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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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Homepage    http://www.cheramia.net
제 목    담론8. 사극과 문화산업의 발상의 전환






고려시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보태서 말하면 TV 사극을 볼 때마다 늘 생각나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아직 정서문제 상 삼국시대 사극이 힘들다면 고려시대의 전인 미답의 스토리도 무궁무진한데 왜 조선시대 사극밖에 만들지 않는지 필자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모든 시청자가 동감하는 바이겠지만 조선시대 스토리는 너무 자주 벗겨먹은 감이 없지 않다.

몇 년 지나 캐스팅만 바꿔 재탕 삼탕 우려먹어 식상하게 하느니 조선시대보다 훨씬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이었으며 고구려 사관을 계승해 무대까지 광역화 될 고려시대의 재현은 기존의 사극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폭발적인 시청자의 관심을 가져다 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왜 손을 안댈까.

이는 아마 사극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의 기본 마인드가 열려있질 않고 닫혀있어 패러다임의 전환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 새해부터 「왕과 비」 후속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방영한다고 하니 필자도 그 반응이 심히 기대된다.

고려 시대를 소재로 삼을 사극은 고려사 안에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애시당초 고려사는 왜곡사이기 때문에 수많은 창작도 가능한 잇점도 보너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들이여, 제발 고려사 좀 들여다 보고 새로운 작품을 써서 시청자들의 눈을 좀 즐겁게 해다고.

궁예로부터 시작해 견훤과 쟁패한 왕건의 창업시대는 이 성계의 이조창업보다 훨씬 다이나믹하며 원나라 고려인 기철의 누이 기씨 황후 얘기로부터 송, 원의 외교에 관련된 국제적인 로케가 가능한 씬도 많으며 정중부, 이 의민, 경 대승 , 최충헌 등의 무인 정권시대의 스토리라든가 하다 못해 삼별초의 난이라든가

여말 충숙왕 충렬왕 등 왕실에 얽힌 이야기와 요승 신돈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유부녀와 통정하고 아기를 낳으면 자신의 아기임을 알아보기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히게 한 일화라든가 신돈을 둘러싸고 얼키고 설킨 수많은 궁중 비사만 다루어도 한 명회나 연산군, 장  녹수나 장 희빈,영, 정조 등 수없이 중복해 벗겨먹은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참고로 기황후와 신돈의 참고기사를 부쳐둔다.


-한-중 문화교류 고려공녀 '기황후'

중국대륙을 호령했던 고려의 한 여인이 있었다.

공녀라는 비천한 신분으로 최고권력까지 오른 원제국 말기의 기황후는 한·중교류사중 원과 고려간의 종속적인 `인적 교류'를 통해 탄생했다. 원은 공주를 고려왕실과 혼인시켰고, 고려는 조공으로 공녀와 환관을 갖다 바쳤다.

<원사> <원사후비전> <경신외사> 등 중국문헌에 기록된 기황후의 등장과 실권장악 및 몰락과정은 극적인 반전을 거듭하면서 중국대륙과 고려땅에 갖가지 흔적을 아로새겼다. 그러나 그 역사는 중국인들에게는 `이민족 지배기간'으로, 한국인에게는 `굴욕의 시기'로 각각의 냉대와 무관심속에 방치돼 왔다.

본적이 행주(경기도 고양군)로 낮은 신분이었던 기황후는 원나라(1206~1368년)의 운이 다해가던 1333년에 나이 14살 안팎의 공녀로 중국땅에 끌려간다. 한족의 관직기용을 피했던 몽골족 원나라는 고려에 대해 `온유하고 아름다운' 공녀의 차출을 요구했고 이는 1218년부터 원말까지 150여년간 지속됐다.

기씨는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인생이 뒤바뀐다. <원사>는 “기씨가 총명하고 눈치가 빨랐다”고 기록했다. 기씨는 질투심에 불탄 순제의 황후 타나시리로부터 `인두 찜질'을 당하는 학대를 받았으나, 타나시리가 1337년 인척들의 모반사건으로 숨지자 18살이던 그해 3월 제2황후에 오르면서 권력의 문턱에 들어선다.

