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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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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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기획. 웅장한 동이 대륙사 홍산문화(紅山文化) 대문구(大汶口) 문화 및 용산(龍山)문화의 놀라운 고고학적 실체 국내 최초 완전 공개!
한민족 상고 대륙사를 말살하기 위해 이등박문이 식민지 수탈주의 사관으로 도입한 독일의 랑케 실증사관은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민족 상고대륙사를 증발시킨 황국식민사관을 고스란히 전수한 반도 식민사학의 추종자들을 부지기수로 양산해 놓았다. 대륙에 고스란히 온존해 있는 이들 동이대륙사의 실체를 국내에 처음 밝힌다. 대륙의 지나 사학자는 동이족을 지나족의 일부로 보는 해석학적 문제를 남기고 있지만 홍산문화 대문구 문화 및 용산문화 유적이 동이족의 유산이라 못박고 있다. 해방이후 국내의 강단사학은  구구한 변명과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황국 식민지 사관의 착실한 후계자들로 반도 사학으로 경도된 정저지와라는 점에서 모조리 쓸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야 할  개혁대상이다. 상고시절 대륙에서 반도로 밀고 들어가기 전 다양한 이름의 문화 유적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이들 다양한 이름의 "동이 제족"은 아래와 같이 눈부시고 정묘한 문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국내 강단사학자들은  반도사학에 경도되어 정작 상고시절에 대륙에서 반도로 밀고 들어온 동이제 족의 주류와 크게 상관없는 토착 반도인의 고고학적 유물 몇개만 껴안을 줄 알고 있다. 반도 고고학이 밝혀내고 있는 이러한 반도내 고고학적 유물 가령  한탄강변 전곡리 유적지라든가 공주 석장리 유물이라든가 그 외 유사문화는 당연히 대륙내 동이 제 족의 영향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동삼리 패총이라든가 그 외 지석묘라든가 하는 등의 구석기 시대 고고학 문화유적은 실상 대륙내 동이 제 족의 주류문화와는 별반 상관없는 변방문화의 발자취이거나 당시 그 영향권에 들어있던 변두리 문화에 불과한 것이다.실제 이헌종은 <동북아시아 중기구석기문화 연구>에서, 대륙에서 리프팅된 제 문화권의 유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시베리아일대의 무스테리안기의 문화와 멀리 확산되어 있는 유라시아 석기문화와의 유사성을 어떤 바탕에 의해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스테리안 석기문화에 대한 기술체계의 특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문화군, 문화의 계통, 기술적 계통, 문화확산, 발전단계선 등이 지역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유라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중앙아시아와 몽고지역에도 확산되어 있는 무스테리안문화의 제 양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Okladnikov 1981,1986; Derevianko 1999). 결국 이 지역의 중기구석기문화는 다양한 무스테리안기의 석기문화 즉 유럽의 석기문화와 연관된 석기문화의 제양상과 거의 유사한 문화 계통, 기술적 전통 등을 갖고 일정한 발전단계를 밟았다. 그런데 이 지역의 남동쪽에 위치한 동북아시아 여러 지역의 석기문화와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주목된다 하겠다. -다음글 "우리 민족문화는 세계문화의 원조다"는 감,진,간의 원리에 의해 바이칼로부터 천산, 그리고 중원 대륙의 대륙사 시대를 거쳐 한반도로 유입된 도가사학의 상고대륙사와는 약간 다른 관점을 가진 글이지만 우리의 민족문화가 세계문화의 뿌리라는 점에서 권하고 싶은 글임. 환단고기에서나 필자의 담론에서는 상고 시절 대륙을 덮고 있던 것이 동이 제 족이 건설한 문화임을 말하고 있지만 다음 글은 상고시절부터 북만주, 한반도에 중심을 둔 우리 민족이 대륙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관점차가 있다. 우리 민족문화는 세계문화의 원조다(보관용 자료)Click here
*세계 어느 나라를 역사를 보더라도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록없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응용한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사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한국은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고고학이 더 중요한 나라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응용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국사의 연구출발점을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마냥 중국이나 일본학자들이 해석해주는 것을 그대로 받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 해석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방법대로 중국 사서를 처음 출발지를 삼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 사료로 출발할 것인지부터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고고학 자료를 응용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결정을 해야 한다. 이렇게 먼저 출발점을 정해놓고 시작을 하면 출발지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 상고사 연구에 있어서 고고학 응용에 관하여-An Applied Archeaology in Korea Ancient History -Antiquities in Liao Xi Area- 복기대(Bok Gi-Dae)

