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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




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楚國文物來台 文物雕塑巧奪天工



서주초, 형인(荊人) 잔존부락인 -동이족 전욱(顓頊) 자손 계련(季連)의 미(羋)씨 성 자손-이 이미 서쪽으로 이동하여 단수(丹水)와 석수(淅水: 모두 河南省 河川)사이에 당도했다.(초(楚)의 왕들은 무왕(武王)처럼 대대로 웅씨(熊氏)가 계승했지만, 성(姓)은 한결같이 미(羋)였다) 육웅(鬻熊:or죽웅)이 수령할때 좋은 시기를 포착해 초민족을 거느려 폭군 상나라 걸왕을 등져 포기하고 서쪽을 향해 주문왕(周文王)에게 몸을 의탁해 주문왕(周文王)에게 신임을 받았다. 주무왕(周武王)이 계승한 후에 남쪽을 도모하고자 하매 초인이 이를 눈치채고 육웅(죽웅)의 아들 웅려(熊麗)의 영솔하에 족속을 일으켜 수산(睢山)과 형산(荊山)사이로 옮겨가 잠시 황량한 들판에서 피해 살았다. 무왕을 이어 주나라 성왕(무왕 아들로 강태공 사위)이 어린나이에 들어서자 주공단이 섭정하는 동안 의심을 받아 초나라로 망명해 화를 피하니 초인은 최고의 손님(上賓)으로 공경했다.  이에 주공이 그 덕에 크게 감격하여 다시 주나라 조실로 돌아가 이일을 왕에게 호소하니 주성왕(周成王)이 감동하여 이에 주성왕(周成王)은 웅려의 손자 웅역(熊繹)을 초군(楚君)에 봉했다. 이로써 형초(荊楚)는 제후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해 초국(楚國)이 정식으로 탄생했다.

西周初年,荊人的殘部主要是季連的羋姓後人,已西遷至丹水與淅水之間。鬻熊為首領時,審時度勢,率楚民背棄商紂王,西行投奔周文王,並受到周文王的器重,周武王繼位後,有圖南之意,楚人覺察後,在鬻熊之子熊麗的率領下,舉部南遷至睢山與荊山之間,暫時避棲于荒野之地。周成王時,周公避禍于楚,楚人敬之如上賓,周公大感其德,周公回朝後訴說此事,感動了周成王,于是周成王封熊麗之孫熊繹為楚君。荊楚開始躋身于諸侯之列,楚國正式誕生了。


초인은 수세기동안 참담하게 경영한 뒤 웅거(熊渠) 초에 이르러 위험지경에 빠졌다. 웅거는 웅역(熊繹)의 4 세 손으로, 재능과 학식을 겸해, 진취적 정신을 가진 군주로, 군사를 정비하고 무예을 익혀, 중원지방에 변란이 일어난 틈을 타, 강토를 개척하는 진공작전을 개시했다.  삼묘(三苗)는 일찌기 형초(荊楚)에 귀순했으며, 웅거(熊渠)는 정벌의 중점을 서부와 동부에 두었다.서부를 정벌하는 중에 용국(庸國:지금의 호북(湖北) 죽산(竹山)경내)을 공격해 치고, 강토개척의 서막을 열었다. 토벌중에 초인은 지금의 호북(湖北) 중부 양월(揚越)로 공격해 치고 세력을 강한(江漢) 평원으로 밀고 들어갔다. 계속 신속히 원정에 착수해 지금의 호북(湖北) 악주(鄂州)경내의 악국(鄂國)을 쳐 공격했다. 
 

