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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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24. 이승만의 추태와 매국노라 지탄한 박용만, 이승만을 비난하고 국무총리를 사퇴한 이동휘& 신채호, 김창숙의 분노와 성토및 탄핵





그리고 이 동휘가 이 승만 때문에 국무총리 취임을 1919년 11월 3일까지 연장한 것은, 표면상 위임통치를 주장한 이 승만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밝혔으며, 신채호 등의 민족 지도자가 임시정부를 떠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승만의 위임통치 제안 때문이었던 것으로 그는 제 1회 의정원 때 이승만의 대통령 선출을 정면으로 반대하였었다.' 

이승만때문에 임정 국무총리를 그만둔 이동휘 선생
무장항쟁주의 독립운동가 임정주석 김구 선생
이승만 탄핵후 임정 대통령이 된 백암 박은식 선생
성균관대 설립자 심산 김창숙 선생
  
                                            
                                              
                                              
                                            
                                          

                                                방송일: 20040130
                                                  


                                              
동영상 :  
                                                   
                                              

 
또 안 창호는 당시 임정 당시의 주류에게 외교와 군사활동을 시인하면서도 너무 장기적인 안목에서 실력양성 지상주의에만 치우쳐 화급한 독립운동은 경시하고 흥사단 같은 수양단체를 통해 무장항쟁주의로 독립 운동하던 정국과는 동떨어지게 스마일 운동이나 전개하고 무정한 사회를 멀리하고 유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등 현실과 유리된 주장을 해 세월만 낚은 사람 평을 듣긴 했지만(이 강훈은 안 창호의 흥사단은 수양단체지 독립운동단체가 아니라 잘라 말하고 있다)

그 역시 이승만의 노선을 결코 좋지 않게 보았으며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하와이에서 군사학교를 세우고 무장항쟁의 독립의욕을 불사르던 임정 외무총장 박용만도 독립운동 자금만 축내고 있는 외교독립 노선의 이승만을 매국노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상해임정청사,*1919년 9월 17일 제6차 임시의정원 폐원식 기념 촬영. 앞줄 왼쪽부터 이유필.신익희.윤현진.안창호.손정도.정인과 한 사람 건너 황진남, 둘째줄 오른쪽 김구, 다섯째줄 왼쪽 첫번째 여운형.1919년 4월 10-11일 양일간, 상해 프랑스조계에서 항일지사들 30명은 각도 대의원 자격으로 제1회 '임시의정원'을 개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선포했다. 같은해 8월 18일 개원한 제6차 임시의정원은 9월 11일 '노령국민회'를 흡수, 국내의 '한성정부'를 통일정부로 삼아 8장 56조의 개정헌법을 공포하고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장 이동녕, 재무총장 이시영, 군무총장 노백린, 법무총장 신규식, 학무총장 김규식, 외무총장 박용만, 교통총장 문창범, 참모총장 유동열, 노동국총판 안창호로 내각을 개편하였다.,(문화일보, 백범김구의 겨레사랑,1995, 41)


이 승만은 구미 위원부를 임시정부의 의정원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만들어 임시정부의 대행기관이자 자신의 직할기관으로 삼아 임시 정부 어느 부처의 감독도 받지 않으며 구미한인들의 독립자금을 전용해 썼으며 심지어 미국정부에 위임통치 청원서까지 넣는 추태를 보였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지

이로 인해 동포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 단재 신 채호를 비롯한 애국 독립운동가 54인의 이름으로 다음의 성토문이 발표되기 까지 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 핵심만 추려 뽑아 전하면 다음과 같다.  

         <성토문>
우리 2천만 형제 자매에게 향하여 이 승만, 정 한경 등 대미 위임통치 청원과 매국매족의 청원을 제출한 사실을 들어 그 죄를 성토한다. 이 승만 등의 그 청원 제출은 4252년(1919) 3월경 우리 나라 독립운동 발발과 동시라 /중략/

미령의 동포들은 국민회의 주동으로 각처가 향응하여, 노동소득의 피땀으로 모은 돈을 거두어 평화회의에 조선 독립문제를 제출하기 위하여 대표를 뽑아 파리에 보내려 할 때 이 승만과 정 한경 등이 뽑힌 바 되어 출발하려다가 여행권을 얻기 어려워 중도에서 체류할 때 그들이 합병 10년 동안 남의 식민지 된 통한을 잊었던가,

독립을 위하여 칼 끝에,  총탄에, 그리고 악형에 쓰러진 선충 선열이 계심을 몰랐던가, 자고로 조선을 독립국이 아닌 줄로 생각하였던가. 거연히 위임통치 청원서 즉, 조선이 미국 식민지로 되어지이다 하는 요구를 미국정부에 제출하여 매국 매족의 행위를 감행하였도다.

