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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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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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담론33 ‘매국노’ 송병준이 발행한 조선일보와 좌파기자가 쓴 압수기사





40년 10월 16일 일제는 동근동조론(한일뿌리는 같다)을 내세워 내선일체 철저화, 황국신민화를 내세운 고도국방 국가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국민총력 조선연맹>을 만들었는데  이 곳에도 김 성수, 윤 치호, 최 린, 한 상룡 등의 매국배가 이사로 끼어있음과 동시에 장 택상 父 장  직상, 공주갑부 김 갑순, 문 명기, 김 성수의 좌장 격 장 덕수, 최 남선, 방 응모, 서 춘, 박 흥식 등 매국노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민족의 피를 빨았다.  

나폴레옹의 관을 안치한 파리의 꽁꼬드 광장 건너 앵발리드 전사(戰史) 박물관엘 가면 드골은 많은 레지스땅스들의 유품과 사진, 화보 등과 함께 전시되어 추앙 받고 있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정신은 3.1운동과 4.19 정신을 계승한 것으로 되어 있다. 4.19 정신은 이승만의 반 독재, 반 부패, 반 무능에 항거해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대한민국 정부가 반 이승만 정신인 4.19 정신을 계승해 존재함을 뜻한다.

따라서 만일 우리 나라에 민족지사만 모셔놓은 한국판 엥발리드가 있다면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민족지사를 괴롭힌 친일매국노를 감싸고 돌은 이승만은 민족지사와 함께 자리할 자격조차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그는 독립기념관에 아주 아주 크게 모셔져 있다. 이는 프랑스와는 아주 대조가 되는 것으로 한국의 정신이 그 뿌리부터 썩어 있음을 보여 주는 아주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모랄 해저드(도덕적 기강해이)와 사회기강 해이는 단순하게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이상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일제치하에 매국언론의 길을 걸었던 조선, 동아일보가  해방 후 이승만의 비호아래 기민하게 변신해 민족지로 행세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하면 프랑스의 전후 매국노 완전 척결은 실로 우리와 뚜렷이 구별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잠깐 월간 '말'지에 실린 다음의 글을 참고해 보자,
  
'진보인사 죽이기' 뿌리는 친일 콤플렉스  

도대체 조선일보는 왜 그럴까?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 이유를 밝히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대부분 보도비평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좀더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병리학적 심리분석을 통해, 조선일보가 왜 극우반공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지 그 뿌리를 찾아보았다.

조선일보의 KO패였다.
최장집 교수가 제기한 『월간조선』 11월호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난 11월 11일 법원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최 교수가 제기한 19가지 내용 중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것은 3가지밖에 되지 않으므로 결국 자신들이 16 대 3으로 판정승(?)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독특한’ 해석은 대한민국 일간지 중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그러나 법원은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기사를 쓴 『월간조선』 기자에게 정치학자 수준의 분석을 거친 완벽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식견이 부족한 기자의 엉성한 기사까지 일일이 문제삼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지면에 이 대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가 조선일보에 대한 병리학적 심리분석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이완용과 쌍벽 이룬 ‘매국노’ 송병준이 발행


어전에 칼을 차고들어가 고종을 죽이겠다고 협박해 순종에게 양위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끝없는 친일끝에 일본천황에게 백작 작위를 받은 귀족 송병준 그는 가히 일제하 한국인의 상류층이요 일본사회에서의 상류층이었으니 매국을 한 대가였다.( Click here) 전우용 박사, "민영환 소유 땅 송병준이 '강탈' 의혹" 자료공개Click here

정신분석학은 유년시절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라고도 한다)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찰한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통해 정신분열 증세의 근원을 밝혀 낼 수 있다고 보았다.

현재 나타나는 독특한 심리나 행동의 근저에는 유년시절에 형성된 어떤 콤플렉스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프로이트의 충고에 따라 우선 조선일보의 ‘유년시절’을 고찰해 보자.

1919년 한국 민중의 3.1 시위투쟁에 놀란 일제는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전환한다. 1920년 그 일환으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발행이 허가된다. 창간 당시 표면적으로나마 ‘민족지’를 표방한 동아일보와 달리 조선일보는 애초부터 ‘친일지’로 출발했다.

‘신문명 진보주의’라는 창간 당시의 조선일보 사시(社是)는 총독부의 문화통치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발간 주체도 ‘조일동화주의(朝日同化主義)’를 표방한 친일 경제인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였다.