기황후의 정치기반은 1년 뒤 얻은 아들 아이시리다라가 황태자에 봉해짐으로써 확고해졌으며 1368년 원 멸망 때까지 32년간 철권을 휘두르게 된다. 기황후의 정치력은 초기 농민봉기를 평정해 지지를 받던 투토를 중서우승상에 복위시킨데서 빛을 발했으나, 투토의 권력강화를 두려워한 순제가 그를 독살함으로써 좌절당한다.

순제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방탕한 환락추구는 기황후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요인이 돼 급기야 황태자를 앞세워 남편인 순제와 권력투쟁을 벌이는 사태로 나아간다. 기황후의 권세는 1365년 제1황후 바얀후투가 세상을 뜨자 관례를 깨고 정식 황후에 봉해지면서 절정에 달했다. 1370년 순제가 영욕의 회한속에서 병사하고 황태자와 함께 몽골 화림으로 도망길에 오르면서 기씨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역사무대에서 사라진다.

기황후는 집권 32년동안 황성 안쪽 흥성궁에 살았는데, 황성의 중심은 현재의 베이징시내 북해공원이다. 1308년에 세워진 흥성궁은 시청구 아이민리 일대임이 현장답사를 통해 최근 밝혀졌다. 이곳은 현재 중국 고위관료들이 거주하는 중난하이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며, 일부 일반주택들도 자리잡고 있다. 또 기황후가 연회와 각종 행사를 베풀던 당시 경화도 위에 세운 광한전은 북해공원내 경도에 백탑(1651년 건립)이 들어선 지점이다.

원 황궁의 본당인 대명전은 현재 자금성(고궁)의 건청문에 해당한다. 명나라는 건국 뒤 원의 `땅기운'을 말살하기 위해 자금성을 애워싼 주변의 흙을 파내 원의 황궁이던 연춘각을 매립함으로써 연춘각은 흔적도 없어졌으며 대신 `인공산'인 경산이 새로 생겨났다.

기황후의 권세는 지배국인 고려내 기씨 문중의 횡포로 이어지는 등 고려의 정치까지 뒤흔들었으나 공민왕이 연회자리에서 기황후의 동생인 기철을 살해하면서 기씨 세력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불교에 독실했던 기황후는 금강산 장안사를 70여칸 규모로 중건하기도 했다. 허리선이 짧고 날렵한 고려 여인의 복장은 원나라에서 크게 유행해 패션바람을 일으켰다.

원말 시인 장욱은 `궁중사'에서 “밤의 궁중 여인들이 다투어 고려 여인의 옷을 구경하려 하네”라고 썼다. 고려의 공녀는 초기 여종처럼 천한 신분이었으나 원 말에는 후궁 및 권문세가 귀부인 등 상층계급으로 자리잡으면서 출세의 대명사가 됐다. 또한 원 조정이 궁중내 환관들을 한족 대신 고려인들로 고용해 환관들의 권력이 강해지자 남성을 없애고 스스로 환관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다고 한다. (베이징/하성봉 특파원sbha@hani.co.kr)


또 고려말 공민왕의 개혁주자로 내세워졌으나 기득권층에게 반발사 죽은 신돈이 조선의 건국세력에게 고려사에서 난도질당한 신돈(辛旽), 요승(妖僧)인가 성인(聖人)인가? 라는 제하의 신돈의 기사를 보자.