楚人經過一個多世紀的慘淡經營,至熊渠時初露崢嶸。熊渠是熊繹第四代孫,是一位既有才識又有進取精神的君主,他整軍習武,趁著中原動亂之機,開始了開疆拓土的進程。三苗早已歸順荊楚,熊渠把征伐重點放在西部和東部。在西征中,攻打了庸國(今湖北竹山境內),拉開了拓疆序幕。吊討中,楚人攻打了位於今湖北中部的揚越,勢力推進至江漢平原。接著遠征,攻打了位於今湖北鄂州境內的鄂國。


초족의 갈래는 다원적이었는 바, 황하 장강(양자강)유역에서 고 선주민(古先民)과 장기간 왕래하면서 전쟁과 융합을 하던중에, 마침내 형초지구 형성에 있어 공동 언어, 공동 경제생활, 공동 문화와 공동 심리 등 민족적 바탕과 특질을 공유하는 하나의 초민족으로 거듭나게되었다. 초족(楚族)은 바로 초(楚)의 땅에서 얻은 이름이다. 그러나 초족의 족원(族源)이 어디에서 기원했느냐 하면, 혹자는 본원이 초지에서 토착적으로 항상 살았던 토착민 족이라 말하는 둥 그 역사기원이 중설분분하나 진실성은 없다. 일찌기 20세기 20년대 말에 곽말약이 <중국고대사회연구>라는 서책에서  "초는 본래 만이(蠻夷)니, 곧 회이(淮夷)"라 생각한다고 했다. 회이(淮夷)는 즉 초인(楚人)이니 즉 만형(蠻荊)이다.  ...회이,서이,형만은 널리 퍼져 매양 관련지어져 말하니, 이들 계열은 반드시 같은 동족일 뿐 아니라, 은(殷:동이족 95% ;임혜상)의 동일 맹족(혈족적으로 느슨한 동일족)이 된다. 후일, <은주청동기명문고석>,<금문총고> 등 책중에 초인은 곧 "웅영족(熊盈族:곰토템족)임을 명확히 인정한다. 초(楚)의  조상들이 회수(淮水) 아래 떠돌며 살았으며 엄인(奄人), 서인(徐人)등과 더불어 함께 동방국(東國)에 속했다.   ....웅영(熊盈)은 마땅히 곧 육웅(鬻熊:or 죽웅)이며, 영육(盈鬻)은 한가지 소리가 전음(轉音)되어 바뀐 字이다.웅영족은 주인(周人)이 압박하매 남하하기 시작해 강에 이르러, 강이 가로막아 다시 서쪽 위로 올라가 악(鄂)에 이르렀다. 호후선(胡厚宣)은 <초민족원어동방고> 한 글 가운데 진일보하여 "초의 시조는 축융(祝融)이 된다"고 주장한다. 축융(祝融)은 곧 육종(陸終)이니....즉 수인(遂人)이 곧 여(黎)족이고; 육종, 수인, 여 모두는 동방민족이다. 때문에 그후 주민족의 동방압박이 황하유역으로 미치니, 점점 상황이 변하여 동방민족이 마침내 허다히 서로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왔을 뿐 아니라, 초민족의 세력이 심히 강하여 점점 남방의 강한(江漢)유역으로 영토를 확대했다. 곽말약, 호후선 두 선생은  초민족 동방설을 인도하니 지금에 이르러 그 영향력이 거듭 심원하여, 적지않은 학자가 이 학설을 따른다 :여(黎)의 정체 http://www.cheramia.net/board/zboard.php?id=bbs1&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14


    楚族是多元的,在黃河、長江流域遠古先民的長期交往、爭戰與融合中,終於在荊楚地區形成有共同語言、共同經濟生活、共同文化和共同心理素質的楚族。楚族就是以楚地而得名。但是,楚族的族源來自何方,或者原本就是楚地土生土長的民族,歷來眾說紛紜,莫衷一是。早在本世紀二十年代末,郭沫若在《中國古代社會研究》一書中,就認為“楚本蠻夷,亦即淮夷”。淮夷即楚人,即蠻荊,……淮徐荊舒每連言,必系同族,且為殷之同盟。 後來在《殷周青銅器銘文考釋》、《金文叢考》等書中,又明確認定楚人即“熊盈族”。楚之先世居淮水下遊,與奄人徐人等同屬東國。……熊盈當即鬻熊,盈鬻一聲之轉。熊盈族為周人所壓迫,始南下至江,為江所阻,復西上至鄂。
  胡厚宣在《楚民族源於東方考》一文中進一步提出“楚之始祖為祝融”。 祝融即陸終……即遂人即黎;而陸終、遂人及黎皆為東方之民族也。……惟其後以周民族之東方壓迫,及黃河流域之漸漸改變,東方民族遂多相率南遷,而楚民族勢力甚強,乃漸擴土於南方之江漢流域。 郭、胡二先生倡楚族東方說,至今仍影響深遠,不少學者從此說。 < By 安原田 譯>
  http://big5.xinhuanet.com/gate/big5/hb.xinhuanet.com/cwh/2005-03/03/content_3813113.htm