*참고:동이민족의 연원을 말하자면 소련의 저명한 인류역사학자인 오과라기야부(奧科羅基耶夫)의 《인류의 발생과 이동》이란 논문에 의하면 "지금부터 만여 년 전에 파미르 고원에는 능가선무(能歌善舞;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가무에 능한 동이족 조상 배달국 및 고조선밖에는 없다)의 황색인종이 녹지에 살고 있었는데, 그 민족이 햇빛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여 천산(天山)과 아이태(阿爾泰:알타이)산맥에 살았기에 아이태어계 족(阿爾泰語系 族:알타이어계 족)"이라 하며, 차츰 동으로 이동하여 바이칼(패가이 : 貝加爾)호, 몽고사막으로 분산(分散)한 그 일파가 9000여 년 전에 적봉시 오한기흥융와 보국토향(赤峰市 敖漢旗興隆  保國吐鄕)에서 살았고, 6000여 년 전에 적봉시 홍산(赤峰市 紅山)에서 홍산고국(紅山古國)(즉, 배달환국 桓國)을 세운 것이 환국 제2조(第2朝) 한웅시대로서 이 배달환국 문화가 홍산문화이며, 홍산문화 계열은 지금부터 8000여 년 전 흥륭와(興隆 )문화에서 - 홍산문화 - 하가점 문화까지 계속 발전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국가문물국이 고도로 중시하여 1993년 8월 14일∼24일간에 미, 영, 일, 대만 등 세계 11개국 100여명 학자들이 참가한 "중국북방 고대문화 국제학술연토회"를 적봉시(赤峰市)에서 개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이 문화가 동이족 토착인의 문화로서 동방고대 문화의 발원지이며 세계문명의 창시문화라고 학자들이 공인하였습니다. 동이족이 창립한 홍산(紅山)문화는 이집트나 바비론문화보다 근 2000년을 앞선 세계 태초의 문화였으나 그 발견이 늦어 세계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東夷民族 論說(동이민족 논설) >: 송호상) Click here!


*여인이 앉아 있는 모습의 도기소상 일부(陶塑女坐像局部):이 상(像)은 대략 실제 사람 크기의 3분지 1 크기이다. 받침대위에 무릎을 정좌한 자세로 공양해 받들어진 신상(神像)을 표현한 것이다.
*홍산문화(紅山文化) 통형기(筒形器):이런 종류의 통형기는 가운데 구멍이 있고 밑바닥이 없으니, 이는 단지 우하량(牛河梁) 홍산문화 적석총 위에 대량으로 출토된 것이다. 이는 마땅히 전적으로 적석총 매장을 위해 만들어져 설치된 특별한 종류의 그릇이다.


*동북지구 신석기시대 옥기 출토 지점 분포도
*홍산문화1*홍산문화2*홍산문화3*홍산문화4*홍산문화5*홍산문화6*홍산문화7*홍산문화8*홍산문화9

*백옥저룡(白玉猪龍):대륙인의 관념 가운데, 용은 일종의 추상화된 신령(神靈)이다. 이러한 옥저룡의 출현은 홍산(紅山) 문화 거주민이 이미 용을 숭배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공예 각도의 관점에서 완상할 것 같으면 그 조형이 고박(古朴)하고 구상이 독특하고, 조각기술이 간단하고 세련되어 생동감 있으니, 이것이 홍산(紅山) 문화 옥기의 대표작이다.
*옥2연패(玉二聯珮):이 옥은 마땅히 일종의 패옥 장식이다.
*와구문옥 장식상(瓦溝紋玉飾):옥기 표면을 갈아서  와구상(瓦溝狀:구는 봇도랑)의 문양장식을 드러냈으니, 옥기 표면 변두리가 빛나고 매끄럽게 했으니, 이는 홍산(紅山) 문화 옥기의 특색의 하나이다.


http://www.dgmbc.com/TV/SpecialProgram/SP060925_02.html

지존신권(至尊神權)의 상징-


옥예기(玉禮器)



裴李崗文化是少典氏文化,仰韶文化的早期是神農時代,中晚期是黃帝時代,龍山早中期是顓頊、帝嚳、堯、舜時代,龍山文化晚期已進入夏禹立國前後。(http://222.137.252.25:82/gate/big5/www.xinzheng.gov.cn/html/20060630/078790.html)