(참고:고려 말기의 승려. 자는 요공(요空). 본관은 영산(영산). 계성현 옥천사(玉川寺) 사비(寺婢)의 아들로 태어났다. 공민왕의 신임을 받고 국정을 맡아 개혁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 개혁은 상층계급의 반감을 샀고, 왕의 신임을 기회로 방탕과 음란을 일삼아 상층계급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되었다. 67년 귀족세력의 기반을 무너뜨리고자 천도를 건의, 실패하였고 이어 역모를 꾀한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수원에 유배되었다가 처형되었다. 신돈의 집권기간이 6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유력한 권문세족을 제거하면서, 개혁정책을 추진하였고, 이 기간에 추진된 개혁을 통해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신진사류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늙은 여우의 요정'. {고려사}열전에서는 신돈을 그렇게 비유했다. 개를 싫어 하고 음행을 일삼았다는 것이 이유다. 역사상 어떤 인물이 그 만큼 혹독한 비난을 받은 사례가 있을까 할 정도로 기록상에 남아 있는 신돈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어머니가 종인 천한 신분출신에다가 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여러 과부를 꾀어 간음이나 하던, 막말로 땡중 짓이나 하던 인물이었는데, 공민왕을 만난 이후로는 "거짓으로 꾸며 몸을 항상 마른 나무처럼 하고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도 항상 한가지 찢어진 장삼을 입었다"({고려사})고 한다.

이 바람에 공민왕이 속아넘어가 사부로 삼아 진평후에 봉하고 '수정이순…겸판서운관사'라는 모두 48자에 달하는 벼슬을 내리고 국정을 전담하도록 했다고 한다. {고려사}의 기록대로 라면 왕을 현혹해 나라를 어지럽힌 요승(妖僧)인 셈인데, 그래서 전해지는 야사나 근래 쓰여진 역사소설에도 신돈은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묘사된다.

원래 역사기록이란 게 기록한 쪽의 주관적 입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신돈의 경우는 좀 심하다. 신돈에 대한 혹독한 비난이 왜 나왔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공민왕이 신돈에게 맡긴 일은 전민변정(田民辨正), 곧 권세가들에 의해 강탈된 토지나 억지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풀어주는 일이었다. 무신정권을 거치고 고려말에 이르면 원나라 세력을 등에 업거나 온갖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귀족들이 농민의 토지를 강탈해 농장을 만들고 농민까지 자신의 농장에서 노비로 일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권력을 배경으로 세금도 내지 않고, 농민들에게 원금의 1/3을 이자로 받는 지독한 고리대도 했다. 당연한 결과로 농민은 토지를 떠나고 국가재정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 왕권도 덩달아 바닥으로 떨어져 왕조차 이들 권세가들을 말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공민왕 이전에도 충선왕, 충숙왕, 충목왕 등의 개혁이 있었고, 공민왕 때에도 신돈이 등장하기 전에 몇 차례의 개혁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개혁도 성공을 하지 못하고 신돈에게 이 임무가 주어졌던 것이다.

공민왕이 신돈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승려들과도 왕래가 없을 정도로 사회적 활동이 없던 터라 당연히 귀족들과 관계를 맺지 않아 눈치 보지 않고 개혁이 가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공민왕의 말에 의하면,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등장한 신진 관료들도 집안이 한미한 것을 감추려고 귀족과 혼인으로 얽혀지고, 유생들은 문하생끼리 뭉쳐 있어 모두 개혁의 주도세력으로 마땅하지 않아 세상을 버린 초연한 사람을 뽑아 폐단을 개혁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등장한 신돈이 기득권층과 마찰을 빚었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땅이 모든 재화의 원천이고, 땅을 경작하는 노비 소유의 비례에 따라 경제적 지위가 결정되던 사회에서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노비를 농민으로 돌려 놓는 개혁사업은 귀족들의 사회적 기반부터 뒤흔들어 놓는 일이라 극심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땅을 되찾은 농민이나 억울하게 노비가 되었다가 풀려난 농민의 입장에서는 "성인(聖人)이 나왔다"였다.