국내 최초로 초(楚)나라와 진(秦)나라의 정치사적 문화사적 관계를 벗겨낼 대륙의 향토사료를 발췌(拔萃) 번역한다. 국제저작권법으로 인해 출처는 밝힐 수 없고 국내독자에게 핵심만 뽑아 번역 소개한다. 이는 앞서 예고한 부분이다.

*오월초(吳越楚)는 바로 양자강 유역의 회이(淮夷) 족이 건설한 국가다.동이족 조상선조 태호복희 풍씨 성을 황웅씨(黃熊氏)라 부른 기록이 또한 「제왕세기」에 나온다.(황제헌원의 유웅씨와 단군이 즉위하는 신목과 웅상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황제헌원은 웅(熊) 도등(圖騰:깃발상징 토템)을 숭배하여 유웅(有熊)씨가 되고 그가 거주한 곳을 웅산(熊山)이라 불렀다 하며 높은 수레(高車)를 발명한 것으로 인해 헌원(軒轅)씨가 되었다 하니 황제 헌원의 유웅씨 역시 황웅씨(黃熊氏)의 태호복희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황웅족 곰족의 후예는 양자강 유역의 동이족 묘요(苗猺) 신화와 더불어 그 이동 경로를 짐작할 수 있지만 우리는 뒤의 담론부분에서 이들이 대륙의 다사다난한 동이 제 족간의 쟁패과정과 이합집산과정에 의해 양자강 유역의 회이족(淮夷族)-초민족(楚民族)인 웅영족(熊盈族)으로 변신해 나아갔음을...(담론중)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초나라의 성쇠는 초인의 경제 문화발전이 황금기에 이르렀던 춘추 만기에 이미 그 기미가 드러났다. 이 전에 초나라의 발전이 매우 신속하고 초왕이 천하를 쟁패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초와 진(晋)의 필전(邲戰)에서 진나라 사람 난서(栾書)가 한 말과 같다.

“그 군주는 곧 국민에게 가혹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을 준칙으로 하여, 민생이 어렵고 재앙이 닥침이 하루도 빠짐없을 것을 두려워하며 경계하여 나태함을 용납하지 않았고(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 于民生之不易, 禍至之無日, 戒惧之不可以怠)”  《좌전(左傳)》선공(宣公) 12년.


더 나아가

“섶나무로 만든 초라한 수레와 누덕누덕 헤진 기운 옷으로 산림을 계몽한다(篳路藍縷, 以啓山林)”는 정신으로 스스로 노력함으로써 “민생은 근면하고, 근면함은 끝이 없다(民生在勤, 勤則不匱)”는 진리를 스스로 권고했다. 초왕은 정신을 가다듬어 나라를 잘 다스리도록 노력하고, 근면하게 정치하고 백성을 사랑하니 자연히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 어진 신하를 신용하게 되어 “내성은 친족에서 선택하고 외성은 오랜 친구에서 선택하여(內姓選于親, 外姓選于舊)” 《좌전(左傳)》선공(宣公) 12년.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귀천을 따지지 않았다. 유명한 신하와 현명한 재상에는 자문(子文), 손숙오(孫叔敖), 팽중상(彭仲爽) 등이 있다. 자문은 초의 왕족이고 손숙오는 초의 선비이며 팽중상은 신(申)나라의 포로였다. 춘추말기에 영왕(靈王), 평왕(平王)은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생활하며 주색에 빠져 무도하기 그지없어 이미 내란과 외환을 점차 조성하고 있었다. 그 후의 혜왕(惠王), 도왕(悼王), 선왕(宣王), 위왕(威王) 등도 부를 믿고 사치를 좋아하는 방면에서 아마도 전왕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사적에는 선왕(宣王)이 “운몽을 거닐 때, 천승의 마차를 끌고 깃발들로 하늘을 덮어 해를 가렸다(游于云夢, 結駟千乘, 旌旗蔽日)”고 되어 있다.《전국책․초책(戰國策․楚策)》.
회왕(懷王)은 사치와 호화로움을 추구했는데, 굴원(屈原)의 《초혼(招魂)》의 궁정생활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경양왕(頃襄王)은 문헌에 기록된 것과 같이 “쾌락과 사치에 몰두하여 국정을 살피지 않았다(專淫逸侈靡, 不顧國政).” 《전국책․초책(戰國策․楚策)》.
초왕은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쾌락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였으니 자연히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는 간신을 총애하고 신임하였으며 비위를 맞추는 인척과 귀족에게 상을 내렸다.

