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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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19.적산(敵産) 재산 요리한 이승만, 김성수와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망언





말이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해방직후 미국이 접수한 일본인 동산, 부동산 등 남한 재산의 80%에 달하는 모든 적산(敵産) 재산은 우남 이 승만을 비롯 인촌 김성수의 한민당 일당과 이 승만의 반공 이데올로기 치마 안으로 숨어들은 친일파 손아귀로 고스란히 넘어갔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측근들은 아무런 원리원칙이나 법적 근거도 없이 단지 미군정 옹호자이며 이승만 체제 만들기의 옹호자라는 이유만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나누어 먹었다.

또 당시 전체인구의 80%가 농민이었으며 농민의 70%가 소작농이었는데 미군정과 이 승만은 남한경제를 우회 조종할 매판자본가를 만듬과 동시에 이미 성공적으로 토지개혁을 끝낸 북한과 비교해 불만이 고조된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1949년 6월 21일 「농지개혁법」을 제정했다.

「농지개혁법」으로 돈 많은 재벌급 지주들의 땅을 국가가 사 주어 자본가로 변신케 해 매판자본가와 손잡을 수 있게 된 이 승만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원조물자를 넘겨받아 자신과 가까운 이들 매판자본가와 측근과 연관된 상인들에게 매각했다. 이 돈이 정부예산과 미국 감독하에 국방비로 들어갔으며 나머지는 산업은행으로 들어가 다시 매판자본가를 배불리는데 사용되었다.

이로써 미국은 남한을 잉여농산물과 과잉상품을 팔아먹는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게 되었는데 원조물자는 마치 마약상들이 고정된 거래처를 만들기 위해 처음엔 수 차례에 걸쳐 마약을 무료로 나누어주다 막상 중독이 되면 고가로 팔아 이윤을 챙기듯이 초창기에는 원조물자를 무상으로 베풀며 선심을 쓰다 일정한 시점이 도래하면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물 좋은 시장으로 만드는 미끼에 불과했다.

게다가 매판자본가에 의해 헐값으로 대량 판매되는 원조물자의 무차별적인 융단폭격 앞에 중소기업은 모두 도산해 나갔으며 값싼 잉여농산물의 방출로 농민 역시 몰락해 가 끝내는 대규모의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독점자본에게는 오히려 장차 저임금을 바탕으로 엄청난 초과이윤을 가져다 줄 좋은 터전을 제공했다.  

이 승만의 불법자금 형성은 원조물자와 연계한 매판자본가와의 검은 유착 고리와 군사원조가 베풀어지는 연결고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 승만 정권은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빼돌려 배를 채웠다. 석유, 자동차, 자동차 부속품, 식품원료 등 값나가는 것은 물론 심지어 70 만 장병들의 부식비까지 가로챘다. 이것이 악명 높은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오죽했으면 일제의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된 심산 김 창숙 같은  애국자가 보다못해 하야를 요구하는 경고문을 발표했을까.

이들 자금중 상당수가 이 승만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대가로 이 승만은 행정감찰 기구와 국회로 하여금 군 내부의 대규모 부정행위를 덮어주도록 조치했을 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군 내부의 상황에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군사물자의 보급과 사용을 감독하는 미 군사고문단은 한국군과 이 승만의 약점을 잡고 자신들이 의도한 정책을 보다 용이롭게 이루기 위해 정권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이러한 부정행위를 수수방관했다.

  또 다른 이 승만의 돈줄은 미국 원조물자를 값싸게 넘겨받아 가공판매해 부를 축적하고 있던 소수 매판자본가와의 유착관계에서 형성되었다. 당시 이 승만 정권은 원조물자의 배경과 금융대출 등 자본에 사활적 이해가 걸려있는 요소들에 대해 독점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 매판 자본가들에게는 거액의 뇌물을 이 승만에게 바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 승만은 그들에게 세금감면을 비롯 온갖 세제상의 특혜를 베풀었다.