이완용과 함께 매국노의 양대 거두였던 송병준이 3년 6개월 동안 조선일보의 판권을 소유하기도 했다. 그런 조선일보에 민중들이 등을 돌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일보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 9월 신석우가 조선일보를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는 이상재를 사장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박헌영 ·김단야·임원근 등 사회주의 성향의 젊은 기자들을 대거 영입했다.

이때 사회주의·배일 성향의 기사가 양산되었으며 기사압수 및 정간조치가 잇따랐다. 그 덕분에 조선일보는 어느 정도 친일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다.

평북 정주 출신의 광산업자 방응모가 자신과 같은 서북계 인맥(평안도 출신 인사들)의 리더인 조만식을 앞세워 조선일보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1933년 3월. 그러나 그는 애초에 항일에는 뜻이 없는 ‘상업주의’ 신봉자였다.

동아일보와 소모적인 사세경쟁이나 벌이며 ‘적전분열’을 일삼다가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된 1930년대 중반부터 철저한 ‘친일보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친일행각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1940년 폐간된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고도 ‘자칭 민족지’ 조선일보가 곧바로 복간호를 내지 못했던 것은 바로 조선일보의 이런 친일전력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수년 전의 성수대교·삼풍백화점 참사를 생생히 기억하듯 당시 민중들도 해방 직전까지 친일에 몰두했던 조선일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인쇄 노동자들이 조선일보의 복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조선일보는 미군정에 의해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가 무력화되고 친일세력이 전열을 가다듬은 뒤에야 복간호를 낼 수 있었다.

압수 기사 다수는 박헌영 등 좌파기자들이 쓴 것

“우리가 친일을 했다면 어떻게 기사가 압수되고 정간과 폐간까지 당했겠느냐.”
1988년 12월 13일 언론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한 조선일보 사장 방우영씨(현 회장)가 친일행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뱉은 말이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는 ‘친일’을 한 것이 아니라 ‘반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과연 정당한 항변인가. 꼼꼼하게 검증해 보자.

첫째, 조선일보의 기사압수 건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압수과정의 내막과 압수기사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70년사』 뒤쪽에는 「해방전 조선일보 압수기사」 제목이 ‘자랑스럽게’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선일보는 기사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가 어렵사리 찾아본 몇 개의 압수기사를 보자.

“언제나 투쟁이란 다수자가 승리를 얻는 것이다. 사회의 절대 다수를 점한 무산계급의 단결된 조직만 완성하면 최후 승리는 다반사일 것이다.”(조선일보 1924년 11월 21일자)

“(조선은 현상 타개를 필요로 하는데) 요체는 정치적인 제국주의와 경제적인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제도로 바꾸는 데 있는데 이에는 반드시 적로(赤露)의 세계혁신운동과 그 보조는 일치하는 것이다.”(조선일보 1925년 9월 8일자)

여기서 ‘적로’란 소련을 말한다. 특히 두 번째 기사 때문에 조선일보는 정간까지 당하게 된다. 방우영 사장이 말한 혁혁한 항일의 표징인 ‘압수’와 ‘정간’은 결국 사회주의 성향의 기자들과 그들이 쓴 기사들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박헌영 등이 조선일보에서 활약한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간에 무려 90건의 기사가 총독부에 압수 당했다. 그러나 1925년 9월 박헌영 등 화요계 중심의 사회주의 기자 17명은 강제 해고되어 쫓겨난다. 총독부의 압력에 경영진이 굴복한 것이다.

한편 방우영씨의 양조부인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경영하던 8년 동안 압수된 기사는 23건에 불과하다. 이는 매국노 송병준이 조선일보를 경영하던 3년 6개월 동안 82건의 기사가 압수된 것과 대조적이다.

더욱이 1936년 8월부터 1940년 폐간 때까지는 단 한번도 기사가 압수된 적이 없다. 방응모의 대일관과 시국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조선일보는 반일성향이 강했던 사회주의자 기자들 덕분에 그나마 민족지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조선일보가 일제에 의해 폐간 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방우영씨의 주장처럼 항일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1940년 8월 10일의 폐간사만 보아도 그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신문통제의 국책과 총독부 당국의 통제방침에 순응하여 금일로써 폐간한다……지나사변 발발 이래 본보는 보도보국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고 더욱이 동아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일제의 지상목표인 동아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불철주야로 분발했음을 읍소하며, 국책에 순응해서 폐간조치를 감수하기로 했다고 조선일보 스스로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는 보상금까지 챙겼다. 조선일보 폐간 뒤 『조광』의 친일행적은 또 얼마나 노골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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