독립이란 곳에서 뒤로 물러섰던 매국적 이완용이 되거나, 합방론자의 송 병준이 되거나, 자치 운동자의 민 원식이 되어 나라를 그르치는 요물이 발작하리니 독립의 큰 목표를 위하여 이 승만과 정 한경을 성토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방관자의 안중에는 조선이 이미 멸망하였다 할지라도,

조선인의 심중에는 영원 독립의 조선이 있어, 일본뿐 아니라 곧 세계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우리 조선에 향하여 무례를 가하거든 칼로나, 총으로나 아니면 적수공권으로라도 혈전함이 조선민족의 정신이라.

만일 이 정신이 없이 친일 하는 자나 미국에 친미 하는 자나 친영, 친로 하는 자는 그 나라에 노예 되기를 원하는 것이니 조선민족은 세세 생생 노예의 한 길에서 윤회되리니 독립정신을 위하여 이 승만, 정 한경 등을 주토(誅討) 매장 아니할 수 없다./중략/

위임통치 청원에 대하여 재미 국민회 중앙 총회장 안 창호는 동의든지 묵인이든지 2회의 주간자로서 이 승만, 정 한경을 대표로 보내어 그 청원을 올렸으니 그 죄책도 또한 용서할 수 없다.

상해 의정원이 소위 임시정부를 조직할 때에 벌써 전파된 위임통치 청원 운운의 설을 이 승만 등과 사감 있는 자의 말만 들어냈다 하여, 철저하게 조사 탄핵하지 않고 이 승만을 국무총리로 추정한 것도 천만의 경거이어니와, 제 2차 소위 각원을 개조할 때에는 환하게 그 청원의 제출이 사실됨을 알았는데 마침내 이 승만을 대통령으로 선거한 죄는 더 중대하다.

또한 특파대사 김 규식이 구주로부터 돌아와 "조선과 같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어찌하여 위임통치 청원자 이 승 만을 대통령에 임명하였느냐"하는 각 국 인사의 반문에 아무 답변할 말이 없었다 하여 만방에 웃음거리가 된 실상을 전하거늘,

그래도 이 승만은 존대하겠다 하여 그 범죄의 탄핵은 없으며 그 청원을 취소시킬 의사도 없이, 오직 옹호의 획책에 열중하는 의정원이나 각 원이란 자 그 누구누구들의 심리를 알지 못 하겠도다./중략/


이제 대중의 주목을 불구하고 엄연히 상해로 와서 소위 대통령의 명의로 여론을 농락하려 하니 ,이는 화심(禍心)을 품은 역적이 아니면 구차용록(苟且庸錄)의 비부(鄙父)라. 역적이나 비부를 가차하여 국민의 명예를 오욕하면 또한 가통하지 아니한가./생략/  단기 4254(1919) 4월 19일 신채호 김창숙 외 52인  

당시의 상황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3.1운동이 있은 직후의 상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 성토문에서 본 바와 같이 각계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물의를 일으켜 매국노로 지탄을 받던 이 승만이 눈먼 간부 몇몇에 의해 추대되어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위해 20년 12월 8일 상해로 들어오자 상해임정은 이 승만의 독단적인 구미 위원부 설치 건과 미국위임 통치 건으로 격노하기 시작했다.

이 동휘는 당시 러시아 거류 동포사회에서 조직된 국민의회가 임정으로 통합되면서 그 대표 자격으로 국무총리가 된 사람인데, 제국주의 시대에 무장항쟁은 기피하고 미국에서 교포들의 독립운동 자금이나 축내고 앉아 미국의 신탁통치나 주장하는 신 사대주의자 이 승만의 경거망동을 격렬히 규탄하고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는 임시정부에서는 일할 수 없다 하여 국무총리직을 사직하고 말았다.

그는 코민테른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받아 『고려 공산당』을 만들어 이이제이 정책으로 매국 이 승만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비록 이 동휘가 당시 일세를 풍미한 볼셰비키 혁명의 시류를 타고 코민테른으로부터 받은 독립자금을 상해임정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끌어들이긴 했으나 실제로 그가 레닌 막스주의로 무장된 공산주의 혁명가는 전혀 아니었다.

이는 상해임정 대부분의 고위간부가 그러했던 것처럼 당시 대부분의 민족운동가들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인적, 물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작은 세력끼리 힘을 연합해 큰 세력을 먼저 깬 다음 마지막으로 연합했던 세력 마저 깨는 공산당식 통일전선 전술전략의 일환으로(도쿠카와 이에야쓰가 대표적인 예) 볼셰비키 세력과 연대했던 것과 같은 성격의 것이었다.