1948년 당시 정부는 <재정협회>라는 기구를 통해 일본인이 두고 간 적산재산인 소위 "귀속재산"을 통제하고 있었으며 국내의 모든 소비자 일용품 분배를 통제하고 주요 기업체를 대부해주는 업무를 통해 특정 매판자본가를 선별지원했다. 이 승만 또는 이 승만과 결탁한 행정관료들과 반대 노선에 서 있던 중소기업이나 구미에 맞지 않는 사기업들은 불리한 대우를 받았음은 두 말할 여지가 없다.      

  미국의 원조물자로 인한 매판자본가의 특혜와 몸집 불리기는 그러지 않아도 중소기업의 몰락과 실업자 폭증, 농민의 파탄을 불러와 사회가 파탄 날 지경이었는데 천 만이 넘는 이산가족의 한은 아랑곳 안 하는 이 승만은 한술 더 떠 미국의 원조 없이도 북진통일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백성을 철권통치로 압박하는 동시에 매판자본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고의로 화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를 야기 시키는가 하면 이들에 대한 각종 세금혜택으로 생민들의 생활고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6.25 당시 서울을 끝까지 지킨다고 허위 선전한 뒤 전격적으로 정부를 부산으로 옮기면서 사회혼란을 빌미로 대전형무소에 수감중인 2-3천명의 정치범 처형명령을 내려 정적들을 무더기로 암매장 살해하기도 했고(휘발유까지 끼얹어 집단 학살한 것으로 밝혀짐)  부산 정치파동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집권연장을 꾀했던 이 승만은 불과 2 년 뒤인 1954년에 대통령 중임제한을 없애고 사실상의 영구집권을 위해 헌법개정을 위한 개헌 가능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부정선거인 소위 악명 높은 사사오입 개헌을 해치우기도 했다.

이 승만은 미국의 원조달러와 원조물자로 배를 두둑이 채운 정, 재계 도둑놈, 매판 자본가들로부터 거액의 선거자금을 긁어모았다.

헌법개정안이 국회의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었던 11월에 개헌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이고 있던 13개 신문과 잡지가 강제적인 폐간 조치를 당했다. 후일 59년 4월 30일 정부비판을 하던 야당지 경향신문 역시 미군정 법령 88호를 법적 근거로 빌미 삼아 폐간되었다.

여기에서 잠깐 독자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조선일보 이 한우 기자가 이 승만에 대해 언급한 말을 상기시켜야겠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견해는 피상적이라고 본다. 사실 50년대를 '독재'라고 하기 위해서는 의회와 언론이 제도적, 구조적으로 탄압 받았다는 명백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역대 정권 중에서 의회와 언론이 가장 자유로왔을 때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서슴없이 자유당 시절을 든다. 물론 말기에 경향신문을 폐간시키는 등 비민주적 행태를 보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 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조선일보 공화국 66쪽>(강준만 박사 著 인물과 사상사 刊)

대한민국 주요 일간지 기자의 글치고는 사관정립이 전혀 안된 참으로 무책임하고 치졸한 글임은 물론이다.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 드골 정부는 친독 비시 정권에 협조했거나 독일에 협조한 친독 매국노를 200 만 명이나 법정에 세워 처단했는데 문인, 언론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부독일 매국노 지식인은 사형, 무기징역 등 법정 최고형으로 처단하되, 언론의 경우 적 치하에서 단 3일간 만 신문을 발행했다 해도 논조와는 상관없이 독일에 협조 내지 공모, 내통한 것으로 보고 사형 아니면 최소 종신형에 처함과 동시에 전 재산 몰수와 공민권 박탈로 강력 처단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드골 정부와는 정반대로 이 승만은 일제치하에서 대표적인 친일 매국노 언론인 방응모의 조선일보와, 경성방직을 통해 대동아 침략전쟁 물자공급을 하며 총독부와 긴밀히 협조체제를 갖춘 친일 매국노 김 성수의  동아일보에 대해  처벌은 고사하고 한민당이라는 정치적인 공생관계 때문에 서로 감싸고 돌지 않을 수 없었다.