1. 북방 옥기(玉器) 중심



옥기류는 동이족이 중심이 된 문화권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발달한 옥기 제조는 대륙 신석기 시대 만기(晩期)를 상징하는 표지(表志)의 하나다. 옥기는 일종의 비실용적인 그릇 종류로, 옥기시대의 개시는 곧 특수한 사회기량을 부여받아, 예기(禮器)로 충당하다가 뒤에 발전하여 왕권의 상징물이 되었다. 신권은 왕권세습이 끊어진 후, 옥기(玉器)는 하늘을 통하는 신기(神器)가 되었다. 현존하는 대륙 최고의 옥기(玉器)는 지금으로부터 약 8천 년 전의 것이니 이는 동이족의 문명권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 6천 년 전에 출현한 것을 분별하면, 돼지 용과 종(琮:瑞玉,符信), 벽(璧:둥근옥) 중심의 두 가지 옥기(玉器) 계통이 있는 바, 이는 곧 동이족 문화인 홍산(紅山)문화와 마찬가지로 동이족 문화인 양자강 하류의 양저(良渚)문화(상해 왼쪽 소주 태호(太湖)부근)로 이들은 대륙 선사시대의 남북의 두 가지 옥(玉)문화의 중심이다. 홍산(紅山)문화 옥기(玉器)는 정미하게 좋은(精良)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을 깊이 고찰하여 연구했으며, 대표적인 기물(器物)로는 옥(玉)으로 만든 돼지(猪), 용(龍), 삼련벽(三聯璧), 갈고리 구름형 옥패(勾云形珮) 등과 같은 것이 있고, 동 시대 기타 지구에 있어서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으니, 이는 대륙 북방의 옥기(玉器) 제조의 수준을 대표한다.



대륙에서 가장 빠른 옥기(玉器)



대륙에서 가장 빠른 옥기(玉器)는 가히 지금으로부터 대략 8 천 년 전의 사해(査海)문화와 흥륭애(興隆涯) 문화로 소급될 수 있는데(사해문화와 흥륭애 문화는 동이족 문화임은 밝힌 바 있다), 출토된 옥기(玉器)로는 옥결(玉玦:한쪽이 이지러진 패옥), 옥부(玉斧:옥도끼), 옥관주(玉管珠), 옥비수형 장식 등 전체 모두 투섬석(透閃石), 양기석(陽起石) 류의 연옥(軟玉)에 속하는데, 이는 진정 의의가 높은 옥기(玉器)로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빠른 옥기 (玉器)이다. 이로 인해 동북 지구는 마땅히 대륙 북방 옥기의 기원지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5 천년전, 대륙 동북지구에서 홍산 (紅山)문화 옥기(玉器)가 출현해 북방 옥기 문화의 주체적인 중심이 되어, 시라무렌 강(西拉木倫河), 대릉하(大凌河) 유역 및 그 부근지구 에 분포했다. 흥륭애Click here!사해옥결Click here!


오직 옥(玉)만이  장례의 매장풍속이 되었다.



홍산(紅山)문화 옥기(玉器)는 묘장(墓葬)에서 많이 출토되는데, 상등 규격의 옥기(玉器)는 대형 적석총 중심 대묘 가운데에서 많이 보인다. 이들 옥기(玉器)를 출토한 대묘(大墓)는 이를 만든 공정(工程)이 아주 커서, 기세가 웅위(雄偉)할 뿐 아니라 같이 매장된 옥기(玉器) 수량이 많고 정미한 재료를 사용해 묘 주인이 마땅히 당시 사회의 귀인임을 표명하고 있다. 이것 외에, 중형 묘지들도 항상 옥기(玉器)를 따라 매장하여, 옥기(玉器)가 홍산 문화 매장 중에서 유일한 부장품이 되었으니, 이같이 오직 옥을 매장하는 현상은 홍산문화 매장습속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홍산(紅山) 문화 옥기의 공예특징




홍산(紅山) 문화 옥기는 대형을 위주로 하여, 용, 호랑이, 거북이, 물고기, 매미 등의 동물형상이 많이 보인다. 갈고리 구름형(勾云形) 옥패장식, 옥저룡(玉猪龍), 수면아형(獸面丫形) 옥기 및 쌍저수삼공(双猪首三孔) 옥기 등이 있으니, 이는 한결같이 홍산문화 옥기의 대표작이다. 홍산(紅山) 문화 옥기의 가공은 보편적으로 절단하고 자르는 기술을 사용해 옥을 재단했으며, 관첩법(管鉆法)의 바늘구멍을 전용했다. 그런 뒤에 옥기 주변 언저리를 빛나고 매끄럽게 가공했다. 별도의 한 가지 특징은 옥기를 흰색의 우아, 장중한 시각효과 강조한 점으로, 아주 드물게 옥기 위에 꽃무늬를 조각한 것이 있다. 겨우 보이는 조각방법은 주로 2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얕은 원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해 동물의 머리, 5관을 볼록하게 나오게 하는 법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옥기(玉器) 표면을 갈아서 볼록 나오게 하는 일종의 와구상(瓦溝狀)의 문양장식이 있다. 이들 2 종류의 방법은 한결같이 옥기 표면 변두리를 빛나고 매끄럽게 하는데(光滑圓潤)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그 나타난 광소(光素:무늬없음)와 장식없음이 특징을 이룬다.