실제로 신돈에 대한 기득권층의 비판은 뇌물과 아첨, 여자를 밝히고 호화주택을 소유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었지만 개혁의 과정에서 토지나 노비를 부정축재했다는 자료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뇌물과 아첨이야 남들이 안보는 데서 일어나는 일이니 말을 만들기 나름이고, 여자의 경우 신돈이 승려라는 점을 고려에 넣어야 한다. 유학자와는 달리 승려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신분의 사람과 만나는 종교적 직업이다. 따라서 신돈에 대한 비판은 개혁을 엉망으로 한 데 대한 불만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개혁이 이루어지는데 대한 음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신돈이 왕의 비호말고는 아무런 배경 세력없이 활동했던 것은 아니다. 새롭게 등장한 신진관료들, 곧 이색 정도전 정몽주 같은 사람들을 개혁의 배후세력으로 삼으려 했다. 이들은 공민왕과 신돈의 측근으로 활동하면서 귀족세력에 대항해 개혁을 해 나갔다.

그러나 이들도 불교를 배척한 성리학자인 만큼 승려인 신돈에게 반드시 호의적인 것은 아니어서 반역 혐의로 죽은 신돈을 비호해 줄 이유가 없었다. 이들과 같은 성리학자들이 세운 나라인 조선에서 만든 {고려사}가 신돈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신돈은 불교계에서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사원이 가진 땅이나 노비가 많아 개혁의 대상인데다가 신돈의 종파가 이 시기에 그리 힘이 없던 화엄종쪽이었다.

이렇게 사면초가의 신세가 된 신돈에 대한 비난이 공민왕에게까지 미치자 어느 정도 개혁의 성공으로 신돈 등용의 목적을 이룬 공민왕은 신돈을 반역의 혐의로 처형하고 말았다. 와이에스시절에 많이 쓰던 말로 토사구팽이었던 셈이다.

결국 신돈은 농민의 지지를 받았지만 자신의 정치세력 형성에 실패한 탓에 요승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돈은 귀족만 사람노릇하던 고려시대 사람이다.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개혁을 신돈의 개혁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근만 해도 소수 기득권층의 눈치만 살피다가 대다수 국민의 빈축을 산 실패한 개혁을 어디 한 두 번 보아왔던가? 어느 역사 시대나 개혁은 다수의 인간을 위한 것이다. 역사에서의 진보는 이 개혁이라는 현실적 표현의 추상적 개념이다.

자신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인간들을 위한 개혁을 하려고 한 신돈이 다시 봉건체제를 재강화한 조선의 이데올로그들에게 얻어 맞은거야 당연하지만, 요즘 같은 민주주의 세상에서 우리의 디제이의 개혁은 누구의 눈치를 살피기에 이다지도 느린지...(http://www.koreanhistory.org/walk/ha/ha29.html)-

아무튼 현대는 자동차산업이 되었든 각종 핸드폰, PC,노트북 PC ,전자제품이 되었든 또는 의류가 되었든 디자인 혁명의 시대다. 성능이 비슷한 것끼리의 경쟁은 망하고 흥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에서 결정이 나버리는 무한경쟁의 살벌한 시대에 지금 서있다.

자동차 산업을 예로 들면 벤츠 신형이라는 체어맨의 경우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독일벤츠 라이선스 생산품을 가져다가 그대로 수입해서 쓰고 에어백은 스웨덴 노키아,ABS 장치는 독일 보쉬, 가죽시트는 스코틀랜드 송아지 가죽 등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브랜드와 겉만 국산이지 거의 모든 부품이 모두 외제인 대표적인 가짜 국산품이다.  

그런데 기존의 벤츠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이 차가 나름대로 상류층에 크게 어필한 것은 바로 지금은 구닥다리 모델이 되었지만 당시의 세련된 디자인 때문이었다. 물론 개발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구매층 확보에 실패해 회사가 합병된 것과 그나마 이마저 독일벤츠사와의 협력으로 디자인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이러한 경우는 과거의 국산 자동차 모두가 거의 일본부품들을 값싸게 들여와 조립한 것과 동일하다.