드골 치하라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당연히 전 재산 몰수에 양대 사주 공히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에 처해졌을 것이고 당시 기자 직에 종사했던 전 사원은 공민권 박탈을 비롯한 온갖 사회적인 제약에 발목이 잡혀 사실상 영구히 역사의 불명예스런 낙오자로 전락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야  했을 것이다.

친일 매판 자본가들이 진정한 애국자라며 치켜세운 일에서 알 수 있듯이 친일 매국노들이 유일한 정치기반이었던 이 승만은 속사정이 이러했으므로 무엇보다 먼저 조선, 동아의 방 응모, 김 성수를 최고형으로 다스려야 할 입장에 있었던 일제잔재 소탕부대 『반민특위』부터 깨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드골 치하의 프랑스라면 당연히 최소한 종신형이나 교수형에 처해졌을 김 성수는 한민당 당수로 변신하면서 정치적으로 손을 잡은 이 승만에 의해 부통령이 되었고 조선일보 사주 방 응모 역시 이 승만 정권과 공생관계의 밀월시대를 보내며 두 일간지 공히 깔고 앉아 버티기로 마침내 한국의 유력 일간지로 자리잡았다.

이 승만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축출되기 두 달 전 조선일보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정권에 협조한 답례로 '풍우표령지제, 위국언론창달'이란 휘호까지 써서 기증했을 정도로 우호관계였다.

창간 당시 친일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국민협회의 민 원식이 발행한 <시사일보>와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는 조선, 일본 동화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친일단체 대정실업 친목회의 예 종석이 발행 한 것을 방 응모가 인수한 친일지였다. 조선을 인수한 방 응모는 한술 더 떠 노골적으로 친일 행각을 드러냈지만  물론 부분적인 차원에서 <조선><동아>의 뜻 있는 젊은 기자들이 매국적인 사주와는 별도로 구국의 필봉을 휘두른 애국적인 일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일부 애국적인 사회주의 기자였다.

그러나 일찌기 단재 신채호 선생이 민족개량주의나 자치론, 평화주의와 외교주의의 뿌리가 이미 합병 전 1905년 을사조약 때에 싹터 3.1 운동과 상해임정에 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보고

'일본 사람이 동양평화를 그리매 내 붓도 그 그림을 본받아 스스로 일본을 배척한다는 사람을 자처하면서도 일본인이 우리를 마취시키려는 독약을 먹고 일본인의 걸음걸이를 닮던 사람이 몇몇인가'라 자조섞인 말로 말하고

'신문기자는 통곡의 붓으로 이토오 히로부미에게 애걸하며, 조약의 지사는 청원서를 일본천황에게 수없이 제출할 줄만 알았지 일본의 포악하고 도리에 어긋남에 직접 도전하는 이는 없었다.'고 질타하며

'수 백년 비열한 외교 밑에서 생장한 식민지 백성들인 까닭에 무엇보다도 외교를 중시하여 매양 위급 멸망의 때를 당하면 제 3자에 대한 외교는 물론이거니와 곧 위급 멸망의 화를 가하려는 상대자에 대한 외교까지도 서두르니 정신은 의구하다'하여(낭객의 신년만필)

「조선혁명선언:김원봉의 「의열단(義烈團)」에게 행동강령으로 써 준 유명한 글」에서 이 승만의 독립 외교론과 김 성수를 비롯한 친일파의 명분인 독립 준비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단재 신 채호는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으로