*옥쌍저수삼공기(玉雙猪首三孔器):양쪽에 돼지머리 장식을 한 3개의 구멍이 달린 옥기. 홍산(紅山) 문화 옥기의 정품(精品)으로, 이 작품의 용도인 공용(功用)은 오히려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용문옥촉(龍紋玉钃):요산(瑤山)출토. 이는 양저문화 옥기의 빼어난 작품이다.
*옥벽(玉璧):옥벽이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데, 이는 제천(祭天)용 예기(禮器)이다.
*옥종(玉琮)의 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옥종(玉琮) 위에 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 장인(將人),신(神)이 복합적으로 새겨져 있으니 이는 마땅히 양저인(良渚人)이 숭배한 신휘(神徽)이다. 큰 눈과 관을 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대륙 남방 선사시대 옥기 발굴 분포도


지존신권의 상징-옥예기(玉禮器)


2,남방 옥기중심



상고 시대 동이족 거주처인 양자강 하류 양저(良渚)문화에서 대량의 정미(精美)로운 옥기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대륙 남방지구의 태호(太湖:소주(蘇州) 바로 왼쪽)유역에 옥기문화의 중심이 집중 분포되었음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옥의 재료는 채취, 운반, 질그릇 또는 기와 제작(制坏), 쪼아서 조각(彫琢)한 뒤 완공되니 많은 공정순서가 있으니, 많은 공예 복합형이자 복잡한 노동 집합적 산물이니, 이는 당시 옥기 제조가 전문적 직업의 분업적 작업으로 완성됨을 말하고 있음과 동시에 조직관리기구가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양저(良渚)문화 옥기(玉器)에는 3가지 특징이 있는데 하나는 수량이 크고 종류가 다양하여 출토양이 수 천 건에 달한다는 점이며, 대륙 선사시대 문화의 으뜸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종류로는 벽(璧:둥근옥), 종(琮:瑞玉), 월(鉞:도끼), 황(璜:瑞玉,璧玉을 두쪽낸 패옥), 관상기(冠狀器), 규(圭:홀), 장(璋:반쪽 홀), 촉(钃:호미), 삼차형기(三叉形器), 반원형 장식(半圓形飾), 동물형 장식과 각종 꽃잎형 장식(瓣形飾), 곶괘식(串挂式:꼬치 족자식)이 있다. 두 번째로는 제작고예가 고도로 발달하여 장식문양의 화문이 섬세하여 1mm 범위내에 4-5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탄성을 그치지 않게 한다. 세 번째로는 제례 의식용으로서의 옥의 성질이 있어, 종교와 예술의 결합체인 점이다.



양저(良渚) 옥기의 공예 특징



양저(良渚)문화의 옥기 주체는 진옥(眞玉)에 속하니, 곧 각섬석(角閃石)과 휘석(輝石)이며 또한 사문석(蛇紋石) 및 마노(瑪瑙) 류의 가옥(假玉)도 있다. 공예제작은 톱질해 자르고, 첩공(鉆孔:침공=구멍), 문양조각 및 광택 등의 공정이 있다. 톱으로 자르는데는 저울을 사용하고, 물과 옥가루를 배합해 질을 높였다. 첩공(鉆孔:옥에 새긴 구멍)은 관첩(管鉆)과 실심첩(實心鉆) 2가지 종류의 방법이 있다. 꽃문양을 새겨 넣는 방법에는 누공(鏤孔:구멍을 새겨넣는 방법), 부조(浮雕), 양각 3 종이 있다. 옥종(玉琮), 추형기(錐形器:송곳 추) 상의 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은 모두 낮은 부조(浮雕)와 양각 세천(細淺) 2 종의 기법으로 조각하고 파내 만들었다. 주체문(主體紋), 장식문(裝飾紋), 지문(地紋) 3층 중첩 조합문양은, 신인비량(神人鼻梁)으로 중축(中軸)으로 삼아 2개 측면상(側面像)에 한 폭의 입체도형의 표현수법으로 합성한 것으로 후일 청동기 공예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옥기(玉器)의 종교 수완



