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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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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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15.한국의 드골 김구와 매국 비시수반 뻬땡격 이승만

대한민국 임정 구국영웅 김구




친독 괴뢰정권 수반인 뻬땡(Petain)의 비시(Vichy) 정권 아래에서 조국 프랑스가 신음 당하고 있을 무렵 드골은 "자유 프랑스군"이라는 무장 항쟁군을 조직했는가 하면 "프랑스 국민해방 위원회"의 위원장에 선임되어 독일과 무장항쟁으로 맞섰고, 런던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해 몸소 수반이 되어 국내외의 레지스땅스를 진두지휘하며 무장항쟁주의로 일관했을 뿐 외교론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프랑스 구국영웅 드골

오히려 드골은 1940년 10월 24일 몽뚜아르(Montoire)에서 히틀러와 회담을 갖고 나치독일에 협력키로 합의한 비시정권 수반 뻬땡과도 격렬히 투쟁했다. 뻬땡의 몽뚜아르 회담이후, 비시정권 아래에는 '강제 노동국'이 신설되어 3000-4000 명의 프랑스인 게슈타포 부역자들이 징집되어 레지스땅스를 소탕하는 전위대로 이용되었는데, 종전 후 드골 치하에서 뻬땡은 독일에 협조하여 많은 레지스땅스를 잡아죽였고 동족을 괴롭힌 수괴로 마땅히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복역중 고령으로 사형집행은 면제되었으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옥중에서 자살함으로써 그에 대한 전후처리가 매듭지어졌다.

경우는 다소 다르지만 만일 김 구와 이 승만을 프랑스의 정치상황과 비교한다면, 이 봉창 일본 천황 폭탄 투척 의거와(Click here!상해 홍꼬우 공원 윤 봉길 의사 폭탄 투척 사건을 직접 진두지휘한 무장항쟁 독립파의 수반 김구는 가히 레지스땅스를 원격조종한 드골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봉창 의사와 왜왕 암살 폭탄투척 선서문


윤봉길의사와 생가

드골이 일체의 타협을 배격한 것처럼 김구 역시 독립운동의 사상과 이념은 당연히 민족주의가 되어야 하며, 그것의 방법 또한 계급을 우선시 하는 사회주의 노선이 아닌 민족을 중심에 둔 독자적 노선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민족의 유구성이나 고유성을 강조하여 사회의 계급적 차원의 본질적 문제 해결보다 민족 문제의 해결을 앞세워 좌파 민족주의인 민족혁명 당과의 합작마저 거부한 순수 민족주의자였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그의 일면이 국제무대에서 잔뼈가 굵으며 간교한 술수를 배운 노회한 정치 꾼 이 승만에게 해방이후 정치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 총독부의 내선일체, 동근 동조 론에 부화뇌동하여 적당히 협조하며 역사의 단물을 쪽쪽 빨다가 기회가 되면 적당히 힘도 기른다는 미명하에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고 부를 축적한 친일 매판 자본가들인 점진주의자들은 독일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의 수반으로서 마땅히 독일과 적당히 타협 협조하면서 레지스땅스를 잡아 처형하는데 앞장서고 조국 프랑스를 독일에 팔아 넘긴 친 독일 매국노를 싸고돌며 비호한 뻬땡과 다르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방 후 친일 매국노를 처단하는 반민특위를 해체했음은 물론, 뻬땡류의 친일 점진주의자들이 만든 한민당과 공모하여 일제잔재 청산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무장항쟁주의의 기치를 든 드골 임시정부에 반한 뻬땡의 친독 정책처럼, 해방 전 비록 친일노선 걷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은 해방 후 친일파에게 반공 이데올로기의 우산을 씌워 줘 보호해 주었다는 차원과 상해 임정을 비롯 독립운동의 주류라 할 무장항쟁주의에 반(反)한 외교 독립 론으로 하나로 결집된 독립운동가 진영의 역량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승만은 이미 민족정기를 더럽히고 역사혼의 씨줄과 날줄을 흩뜨려놓은 일개 망국배 사적(史敵)에 다름 아니다!

민족혼과 민족사적인 차원에서 대도의 눈으로 살펴보면 이 승만은 단재 신채호가 이미 지적한대로 일개 민족의 매국배이며 다름아닌 한국의 뻬땡에 불과한 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정기의 수호자이자 민족혼의 동량으로서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깜빡이는 촛불 앞에 두 무릎 조아리고 조국광복의 그 날을 위해 일신을 던져 무장항쟁을 하겠노라 맹서의 칼을 입에 물었던 민족 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과 심산 김 창숙 선생은 그를 일언지하에 매국노라 단언한 것이다.

역사의 정기가 메마르지 않았으며 역사의 의기가 살아 있었다면 4.19로 쫒겨난 이 승만은 마땅히 뻬땡과 같이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되었어야 했으나 4.19의거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인사 40% 이상이 친일분자였다는 사실에서 보는 것처럼 당시 시대는 민족의 정기가 메말라 있었으며 역사의 의기 역시 허장성세에 불과한 여명기에 불과했다.      
          