「약탈경제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존도 의문스러운데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성이 있겠는가. 또 그러한 문화운동은 식민지 지배권에 반대하여 힘있게 투쟁하지 못하고 단지 식민지 지배세력에 의해 주어진 한계에 순응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결국 식민통치에 봉사하는 매국행위에 불과하다」
「이승만의 외교노선은 2천만 민중의 분용전진(奮勇前進)의 의기를 지워버리는 것」이라는 촌철살인의 지적을 내린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동아일보> 의 발간을 허용하면서 당시 고등경찰 과장 백천우길(白川佑吉)이 문제의 핵심을 짚은 다음의 술회대로 독립외교론과 독립준비론은 일제의 대국적인 문화정책과 자치론에 종속되어 일제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이용만 당하고 결국은 그들의 정책에 협조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적을 알아야 이 쪽의 방비책도 쓸 수 있습니다. 저의 정보망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완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신문을 허가함으로써 그들의 동정을 낱낱이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모아 놓아야만 하루아침 유사시에 일망타진하는 경찰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정간이든 발행중지든 마음대로 시킬 수 있습니다. 그들에 신문을 허용하는 것은 백가지 이득이 있을지언정 한가지 해도 없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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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2580> 3회 연속 비판...<조선> 외부 인터뷰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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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잇따라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나서 언론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2004 MBC 화면


총선 기간중 편파방송 시비로 불거진 MBC와 조선일보의 '언론전쟁' 기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MBC의 기자 비상총회, 조선일보의 전면적 법적 대응 등 초기 격렬한 공세는 줄었지만 장외전을 통한 2라운드는 계속 되고 있다.

MBC는 <시사매거진 2580>과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등을 통해 조선일보의 친일행적과 권력유착, 색깔론, 선거보도 등의 문제점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조선일보측 역시 최근 <시사저널>(757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비판을 '지적 미숙'으로 표현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MBC <시사매거진 2580> 제작진은 지난 23일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조선일보의 <2580> 흠집내기에 대하여'란 제목의 반박문을 싣고 "조선일보는 참 오만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시사매거진 2580>, 조선일보 친일행적 집중 조명

특히 선거일을 앞둔 지난 11일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의 정치개입 사례를 정면으로 다뤄 언론계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는 역대 주요한 선거에서 불공정한 보도로 계속 개입해왔다"면서 "이번 4.15 총선에서도 선거개입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지난 13일 "허위사실에 근거해 지속적이고 악의적으로 조선일보를 비방해온 MBC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반론보도를 요구하는 한편 가능한 모든 수단의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전면전 불사를 선언했다.

그러나 <시사매거진 2580>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지난 18일 '왜 그러나' 편에서 다시 조선일보의 권력지향적 속성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의 지난 12일자 「투표보다 행락 '목금토일 황금연휴' 북적, 동남아·일본 항공예약 매진, 고속철·골프장도 만원」기사와 14일자 「연령대별 투표율이 당락 가른다」기사를 예로 들면서 "특정 세력을 향한 구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가 특정 정당에 편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그 원인으로 "권력지향이 바뀔 경우 조선일보 사주 일가의 과거와 미래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세습 족벌체제인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 위협이 될 만한 법률로 친일진상규명법과 정기간행물등록에관한법, 즉 정간법 2개를 꼽았다.

일제 식민시대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으로 당시 사주였던 방응모씨가 백범 김구 선생이 작성한 친일인사 살생부에 오르는 등 지금까지도 친일시비를 벗지 못하고 있는 조선일보로서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은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시사매거진 2580>의 판단이다. 또 방씨 일가 족벌체제인 조선일보에게 편집권 독립과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정간법 개정 역시 압력으로 작용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직필은 국민이 보호하지만 곡필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시사매거진 2580>은 25일에는 조선일보의 색깔논쟁 문제를 거론하며 "색깔이 다르다고 장관을 끌어내리기도 하고, 국가정책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비판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의 색깔논쟁을 추적하기 위해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먼저 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핵문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무렵, 남북정상회담 제의와 김일성 주석 사망 등 일련의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남북화해 기류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강화했다는 게 <시사매거진 2580>의 지적이다.