양저(良渚) 옥기의 발달은 생산력 발전의 전제하에 건립되었는바, 하나의 중요한 원인인 원시 숭배작용이 그 바탕이 되었다. 짐승얼굴과 신인(神人)을 조합해 만든 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은 양저(良渚) 옥기 장식의 주제로 이 또한 양저인(良渚人)이 숭배한 주신(主神)이다. 옥종(玉琮:아래 양저문화 2번 클릭!)은 원시종교 가운데 천지를 통하는 통로의 중개(仲介)로, 이는 수면신(獸面神) 숭배로 핵심적 신권을 체현한 한 것이니, 문양 장식을 기타 옥기와 비교하면 조탁(雕琢)공예가 아주 정교하고 치밀하다. 양저(良渚) 대묘(大墓)의 주인은 신권을 대표하고, 천지를 통하는 통로인 종(琮), 벽(璧)을 갖추고, 군사 통수권을 상징하는 옥도끼(玉鉞)를 갖추었으니, 그들은 신의 역량을 빌어 자기의 권세와 위엄을 강화시켰으며, 인간의 생사를 지배하고 재부(財富)를 거두어 모았다. 옥(玉)은 무(巫)가 신에게 봉헌하는 예품(禮品)으로, 무(巫)는 신(神)의 의지의 체현자이다, 이로 인해 옥은 또한 인간을 살피는 신의 대표다. 양저문화1CLick here! 양저문화2CLick here!



*묏 산형 옥장식:신인수면문(神人獸面紋)은 양저(良渚)문화 옥기의 전형적인 장식 문양이다.
*채도고형기(彩陶觚形器:채도 술잔형 그릇):술을 마시거나 혹 물을 마시던 그릇으로, 조형과 문양장식이 빼어나고 아름다우니, 마땅히 이는 씨족 수령의 용기(用器)이다.
*도두(陶豆):식물을 담는 용기



문명을 타고 넘는 문지방(門檻:우리 함)





가정 구성의 발전 변화



가정은 현대 인류사회 군체(群體)의 기층단위이다. 그러나 멀리 상고 시대에 있어서는, 씨족조직의 작용이 촌락생활의 각개 방면으로 침투하여 가족과 소가정이 한결 미약하게 작용했다. 앙소(仰韶)문화 조기(早期)에 이르자 대가족 제도는 폐지되기 시작했다. 앙소(仰韶)문화 만기(晩期)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작용은 곧 일상생활에 있어, 경제, 종교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방옥(房屋)의 배치포국상 단원식(單元式) 다간방(多間房)의 출현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하남, 호북, 안휘 등지에는 이러한 종류의 다간방(多間房)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남 정주(鄭州) 대하촌(大河村) 유적지와 하남 석천(淅川) 하왕강(下王崗) 유적지 내의 단원식(單元式) 다간방(多間房)이다.




대가정의 분리



앙소(仰韶)문화 만기(晩期), 씨족조직은 혈연관계의 씨족사회가 아니라 촌락사회였다. 촌락내의 동일족 성원은 한 곳에 집중적으로 거주해 대 가정을 형성했다. 동시에 가족성원은 다시금 분리해 나가 사람 수가 비교적 적은 소 가정으로 독립해 대 가정 부근에 거주했다. 이는 가정이 중심이 된 일부일처제도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정주(鄭州) 시 동북 교외의 대하촌(大河村) 유적지의 예에서 보듯이 면적은 30 수만 평방 미터였다. 유적지 중부 서편에 있는 고하도(古河道)는 유적지를 동서로 나누어, 거주집단을 2개의 사회집단으로 나누었으니, 각자 거주지구와 묘장구(墓葬區)를 갗추고 있다.



여러 씨족이 모여 산 촌락



이 시기의 촌락 거주민의 결합방식은 중대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서로 같지않은 대가족 성원이 동일 촌락의 구성원으로 결합했다. 이는 원시사회의 혈연관계가 느슨해지고, 지연관계가 한층 강해진 결과였다.. 이러한 현상은 앙소(仰韶)문화 조기(早期)에 있어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으로, 앙소(仰韶)문화 만기(晩期)로부터 점점 증가하기 시작하여, 최종적으로 촌락포국(布局)과 사회조직 형식의 중대 변혁을 야기하고, 사회가 .문명시대를 향해 매진하도록 촉진제 역할을 했다.



*대하촌(大河村) 방옥(房屋) 유적지:대하촌 내의 매 일개 거주지에는 한결같이 두 줄로 늘어선 방옥이 배치되어 있으니, 각기 배열된 방옥은 하나의 쌍칸 방과 별도로 하나의 단칸 방으로 구성되어 완전한 거주단위를 이루고 있다. 이런 형식의 방옥은 상대적으로 완전한 소가정 거주의 혼인 곧 대우혼(對偶婚) 가정에 적당하다.
*하왕강(下王崗) 장옥(長屋) 복원도(復原圖):하왕강 유적지는 하남성 석천현(淅川縣) 서남 하왕강촌(下王崗村) 동쪽 산등성이 위에 있는데, 유적지 면적은 약 6천 평방미터다. 중심되는 장옥(長屋)은 17개의 독립된 한 벌 단위의 투방(套房)이 있으며 매 투방(套房)에는 한결같이 문청(門廳)과 주실(主室)이 조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5개는 단간투(單間套)와 12개의 쌍간투(雙間套)가 있다. 매 일개 단위의 방은 각개 독립적인 대가정 혹은 가족이 된다. 부속 건축은 세 칸이 서로 연결되었으나 문, 대청이 없는 방옥으로, 당연히 별도로 대가족 성원을 이루어, 장옥(長屋) 거주민과는 혈연관계를 갖지 않는다. 촌락의 주체 거주민은 장옥(長屋) 내에 거주한 5개 대 가정과 가족이 됨을 볼 수 있으니, 가히 그들은 동일씨족 성원이다. 부속 건축의 거주민은 곧 별도의 사회집단 성원이 되며, 전체 취락은 2 개의 씨족이 공동으로 건립한 촌락사회다.