현대의 경우 각고의 노력으로 국산화 율을 높이는데 성공했지만 중요부품은 아직도 수입해서 조립해 쓰고 있다. 그나마 초기의 열악한 환경의 자동차 내수시장을 극복하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산품애용의 국민의식도 단단히 한 몫 했지만  끊임없이 참신한 디자인개발을 해 모델을 바꾼 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중남미 및 동남아시아에서는 실용적이고 싼 맛에 현대차를 사고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존의 명차 보다 기능 면에서는 뒤떨어지지만 중산층 사람들이 값싸고 참신한 모델이어서 탄다고 하는 말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능 면에서 세계의 명차 보다 뒤떨어지지만 그나마 디자인이 받쳐주어 나름대로 틈새수출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세계적으로 앞선 각종 기술을 이용해 차량에 부착되는 보조부품들 가령 액정 TV LCD라든가 인공위성과 연계한 도로 탐색 항법장치(네비게이터) 시스템 및 위치 측정 시스템, 원격화상 단말  제어장치, 인터넷 및 이메일이 가능한 최첨단 차량용 포터블 랩탑(노트북), 졸음운전을 경고하는 감응식 순항제어 시스템(Adaptive Cruise Controll), 차선이탈방지 경고 시스템(Lane Departure Warning System) 등만 잘 활용하면 기존의 명차들과도 경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제 7회 ITS(Intelligent Transportation System 지능형 교통체계) 세계대회는 이와 같은 칸셉을 갖는 각종 기능이 선보인 바 있다.  

이  면우 교수식 발상을 자동차 산업에 적용하면 세계의 명차와도 능히 경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 명차 전시회의 칸셉트 카를 보면 해답이 그냥 나온다.  이미 과잉 설비투자로 삼성이 르노, 대우가 포드로 넘어갈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지만 현대만이라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해 민족기업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승용차 운전석 전투기 조종석처럼 계기판 보며 주행>한다는 다음의 기사는 21세기 후천 개벽문화를 가늠하는 좋은 기사다.

전방 물체와 운행정보 한눈에 파악, 적외선 카메라 이용 밤운전도 쉽게    

-F-16 전투기 조종사는 계기판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앞 유리 바깥 5m 정도의 허공에 계기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목표물을 조준할 때도 허공에 나타나는 '+'표시에 맞추면 자동 조준된다. 시속 1천㎞ 정도로 내달리는 전투기 안에서 계기판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적의 전투기에 꼬리가 잡힐 수 있다. 그러나 허공에 계기판이나 조준표시가 나타나면 그럴 염려가 없다. 앞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항공기.자동차의 계기판과 각종 정보가 앞유리나 허공에 나타나 안전운행을 하도록 도와주는 전방주시장치(Head-up Display System)의 개발이 확산되고 있다. 계기판을 보느라 속도를 늦추지 않아도 되고, 특히 야간에 안전운행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도 미래형 자동차의 필수품이 될 것으로 보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 손정영 박사는 "전방주시장치를 설치하면 앞쪽의 물체와 계기판.운행정보를 동시에 볼 수 있다"며 "고속으로 달리는 항공기나 미래의 자동차 운행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업체인 GM은 적외선 장치를 이용한 전방주시장치를 컨셉트 모델인 에보크에 장착해 선보였다. 낮에는 전체 앞유리창과 구분이 잘 안되지만 밤에는 헤드라이트를 켜도 잘 보이지 않는 차 앞쪽 사람이나 동물이 책 크기의 특수 유리창에 나타난다. 적외선 카메라로 차 앞쪽 수십m의 물체를 찍은 뒤 앞 유리창에 투사해 보여주는 것이다. 앞 유리에 각종 정보를 나타내는 기술은 홀로그램을 이용한다. 홀로그램은 같은 종류의 레이저이면서도 두 갈래로 따로 쏘아 영상을 만든다. 하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물체에 비춰 반사돼 나오도록 하고, 또 한 갈래의 레이저는 반사돼 나온 레이저와 부닥치게 한다.