특히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조선일보의 이데올로기 공세로 조문사절 파견이 좌절된 사례도 언급됐다. 이후 6년이 흐른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지만 조선일보는 여전히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가 친북이라는 색깔을 씌워 주요 공직자들을 자리에서 끌어낸 사례도 적시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총리,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교수,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정책 자문위원장이 된 최장집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시사매거진 2580>은 조선일보의 색깔시비와 친일행적을 비교하며 "조선일보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할 말을 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하지 못하는 말도 있다"고 꼬집었다.

무슨 말이든 하는 신문이 과거 자신들의 친일행적에 대한 공식 사과만은 왜 하지 못하냐는 반문이다. 되레 지난 3월 발행한 사보 <조선일보 역사 단숨에 읽기>에서 사주 방응모에 대해 "조선일보를 일제시대 최대의 민족지로 키웠다"면서 "일제하 조선일보는 식민지 암흑을 밝히는 민족의 빛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시사매거진 2580>은 전했다.

<조선> "방송 힘만 센 미숙아", MBC "조선은 아집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한편 조선일보와 MBC간의 장외전도 뜨겁다.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의 이한우 기자는 최근 발행된 <시사저널>(757호)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편만 정의고 자기와 다르면 모두 불의라고 매도하는 방송사들이 문제"라며 이를 '지적 미숙'으로 표현했다. 또 "방송이 공영성을 갖추지 않으면 역풍을 맞아 처참하게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오만하면 죽게 돼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자는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이 조선일보를 자주 다루는 문제에 대해 "프로를 보면 부끄럽다고 느끼고 아파야 하는데 오히려 욕을 하게 된다"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방송 기자들은 공공의식과 기자의식이 부족하다, 일부 PD들은 언론인으로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최소한의 의식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시사매거진 2580>은 지난 23일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조선일보의 <2580> 흠집내기에 대하여'란 제목의 반박문을 제작진 명의로 실었다. 제작진은 "경영기획실 소속 기자의 인터뷰는 조선일보를 대표한 것"이라며 "조선일보는 오만함을 넘어 아집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며 이제라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곧 몰락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방송이 공영성을 갖추지 않으면 역풍을 맞아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며 오만하며 죽게 돼 있다"는 조선일보의 경고에 대해 "그 말은 조선일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상기시켰다. 이어 "MBC 시사 프로의 힘은 '순응을 거부'하는 기자들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한 제작진은 "조선일보의 힘은 혹시 '기자들을 장악'한 사주에게서 나오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되물었다.

다음은 이한우 기자의 인터뷰와 <시사매거진 2580> 제작진의 반박문 전문이다.


[시사저널] "방송은 힘만 센 미숙아"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 인터뷰...“더 오만해지면 몰락할 것”  


MBC 보도제작국 기자들은 “조선일보가 제정신을 잃었다”라고 하고 조선일보 기자들은 “MBC가 미쳤다”라고 말한다. MBC가 조선일보에 전면전을 선포한 가운데 조선일보는 MBC가 허위 사실에 근거해 악의적으로 조선일보를 비방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사 경영기획실 이한우 기자로부터 조선일보측의 입장을 들었다.

- 조선일보와 MBC의 감정의 골이 깊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 ‘조선일보, 또 선거 개입’이라고 단정했다. 웃는 박근혜 사진과 찡그린 정동영 사진을 실은 것이 증거라고 한다. 당시 ‘노풍 발언’이 있어 이 상황과 관련된 사진을 안 쓴 신문이 없었다. 이것을 기사로 보는가. 오히려 MBC가 박정희를 논하고, 조선일보의 과거 행적을 들추는 행태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

-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을 도운 것은 사실 아닌가?
한나라당 편드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와 가치가 비슷해 유사한 주장을 하는 정도다. 우리가 한나라당을 위해 사실을 왜곡했는가? 조선일보가 선거에 개입하고 있었다면 MBC가 폭발력을 얻었을 것이다. 자기 편만 정의고 자기와 다르면 모두 불의라고 매도하는 방송사들이 문제다. 지적 미숙이라고 본다.