*대하촌(大河村) 방옥(房屋) 평면도:두 칸 방은 비교적 고정적인 대 가정으로, 양측의 단칸방내의 성원은, 마땅히 분리해서 나간 사람의 수가 비교적 적은 소 가정으로, 면적은 작고 부엌이 앖는 방칸이니, 이는 마땅히 미혼청년의 사교활동장소다.
*전당(殿堂) 유적지 발굴현장:이 자리는 큰 방옥(房屋) 규모로 지어져 건축기술이 이미 단지 비바람을 피하고 동물의 피해를 줄이는 원시적인 간단한 건축구조 개嶽?초월한 것으로 보이며 원시사회 건축 기술의 가장 높은 수준을 대표한다.




부락연맹 수령의 전당



신석기 시대 만기(晩期)의 방옥(房屋)은 적지않게 다칸방이 유행하여 다시금 초대규모의 원시건축이 출현했다. 감숙성 진안(秦安)에 있는 대지만(大地灣)에서는 면적이 크고 연구가치가 있는 대형 건축 방옥 유적지가 여러 개 발굴되었는데, 그 중심은 중심구(中心區) 안의 면적이 가장 큰 자리(座)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당(前堂), 후실(後室)과 동서 2 개의 상방(상 房) 및 방전(房前) 광장으로 말미암아 전당(前堂)의 지면, 화덕표면, 기둥 장벽 및 방 천정은 한결같이 풀 먹인 재를 발랐는데 풀 먹인 재는 자갈을 불에 구워 재료로 썼으니, 완성된 방간은 부하고 화려함을 드러냈다.

더욱이 그 평평한 지면 표층은 견고하고 단단하게 다져져 서 색채가 밝게 빛나고 청흑색을 띠어 흡사 진흙을 물에 갠 판과 같았다.  후실 및 동서 상방은 부속건축이 되며 문을 두어 후실과 더불어 서로 통하게 건축되었다. 광장 넓이는 약 130 평방 M로, 대칭으로 배열한 부락 도등 깃발을 세우는 기둥이 공히 2×6=12개씩이나 매장되어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본 바 이 시기 최대의 건축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의 앙소(仰韶)문화 만기(晩期) 유적지에 속하는 것으로 원시 전당(殿堂)이 되는 명예를 입었다. 이는 이미 부락 연맹 수령이 거주한 전당으로 또한 부락 연맹회의를 소집해 열고 중대한 종교 활동을 진행한 장소였다.

방안의 제단에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항아리(罐), 소반(盤), 주발(鉢), 항아리(缸) 등을 제하고도 직경 46厘米의 4족 솥(鼎), 파기(簸箕:곡식켜는 키)형 도기, 아래가 평평한 평저부(平底釜) 등 기물이 출토되었으니, 이는 가옥내의 큰 화덕 제단이 불을 지펴 밥을 짓던 곳임을 설명하는 것이니, 이는 다시금 뭇 대중이 화덕 옆에서 종교활동을 진행한 기능이 있음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 유적지는 최고규격의 중심취락이다. 원시전당 앞의 기둥은 마땅히 수령이 부락을 통할한 깃발 도등(圖騰)을 내건 기둥이다.