예를 들어 선왕(宣王)은 안릉군(安陵君)을 봉하고, 회왕(懷王)은 상관대부(上官大夫)를 총애했으며, 경양왕(頃襄王)은 “(궁내에 있을 때) 왼쪽에는 주후, 오른쪽에는 하후가 있고, 궁 밖으로 나가면 항상 언릉군과 수릉군이 수행하여(左州侯, 右夏侯, 輦從焉陵君與壽陵君).”《전국책․초책(戰國策․楚策)》.
“대신의 권력이 너무 무겁고 봉군이 너무 많아(大臣太重, 封君太衆)” 《한비자․화씨(韓非子․和氏)》
집권계층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고질병을 낳았으며 윗사람이 하는 일을 아랫사람이 그대로 모방하여 향락을 추구하며 일생을 흥청망청하는 부패 풍조를 형성했다.

집권귀족이 결성한 당인(黨人) 집단은 무리를 지어 나쁜 짓을 일삼고, 앞 다투어 탐욕을 일삼으며, 군왕을 미혹하고,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며,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질투하고, 충신을 배척하며, 토지를 점령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약소국을 업신여겨, 장기적으로 조정을 확고히 독점하여 초나라의 정치가 혼탁하고 암울하게 되었으며 초인의 변법혁신의 염원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회왕과 경양왕 대는 초인이 전성기에서 갑자기 쇠락기로 전환하는 시기로, 마침 “초나라가 봉군제를 시행한 절정기(楚國施行封君制的極盛時期)”이며하호(何浩) 《논초국봉군제적발전여연변(論楚國封君制的發展與演變)》, 《한강논단(漢江論壇)》1991년 제5기.

또한  “뭇 소인들이 다투어서 탐욕을 내어 온통 군자의 단점을 찾던(衆皆競進以貪婪兮, 凭不厭乎求索)” 가장 방탕한 시기였고 <굴원(屈原)《이소(離騷)>
, “결국은 그 뜬구름을 가려, 어둠이 끝없이 내려 빛이 없어진(卒壅蔽此浮云兮, 下暗漢而無光)”송옥(宋玉)《구변(九辯)》
정치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봉황새는 날로 멀어만 가고 제비․참새․까마귀가 고당과 뜰에 깃들었다(鸞鳥鳳凰, 日以遠兮. 燕雀烏鵲, 巢堂壇兮).” 굴원(屈原) 《구장․섭강(九章․涉江)》


수많은 초나라의 인재들이 자기 나라에서는 집권층에게 배척당하고 벼슬길을 차단당한 채 할 수 없이 멀리 타향으로 가 벼슬길에 들어서길 강구하여 포부를 펼쳤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적국의 동량으로 삼게 되었다.