- 지적 미숙이라니?
방송사와 <오마이뉴스>는 탄핵 촛불에 불을 지르는 매체였다. 방송사는 대통령 탄핵 프로그램을 과하게 편성해 여론을 부추겼다. 탄핵을 총선에 그대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탄핵에 찬성한 의원에게 투표하는 것을 정의에 반하는 행위로 몰고 갔다. 언론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 방송이 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방송은 괴물이 되어 국민을 움직이려 한다. 방송이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자신에게 걸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다만 그 힘에 도취해 있다. 신문도 옛날에 그런 짓 많이 했다. 경찰서 문 뻥뻥 차고. 고압적으로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좋은 대답을 얻어낼 수 있다. 신문에 대한 콤플렉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능력 부족이라니?
방송사 시사 프로가 조선일보를 자주 다룬다. 프로를 보면 부끄럽다고 느끼고 아파야 하는데 오히려 욕을 하게 된다. 기사는 사실에 근거해야 아프다. 일부 방송 기자들의 깊이와 고민이 부족하다. 강준만류 사회과학 소설 몇 권 읽고 시험에 합격했다고 자신이 똑똑한 줄 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방송 기자들은 공공 의식과 기자 의식이 부족하다. 일부 PD들은 언론인으로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최소한의 균형 의식조차 없다. MBC 전체보다는 기자와 이를 걸러 주어야 할 데스크에게 문제가 있다. 법적 소송도 이들에게 집중하는 것이지 MBC와의 전면전이 아니다.

- 방송의 시스템을 문제로 보는 것인가?
조선일보가 보수·우익을 지향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신문은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극우여서 싫다는 사람은 안 보면 된다. 하지만 방송은 선택재라기보다 공공재 성격이 더 강하다. 하지만 방송은 신문보다도 감시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

- MBC에서 징계가 있었다. 어떻게 보나?
이번 사태와 징계는 별개 문제다. 우리는 ‘2580’을 문제 삼는 것이다.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오보는 누가 봐도 당연히 징계할 일이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에 굴복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 이번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방송이 공영성을 갖추지 않으면 역풍을 맞아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오만하면 죽게 돼 있다. 방송은 국민을 가르치려 하는 측면이 있다. 조선일보도 예전에 그런 짓 많이 했다. 일각에서는, 조선일보도 ‘조선일보 짓’ 안하려고 하는데, <오마이뉴스>가 조선일보의 나쁜 것만 따라 하더니 이제는 방송이 ‘조선일보 짓’ 하고 있다고 말한다. 언론은 결국 신뢰성 싸움이다. 조선일보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조선일보의 <2580> 흠집내기에 대하여  
2580 제작진 입장 "조선 이제라도 정신차리지 않으면 곧 몰락"  


조선일보 경영기획실의 이한우 기자는 "방송은 힘만 센 미숙아"라며 "더 오만해지면 몰락할 것"이라고 조선일보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거꾸로"조선일보는 오만함을 넘어 아집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으며 이제라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곧 몰락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선일보(지난 호에 실린 이 기자의 인터뷰는 조선일보를 대표한 것으로 보고 이한우 기자 대신 조선일보라고 쓴다.)는 '노풍 발언' 파문이 있던 날의 '웃는 박근혜 사진'과 '찡그린 정동영 사진'만을 놓고 <시사매거진 2580>이 조선일보가 또 선거에 개입했다고 '단정'했다고 밝혔다. <시사매거진 2580>이 문제삼은 사진은 그날만의 것이 아니다. 며칠간의 사진을 사진을 비교해 보니 조선일보가 특정후보에게 독자들이 호감을 갖도록 유도하는 이미지 조작을 하고 있다는 사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조선일보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꾸짖었을 뿐이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편드는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와 가치가 비슷해 '유사한' 주장을 하는 정도라고 한다. <시사매거진 2580>은 어느 정파와도 유사한 주장을 하지 않으려고 늘 애쓴다.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국민들에게 사실을 전하고 진실을 규명하려고 할 뿐이다. 조선일보는 방송사들은 '지적 미숙'이라고 혹평한다. 과연 어느 쪽이 '지적 미숙'일까. 조선일보는 참 오만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조선일보는 방송사들이 대통령 탄핵 프로그램을 과하게 편성해 여론을 부추겼기 때문에 '지적으로 미숙하다'라고 말한다. 이른바 '사상 초유'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번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국민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날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국민들의 굳은 표정을 조선일보는 보지 못했는가 보다.