*원시회화: 이 화폭은 당시 사회가 생식(生殖)을 숭배한 현상을 반영한다.
*승문홍도완(繩紋紅陶碗):승문(새끼줄 문양)을 교차한 것은 감숙성 대지만(大地灣) 유적지의 특색의 하나이다. 대지만(大地灣) 문화는 황하유역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고문화 도기(陶器)의 하나이다.
*인두형(人頭形) 구채도병(口彩陶甁):병의 입을 둥근 인두상(人頭像)을 조각해 넣었으며, 머리를 늘어뜨리고, 눈 잎, 콧구멍을 새겨 넣는 표현기법을 사용했다. 인두형 구채도병은 대지만 유적지가 자랑하는 것으로 필자가 직접 현지에서 확인한 것임.대지만 1기 유적지가 지금으로부터 약 7500년이니 우리의 배달 환웅국 시대 태호 복희 시기에 해당한다 하겠다.
*감숙성 대지만(大地灣) 원시전당(原始殿堂) 복원도:실내면적 126평방미터, 정문이 남쪽에 있고 좌우에 대칭의 측문이 있다. 실내 가운데 직경 2.5미터의 큰 화덕이 있고, 전후 담장 위에 각기 8개의 벽기둥, 청석 주춧돌, 주춧돌 아래 돌, 조약돌(砂礫), 인조 도질(陶質) 경골재료(輕骨料) 및 풀먹인 재(灰)로 섞어 응고시킨 토층 등이 있으니 강도가 진흙정도다.

  


문명으로 들어서는 문턱 :②평등사회의 붕궤




* 대공옥기(大孔玉器: 구멍이 뚫린 옥도기):이 도기는 옥(玉)질에 얇고 윤이 나며 옅은 녹색으로 비교적 고급의 대형묘에서 출토된다.
* 상아빗(象牙梳):상아도기는 비교적 고급 대형묘에서 많이 출토된다.
* 소나무를 끼운 석골 조각 원통( 松石骨雕筒):이것은 아마도 씨족 지도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깃발의 손잡이인 것 같다. 아골(牙骨)조각 및 옥기 상감기술은 대문구문화에서 시작되었고 상주(商周)시대 상감 공예의 효시가 되었다.


*대문구(大汶口) 유적지의 대형 묘장(墓葬) 복원도
* 단각흑도고병배(蛋殼黑陶高柄杯: 알껍질 흑도 키 높은 술잔)

-황하 유역의 대문구(大汶口) 문명권에서 당란이라는 사람은 탄소 방사성 측정 결과 5,700여 년 전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소호라는 문자까지 발견되었다는데 소호(少昊)는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성씨이다. 게다가 북경의 부사년(夫斯年) 선생은 은(殷) 나라를 일러 하늘을 공경하고 조상을 숭배하는 경천 숭조(敬天崇祖)와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 민족(白衣民族)이라는 것과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계 설화(卵系說話)를 비추어 동이족의 문화라 하였고, 대만의 임혜상(林惠祥)선생은 중국의 모든 음악과 악기는 동이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솔직히 자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공자조차 제자인 자공에게 자기는 은나라 사람으로 동이족이라 했고 동방예의지국을 그리워하였다.-


이 시기는 묘장(墓葬)제도에 격렬한 변화가 나타났다. 평민 속에서 분화되어 나온 주요인물은 매장을 크고 깊게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동족들과 같이 매장하지 않고 달리 풍수가 좋은 명당을 선택하여 대량의 정교한 도자기·옥기 그리고 상아제품까지 함께 매장했다. 아래와 같이 비교해 보자. 수많은 평민들은 사회의 재정과 부가 증가함에 따른 생활의 개선은 없었으며, 상반되게 수장품의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은 선조들보다도 못했다. 앙소(仰韶)문화 초기의 묘장(墓葬)은 죽은 자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 비슷한 수의 수장품을 묻어주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보통취락이건 중심취락의 묘지건 상관없이 모두 현저한 빈부 분화현상이 나타나 옛날 씨족 내부에서 대대로 전해오던 평등한 매장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평등한 씨족사회가 붕궤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최초의 분화현상



하남(河南) 맹진현(孟津縣)의 축리(女由,女里)유적지는 앙소(仰韶)문화 말기의 보통 취락이다. 취락 내부의 주민은 비록 한 곳에 매장되어 있고 모계사회의 평등한 유풍(遺風)이 유지되어 있지만 묘장(墓葬)과 수장품에는 이미 분화현상이 나타나 있다. 1인 묘장의 대소와 수장품의 유무에 의거하여 대략 3계급으로 나눌 수 있다. : 제 1계급은 대형묘로 묘구덩이는 5곱하기 4m이고 2층으로 되어 있고 수장품은 상아고(象牙 : 상아로 된 띠)이며, 제 2계급은 중형묘로 묘구덩이 길이가 보통 2~3m이고 넓이는 1.5~2m이며 일인용 관이 설치되어 있다. 제 3계급은 소형묘로 크기는 2 1m이고 장례품은 없다.