그러면 간섭 무늬가 생기는데 이를 이용하면 홀로그램이라는 입체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영상을 빛을 반사하면서도 투명한 특수 유리에 투사한다. 조종사나 운전자는 그 유리에서 반사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허공에 스크린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영상이 맺히는 초점을 조정함으로써 가능하다. 렌즈의 경우 초점이 맺히는 거리에 어떤 영상을 투사하면 마치 아주 멀리 떨어진 거리에 상이 맺히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이 생긴다. 항공기용은 비교적 쉽다. 하늘이나 구름 등만 보여 특정 색깔이 보이지 않도록 해도 조종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계기판을 허공에 나타내는 특수유리는 녹색만 반사하고 나머지 색은 모두 통과하도록 한 것이다.

조종사는 이 특수유리로는 외부의 녹색을 느낄 수 없다. 계기판의 정보는 녹색레이저로 이 유리에 쏘며, 그 색만 반사돼 조종사의 눈에 녹색으로 계기판이 허공에 보인다. 그러나 자동차용은 외부의 녹색을 보지 못하도록 하면 사고의 위험이 커 아직 실용화되지 않고 있다. 캐딜락처럼 야간에만 적외선을 이용한 전방주시장치가 개발돼 있을 뿐이다. 계기판 정보는 승용차의 경우 앞 범퍼 위 허공에 영상이 맺히는 것처럼 느껴야 시야가 짧아지지 않는다. 손정영 박사는 "전방주시장치는 화면의 크기를 책 정도로 밖에 만들지 못하고, 완전한 컬러를 반사하면서도 투명하게 만드는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며 "그 기술이 개발되면 본격적으로 보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기자



한국의 항공산업이 디지털 발상으로 돌아선 것은 아주 좋은 예이다 서울대 항공우주 신기술 연구소는 라팔 전투기 생산회사 프랑스의 다쏘 항공과 그 계열사 다쏘 시스템& IBM 등과 공동으로 서울大 공대 내에 '디지털 항공기술 혁신센터(DICAE)'를 설립해 전 세계 항공기 개발 기업의 76%가 사용중인 설계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카티아(CATIA) 프로그램 20세트를 개발사인 다쏘 시스템과 IBM측으로부터 무상지원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카티아란 세계최초 100% 디지털화된 항공기 설계제작을 돕는 소프트웨어로 항공기 설계 전 과정을 컴퓨터를 통해 모니터링 함으로써 비행기 제작에 앞서 각 요소들을 실험하고 점검하기 위한 필수코스로 여겨지던 실물크기의 모형제작을 모니터상의 디지털 모형으로 대체하는 획기적인 Flying Car 개념의 프로그램이라 한다. 항공업계의 패러다임 전환이 외국에서 수입만 하던 아날로그 시대에 비해 얼마나 신선한가.





