정청사의 월세가 6개월이나 밀려 임정 주석인 김 구는 끼니조차 잇지 못해 잠은 서너 평에 불과한 임정 청사에서 자고 밥은 상해에서 돈을 버는 교포들이 번갈아 가며 먹여주어 반 거렁뱅이 처지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었는데 반해 이 승만은 미국에서 수십만 불의 한인 독립자금을 거두어 호의호식하며 독식했다.

그러한 이중적인 이 승만에 대해 서 재필은 자서전에서 제자 이 승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독립운동을 하다보니 2년 반 동안에 그간의 사생활에서 근근히 저축한 사재 7만 6천불을 전부 탕진하여 무일푼이 되었다......애국운동을 빙자하고 사욕을 채우고 사재를 축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로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서재필로서는 더욱 더 믿었던 사람이었기에 필경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같이 독립운동을 하던 왕년의 제자 이 승만이 임정의 대통령을 사칭하면서 교포의 돈을 긁어모으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임정의 추인으로 합법화해 준 격이 되었지만 애국운동을 빙자해 사욕을 채우고 사재를 축적한 바로 그 돈이 실은 나라까지 팔아먹으며  국채까지 발행해 끌어 모은 돈이 아니었던가.

동시에 상해 임정의 수반 김 구 주석은 거지꼴로 부랑자처럼 임정 사무실의 좁은 골목 주변을 허기진 채 어슬렁거렸던 것이다. 거지꼴을 한 백범 김 구가 거지 복색의 다 떨어진 옷 속에 이 봉창의거를 위한 수류탄 2개 구입 비를 숨기고 다닌 일화는 같은 한민족의 후손으로 참으로 가슴 저미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럼 미국 교포들의 이민사 뿌리와 당시 미국 교포사회의 분위기 및 박 용만과의 관계를 간략히 조명해 보자.

한국 최초로 공인된 미국방문은 1883년 9월 2일 한미수호조약 체결에 따라 민영익, 홍 영식 일행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이 처음이다. 이후 주미공사 박 정양을 비롯 서 광범, 박 영효, 서 재필, 유 길준, 윤 치호, 김 규식 등이 속속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뒤, 1902년 하와이 설탕농장 경작자 회의에서 한국 정부에 설탕농장 노동자 모집을 요청했으며 한국정부에서는 <수민원(綬民院)>이란 기관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이민사업을 실시했다.

이러한 하와이 이민을 전후해 안 창호, 이 승만, 정 한경, 박 용만(1904)도 도미하게 된 것이며 1906년 2월 15일 해외 한인에 대한 보호 권이 일본에 넘어가자 반발적으로 재미 한인들이 뭉치게 되었다.

이에 박 용만은 1909년 당시 배일성향을 보였던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덴버에서 해외 각처의 단체를 규합하여 이 승만, 윤 병구, 이 관용 등과 함께 애국동지 대표대회를 개최해 조국의 독립쟁취에 대한 행동통일을 모색했다.

재미 한인회의 독립노선은 크게 첫째, 상해 임정과 중국, 소련 등 대부분의 주류 독립운동가와 노선을 같이 한 박 용만의 강경 무장항쟁주의와 둘째, 도산 안 창호의 흥사단을 통한 백년대계를 지향하는 교육주의 그리고 셋째, 임정의 반발을 크게 불러일으킨 이 승만의 반동 친미 외교주의 등 세 갈래의 노선이 있었다.  

이 승만은 영어공부를 위해 배재 학당에 들어갔다가 사귄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미국에 갔다가 4년 만에 귀국해 신민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길레트, 모트, 비숍 해리스 등 YMCA 미국인 목사들의 힘으로 한국을 빠져나갔으며 한때 옥중에서 함께 고생한 박 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에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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