국민들은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 지 실시간으로 알고 싶어했다. 국민들에겐 정치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 권리'가 있다. 탄핵안 가결 장면을 보고 박수를 치든 분노를 하든 그것은 국민들이 판단할 일이다. 조선일보는 선거뿐 아니라 국민들의 '판단'에도 개입하고 싶은가보다.

한나라당에서도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과 가치가 비슷해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방송이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지만 자신에게 걸맞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신문에 대한 콤플렉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웃음이 나온다. 반박을 하려면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를 갖추고 했으면 좋겠다. 절제되지 않은 언어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건드리려 하는 건 자신의 논리가 빈약하다는 반증이며 논쟁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짜증나게 할 뿐이다.

조선일보는 또 방송사 시사 프로가 조선일보를 자주 다룬다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방송 기자들은 공공 의식과 기자 의식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조선일보를 다루면 공공 의식과 기자 의식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조선일보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1등 신문'답게 언론의 정도를 걷는다면 방송사 시사 프로들이 조선일보를 다룰 하등의 이유가 없다. 조선일보는 왜 선거에 개입해 가면서까지 '언론 권력'을 꿈꿀까. 친일의 전력이 있는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기 위해서, 사주의 족벌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조선일보 역사 단숨에 읽기>라는 책에는 '식민지 암흑을 밝힌 민족의 빛 조선일보'가 신년호에 일장기와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실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모든 신문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래도 '(조선일보의) 행간에는 민족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적혀 있다. '행간에는...'이란 말은 당당하게 할 말을 못했다는 의미다. 과연 '할 말은 하는 신문'다운 궤변이다.

왜 총선 시민연대의 낙선대상자 명단을 방송하고 보수 우익단체들의 낙선 대상자 명단은 방송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보수 우익단체들의 낙선대상자 선정기준에는 '반전 평화'를 주장한 사람,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활동을 한 경력 등이 포함돼 있다. 전쟁을 하라고 독재를 하라고 요구하는 듯한 그것을 조선일보라면 지면에 싣겠는가.

조선일보에 묻는다. 20대 젊은이들에게 투표하지 말고 '황금 연휴'를 떠나라고 유도하는 기사를 실은 다음 날 20대의 투표율이 높으면 열린우리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기사를 실었다가 그 내용을 빼고 다시 쓴 기사로 대체한 이유는 무엇인가.

방송은 신문보다 공공재의 성격이 더 강한데도 방송은 신문보다 감시 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고 조선일보는 말한다. MBC에는 노조가 있고 내부 감시장치도 있으며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시청자 위원회도 있다. 기자들이 눈치를 봐야 할 '오너 사장님'도 없다. 기자 총회도 수시로 열린다. 공정방송을 지키기 위해 몇 차례 파업을 한 적도 있다. 우리는 조선일보에 노조는 있으나 파업은커녕 편집국장 물러나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다.

방송이 공영성을 갖추지 않으면 역풍을 맞아 처참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며 오만하면 죽게 돼 있다고 조선일보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조선일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최근 조선일보의 독자수가 '뚝'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런지 조선일보는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언론은 결국 신뢰성 싸움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MBC 시사 프로의 힘은 '순응을 거부'하는 기자들에게서 나온다. 조선일보의 힘은 혹시 '기자들을 장악'한 사주에게서 나오는 건 아닌 지 생각해볼 일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 제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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