537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를 집필하며  안원전   2002/01/10  9837
536    역사의 대국적인 틀  안원전   2002/01/10  7208
535    담론1.새로운 패러다임-X세대를 구세대로 만든 N세대  안원전   2002/01/16  5867
534    담론 2. 아날로그 일본, 디지털 한국  안원전   2002/01/16  6693
533    담론 3. 세계는 목하 IT 전쟁  안원전   2002/01/16  6615
532    담론4. 이제는 문화와 관광이다  안원전   2002/01/16  7037
531    담론5.라스베가스와 아비뇽과 빠리 샹젤리제 [2]  안원전   2002/01/16  7524
530    담론6. 아비뇽 등 테마도시와 문화예술의 위력  안원전   2002/01/16  6893
529    담론7. 무용, 한복&이면우식 최신식 디자인  안원전   2002/01/16  7378
   담론8. 사극과 문화산업의 발상의 전환  안원전   2002/01/18  6353
527    담론9.한심한 관광정책, 어문정책과 질서문화 실종  안원전   2002/01/18  6651
526    담론10. 무질서의 문화사적 역사기원을 추적해 본다.  안원전   2002/01/18  5726
525    담론11.조봉암,조용수의 사법살인과 제주 4.3 항쟁의 비극  안원전   2002/01/18  7262
524    담론12. 이승만이 손잡은 친일매판 세력 김성수 한민당과 해방정국의 내막  안원전   2002/01/18  6816
523    담론13.일제 끄나풀 인촌 김성수의 미군정 장악&"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놈이다"신채호 선생 [1]  안원전   2002/01/18  7282
522    담론14.공채팔아먹고 미국무부에 신탁통치 요구하고 허위로 가짜 대통령 명함돌리고 하와이 박용만 독립군 재산 네다바이 하다 임정에서 탄핵된 이승만의 죄악 [1]  안원전   2002/01/18  6548
521    담론15.한국의 드골 김구와 매국 비시수반 뻬땡격 이승만 [1]  안원전   2002/01/18  6363
520    담론16.미군정 입법의원 차지한 친일 한민당과 친일파가 장악한 단독총선 의정 [1]  안원전   2002/01/18  5913
519    담론17. 이승만의 허구적 북진통일론과 그 부산물 6.25 및 보도연맹을 비롯한 113만 무고양민 학살 기록 [1]  안원전   2002/01/18  9158
518    담론18.일제하 최대의 독립운동자금원 겸 물산장려운동의 주체인 비밀교단 민족종교 보천교(증산도) [1]  안원전   2002/01/18  7328
517    담론19.적산(敵産) 재산 요리한 이승만, 김성수와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망언  안원전   2002/01/18  5998
516    담론20. 무장항쟁주의 김구의 상해임정의 외교승리인 카이로 선언과 이승만 외교노선의 허황됨  안원전   2002/01/18  5250
515    담론21.부패,무능,독재의 화신 이승만과 4.19 헌법정신(반부패,반무능,반독재)에 반하는 이승만 동상 건립&방응모 친자 방재선과 양자 방우영 가문의 재산찾기 소송의 내막  안원전   2002/01/18  5960
514    담론22. 박정희 정권의 핵심은 부패,무능 이 승만의 산업건설전무의 조국을 개발독재한 것  안원전   2002/01/18  5709
513    담론23. 불과 한개의 변수인 "민주화"만으로 재단하는 진보수정주의 사관으로 보는 박정희 사관은 잘못된 것  안원전   2002/01/18  5430
512    담론24. 이승만의 추태와 매국노라 지탄한 박용만, 이승만을 비난하고 국무총리를 사퇴한 이동휘& 신채호, 김창숙의 분노와 성토및 탄핵  안원전   2002/01/18  5528
511    담론25. 상해 임시정부의 이승만의 탄핵축출과 민족 자주사학의 기초를 왜곡한 이승만  안원전   2002/01/18  5477
510    담론26. 제자 이승만에 대한 서재필의 날카로운 비판-애국을 빙자한 사욕,사재축적한 매국노  안원전   2002/01/20  5546
509    담론27. 국민회를 와해공작,박용만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중인격 이승만과 송건호의 비판  안원전   2002/01/20  5255
508    담론28. 성균관대 초대 총장 심산 김창숙의 이승만 비판과 이승만 동상건립  안원전   2002/01/20  5629
507    종통.추수말복 진법의 상씨름 <<상씨름! 이제 시작 되었을 뿐! has just begun!!! 1> > By 慧光 大仙師  안원전   2020/02/24  1284
506    담론29.악이 선위에 군림하다. 친일지 동아,조선의 원죄  안원전   2002/01/20  5448
505    담론30. 친일언론 조선의 원죄와 장준하의 민주언론치죄  안원전   2002/01/20  5365
504    담론31.해방후 현대사 왜곡의 원죄 이승만과 고 백강 조경한 광복회 회장의 역사왜곡 한탄과 천대받는 국조단군  안원전   2002/01/20  7080
503    담론32 드골주의와 드골식 전후청산  안원전   2002/01/20  5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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