고하 송진우는 45년 12월 29일 김구를 방문해 찬탁을 설득했으나 실패하고 이튿날 미군정이 발표한 신탁통치 안에 대한 대 국민 신탁통치 찬성 기자회견 직후 김구의 반탁 파에 의해 암살 당했다.

찬탁과 반탁이라는 어지러운 정국을 고리로 김  구 계의 '비상국민회의'와 이 승만 계의 '대한독립 촉성국민회'는 이듬해 46년 2월 17일 서로 합쳐 '국민의회'로 발족하는 등 친밀한 시절도 있었다.

또 47년 3월에는 미군정에 대한 상호 쿠데타 공모로 둘 사이는 밀월관계를 갖기도 했는데 김 구가 국내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되 이 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을 경우 계획을 취소하기로 상호 역할을 분담한 쿠데타 계획은 미국에 대한 자주권 획득이라는 차원에서 서로 협조한 호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승만과 김구는 결국 유엔감시하의 5월 총선거를 찬성한 한민 당 설산 장 덕수가 암살된 사건을 계기로 더욱 악화되었으며 남한 단독 총선을 반대한 백범 김 구는 우남 이 승만과 영원히 결별하고 끝내 암살되었다.



47년 12월 장 덕수의 암살범들이 김 구의 추종자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김구가 자신들의 혼이라고 지목하는 바람에 미군정 군사법정의 증인으로 불려나가 체면손상을 당한 백범 김 구는 이 승만이 미군정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법정증인 출석을 막지 못해 준 것에 유감을 품게 되었는데 사실상 당시 미군정에 대한 이 승만의 영향력이라는 게 별 볼일 없이 부풀려진 것으로 얼마 전 만 해도 미군정은 오히려 꼬장꼬장한 이 승만을 배제시키고 김 규식 정부를 구상한 적이 있었으며 나아가 이 승만을 물 먹이기 위해 김 규식, 여 운형을 통해 좌우합작을 이끌어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은 우남 이 승만이 김 구를 정치적으로 몰락시키기 위해 미군정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재판 후 김구는 김규식과 손을 잡고 김 일성의 '통일회의'에 참가해 이용만 당하고 내려 왔는데, 북한이 남한의 전력을 끊지 않겠다고 말했음을 밝힌 김 구는 막상 몇 일 뒤 북한이 단전하자 망신만 당한 채 48년 5월 10일 남한 최초의 단독 국회의원 선거에는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수수방관했다.

김구의 한독당이 5.10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여러모로 분단 한국사가 이 승만 및 친일파에 의해 역사청산을 하지 못한 채 뒤죽박죽된 난맥상을 보이며 빛 바래 가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

1946년 이 승만의 '남조선 국민대표 민주의원'과 몽양의 '민주주의 민족전선'에 얽힌 일화가 있다. 46년 2월 12일, 하지 군정장관의 정치고문 굿펠로가 몽양을 찿아와 하지의 정치고문을 요청했다. 몽양은 이승만과 김구를 한 번 만나보라는 굿펠로의 말에 이 승만을 찾아갔다. 김구가 안보여 김구를 찾으니 이 승만이 임정은 이미 없어졌는데 자신만 만나면 되지 않느냐며 따돌렸다. 몽양이 이 승만의 수하 윤 치영에게 전화를 걸어 김 구를 모셔오게 했는데 윤 치영 역시 전화가 모두 불통이라며 역시 따돌렸다.

이 승만의 거처를 나온 몽양은 굿펠로와 함께 김구를 찾아갔으나 김구는 군정고문기관 이외에는 입을 닫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몽양이 이 승만과 김구의 권유에 의해 비상국민회의 최고정무위원직을 수락했다며 28명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거의 전부가 한민당 인사들이었음은 물론이다. 몽양이 수락한 적이 없다는 발표가 뒤이어진 것은 물론이지만 이 모두 이 승만의 작품이었다.

의장에 이 승만, 부의장에 김구, 김 규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민주의원이 개원되자 누군가 일어나 의장은 누가 어떻게 선출한 것인지 따져 묻자 이 승만은 자기 자신이 작정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스스로 독선을 인정한 것이다. 결국 민주의원이 이 승만의 독주로 제 구실을 못하자 결국 김 규식의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이 선보이게 된 것이고 민주의원 결성 3일 뒤 몽양의 '민주주의 민족전선'이 선보이게 된 것이다.

1946년 7월, 미군정은 소련과의 재협상을 위해 <좌우합작위원회>를 잠정적으로 구성했는데 전 임정 부주석이자 이 승만의 촉성회 부의장인 김 규식과 몽양 여 운형이 공동의장으로 책임을 맡았다. <좌우합작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사회폭동, 분규, 데모, 테러가 맹위를 떨치자 미군정은 '조선과도입법의원'을 구성해 미군정청의 모든 권한을 한국관리에게 넘기고 미군정 관리들은 고문관의 자리로 물러나려 했다.

미군정이 입법의원을 구성하려 했던 내적 배경에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꼬장꼬장하게 물고늘어지는 이 승만을 김규식을 내세워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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