당시 상해 임정은 그러쟎아도 독립운동자금 부족에 허덕이던 인사들이 이 동휘, 이 한영, 김 입 등을 중심으로 해 레닌을 통해 코민테른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끌어들여 고려공산당도 만들고 하는 바람에 이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는 것을 극력 반대하는 등 많은 논란이 있었다.

안 창호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그 중에서도 코민테른의 자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는 것을 완강히 반대했다. 물론 그가 독립운동 자금을 특별히 마련할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민족 운동가들이 이 승만을 반대해 임정을 떠나가고 국무총리인 이 동휘 마저 이 승만을 신랄히 비난하며 국무총리직을 사퇴해 버리자 임정은 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시 이 승만이 책임 당사자로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단지 현상유지만을 반복할 뿐 혼란한 정국을 타개할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이 승만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온건파마저 실망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국해법에 뾰죽한 방법이 없었던 이 승만은 단지 수 차례에 걸쳐 사퇴의 뜻만 번복하며 정국을 난마와 같이 혼미하게 하다가 일방적으로 신 규식을 임정 국무총리 서리로 맡긴 채 표표히 미국으로 꽁무니질 치고 말았다.

이는 이 승만이 상해 임정체류기간 동안 매국노로 완전 왕따 당한 정치적 고립무원 속에서 더 이상의 상해 체류가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 보고 임정 의정원에서 가결될 가능성도 없는 신규식을 미국에서 원격조종할 요량으로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해 놓고 황급히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가 떠난 것은 말이 좋아 황급히 떠난 것이지 대부분의 임정 요원들에게 매국노로 왕따 당해 사실상 쫓겨난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 승만이 자신의 처신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수 차례에 걸쳐 우유부단하게 사퇴번복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한 안 창호, 박 은식, 원 세훈은 마침내 이승만과의 갈등과 불화를 종지부 찍고 투쟁노선을 무장항쟁주의로 단일화하고 총의를 모으기 위해 <국민 대표회> 소집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당시 단재 신채호의 「군사통일 촉성회」에서 주도하고 있던 <국민 대표회> 소집 계획이 만주를 비롯한 해외 동포사회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자 대세를 보고 국민 대표회 소집을 제안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복안을 간직한 안 창호, 김 규식은 마침내 임정내각에서 사퇴하고 말았다.  

당시 북경은 이승만의 빗나간 외교주의 노선과 임정을 배제한 독단적 구미위원부 설치운영, 미국 위임통치 요청 등 매국 행위에 반대해 임정과 인연을 끊은 단재 신 채호, 이 회용, 박 용만 같은 무장항쟁 지상주의자들의 총 집결지였다.

마침내 이승만의 외교론에 반대한 그들은 1921 년 5 월 10 일 10 여 개 무장 항쟁 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군사통일 주비위원회>를 열고,   만주 시베리아에서의 무장 독립전쟁을 통일적이고 조직적으로 수행할 <통일 사령부>를 임정 군무부 산하에 설치할 것인지의 여부 문제를 거론했다.

이 회의에서  이승만의 노선에 반대해 이승만과 격렬히 싸우고 법정투쟁까지 벌인 박 용만의 <하와이 대표단>은 이 승만의 미국 위임통치 문제를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당시 만주 일대에서 싸우던 무장 항쟁단체들은 정보에 어두워 이 승만의 노선과 정책을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는데 실질적인 독립운동 대표단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승만의 비리가 폭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대표단 전원은 이승만을 불신임하게 되어, 이승만이 사퇴하지 않은 상해 임시정부 자체를 만장일치로 불신임함과 동시에 <국민 대표회> 소집을 결정했으며 신채호를 주간으로 하여 <대동(大同)>이란 주간지를 발행했다. 나아가 임시정부 당국에게 <군사통일회>의 이름으로 임시정부 및 의정원을 불신임하고 무효를 선언하는 통첩까지 발부했다.

상해의 안창호는 이보다 이틀 뒤인 5월 12일 여운형과 함께 신채호가 주도하는 국민대표회 소집의 필요성을 시국강연회를 통해 처음 공개화 하더니 6월 6일에서야 비로소 <국민대표회 기성회>을 출범시켜 스스로 회장이 되었다.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도 <국민대표회>에 대해 찬성하는 논조의 글을 싣기 시작했으며 안창호의 기성회는 북경과 협의해 <국민대표회>로 발전되었다.
한편 미국으로 꽁무니를 뺀 이승만은 1922년 1월 뉴욕 대한인 공동회를 열어 국민대표회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게 하여 자신의 노선을 비난하는 무장항쟁주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추태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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