초나라의 정치구조는 다원적이었으나, 다원적 정치구조를 정상적으로 운용하려면 어진신하가 현명한 군주를 보좌하여 형성된 중앙정권을 정치의 핵심으로 하여 튼튼하게 이끄는 데 달려있다. 하루아침에 아둔한 군주가 사치하여 정치를 태만히 하고, 집권층이 당파를 결성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며, 봉군들이 제멋대로 하여 군신이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상하의 명령이 전달되지 않으며, 백성은 덕에서 멀어지게 되어, 다원정치 구조의 우세는 열세로 변했고, 초나라는 효과적으로 군정을 통일하여 격렬한 겸병전쟁에 대응하는데 힘을 집중함으로써 강대한 침입자들에 저항할 수 없게 되어 마치 흩어진 모래처럼 비록 넓게 배치하긴 했지만 일격을 막지 못했다.

장구하고 치열한 부패풍조는 초나라에 전사회적으로 만연했고 초인의 예전의 예기와 용기, 개척정신과 진취적인 기상은 손상되었다. 굴원의 《초혼(招魂)》에 묘사된 초 왕궁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안락을 누리는 광경은 귀족들이 “술과 오락을 멈추지 않고 밤낮으로 빠져있다(娛酒不廢, 沈日夜些).” 고고학계에서 발견한 전국시대의 몇몇 중소형 초(楚) 고분 속에서는 종종 대량의 정미한 식기, 술그릇, 악기 혹은 견직물 같은 수장품이 나온다.

이는 물론 초문화의 찬란한 성취의 반영이지만 동시에 초인의 향락을 추구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호화로운 풍조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인(秦人)이 제후를 병탄할 전략을 실시할 때 초인은 천하를 통일하려는 계획을 아직 세우지 않았고, 진인이 촉왕(蜀王)과 결탁하여 초나라를 도모할 때 초인은 오히려 서진하여 촉을 정벌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진인이 수만의 군사를 풀어 수도 언(焉)과 영(郢)을 함락할 때 초인은 오히려 “그 지역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전부 자기 집만을 돌보며 각자 마음이 뿔뿔이 흩어져 투지라고는 없었다(自戰其地, 咸顧其家, 各有散心, 莫有鬪志).” 《전국책․중산책(戰國策․中山策)》에 기록된 백기(白起)의 말

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근원은 최고 통치자의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에 있었다. 이는 결국에는 초나라가 부유하지만 강하지 않고, 크지만 실제로는 텅 빈 상황을 조성하여, 진인이 초를 식은 죽 먹듯이 정벌할 수 있게 했다. 초의 수도가 동천한 후에도 초나라의 정치는 여전히 별로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춘신군(春申君)의 권세가 조정과 민간에 두루 미치고 초왕의 부(富)가 으뜸가 천하에 부패가 절정에 달했다. 초나라는 결국 강물이 날마다 아래로 흐르듯이 쇠락을 막을 수가 없었고, 마치 세찬 물결이 이미 쏟아진 것처럼 구할 수가 없었다. 춘추말년의 초 철학자 노자(老子)가 말했다.

“부귀를 뽐내는 것은 스스로에게 재앙을 선사하는 것이다(富貴以驕, 自遺其咎).” 초나라의 불행한 운명은 그의 말 속에 담겨 있다. 부를 믿고 사치를 뽐내며, 큰 것을 믿고 정치를 소홀히 하여, 사치로 전쟁을 부르고 부패로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러, 초나라는 급격히 쇠퇴하여 결국은 망했다. 이는 후세인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경계가 되고 얼마나 깊은 교훈을 남겼는가!(안원전의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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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안원전 담론 382.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3-초인이 진나라를 섬기던 역사의 공헌 및 통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감무(甘茂)   안원전    2011/05/17  3185
422    안원전 담론 381.약초를 널리 보급하여 질병을 치료한 다릉(茶陵:차릉)의 ‘세 가지 보물(三寶)’   안원전    2011/05/11  2861
421    안원전의 담론 380. 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 2   안원전    2011/05/09  2553
420    안원전의 담론 379.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1   안원전    2011/05/09  2600
419    안원전의 담론 378.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안원전    2011/05/03  2495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안원전    2011/04/30  2428
417    동이 대륙상고사 답사를 마치고2(2002) 續원고   안원전    2011/04/30  2399
41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6. 거영신(巨靈神: 강의 신)   안원전    2011/01/10  2893
41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    2011/01/05  3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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