중심 대형묘의 현저한 차별



대문구(大汶口)문화 중심 취락에 있는 대문구(大汶口)문화 묘지는 묘장(墓葬)간의 분화 추세가 더욱 명확하여 동석병용(銅石倂用: 동기와 석기를 병용한)시대 중심취락 묘지 등급 제도의 대표라 할 수 있다. 대문구(大汶口)문화 초기 묘장(墓葬)에 이미 대소의 구별이 존재하여 대중소 3개의 계급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다. 소형묘는 길이가 1.8m밖에 안되고 넓이는 0.5m를 넘지 않으며 수장품은 1, 2개 심지어는 없는 것도 있다. 대형묘는 길이가 3m 이상이며 넓이는 2m 정도 되고 수장품은 많게는 100여 개가 된다. 중형묘는 두 묘의 중간이다. 대형묘 중에 도자기, 석기, 상아 그릇 등 정교한 예술품이 들어 있는 것도 간혹 출토된다.



* 흑도조두족정(黑陶鳥頭足鼎: 흑도 새머리형 삼발이 솥):새머리는 도기의 장식 소재로 동이부족이 새와 조류를 토템으로 하던 것과 관련이 있다.
* 신수문옥분(神壽紋玉 : 동물신 무늬 옥자귀):옥자귀는 비실용 생산도구로 옥제례품이었다. 이 도기에 새긴 동물신 무늬는 장강하류의 양저(良渚)문화 옥기 위의 동물신 무늬와 비슷하여 당시 사람들의 종교 신앙을 반영한다.
* 단각흑도고병배(蛋殼黑陶高柄杯: 알껍질 흑도 키 높은 술잔):알의 껍질처럼 얇고 장식이 우아한 고급 술잔이었으며 씨족 지도자가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정벌과 약탈의 고국(古國) 시대 :


①동이인(東夷人)의 문명



지금으로부터 4천에서 4천6백년 전, 각지의 문명은 모두 매우 크게 발전하여 청동과 황동기가 출현했다. 성의 소재지가 생겼?심지어 도시가 출현했으며 문자가 생겨 성구(成句)의 문자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회가 전설 속의 고국(古國)시대 또는 초급 문명이라 불리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천에서 4천5백년 전 산동(山東)과 강소(江蘇) 북부에 대문구문화가 발전해 내려오고 고대 동이인이 창조한 선사시대 문화인 용산(龍山)문화가 출현했다. 그 생산력은 장족의 발전을 했고 도기 제작업이 발달했는데 반짝거리는 흑도(黑陶)가 가장 특색 있었다. 또한 정교한 옥기가 있고 동기(銅器)제련 기술에도 능했다. 밀집하고 견고한 큰 성루의 출현과 호화스런 대형묘가 옛날 평등한 씨족 제도를 붕괴시켰다.  이 모든 것이 용산문화가 이미 초급 문명사회로 진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흑도(黑陶)의 고향



도기제작을 특색으로 하는 용산문화는 윤제도기(輪除器)가 특히 발달했다. 빠른 윤제도기 (輪除器) 제작기술의 발달은 도기제작기술이 새로운 발전단계로 들어서게 했다. 도기의 표면은 소박한 흰색(素面)이거나 윤이 나고 반짝이는 흑색을 띠었고 단각흑도배(蛋殼黑陶杯: 알껍질 흑도 잔)가 가장 정교했다. 용산인은 이미 상당히 진보된 동(銅) 제련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옥기의 제작은 더욱 정교했다. 삼리하(三里河) 묘장(墓葬)의 쌍을 이룬 옥기와 일조(日照) 두 성과 읍에서 출토된 짐승얼굴무늬(獸面紋)의 옥도끼 같은 것은 제례품으로 쓰는 옥기의 생산이 이미 전문화되었다는 것을 반영한다. 고문자(古文字)는 앙소(仰韶)문화의 각부(刻符)와 대문구(大汶口)문화의 그림을 거친 후 용산문화시대에 와서 마침내 언어를 기록하는 도구인 진정한 문자로 출현하게 된다. 최근에 산동 추평(鄒平)현 정공(丁公)에서 발견된 여러 자의 각부는 분명 어구를 기록하는 진정한 문자임이 틀림없다.  



중심 성루(城堡)



용산문화 시기에 중국 선사시대의 성 소재지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 성루의 규모가 크고 수량이 크게 증가되고 현저히 분화되었다. 이미 발굴된 용산문화의 성 소재지로 말하면 구조의 배치와 기능이 갈수록 정비되었다. 수광(壽光)시 변선왕(邊線王) 고성(古城)의 배치는 대성으로 소성을 싸고 방어에 유리하도록 안과 밖이 두 겹의 성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성루의 주위는 보통 아주 많은 중소형 취락이 있었는데 아마도 성 소재지를 중심으로 집단의 보통 취락군이 분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성안의 지세는 일반적으로 비교적 높았고 성밖의 동향을 감시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던 듯 하다. 성안에서 대형의 정교한 도기가 출토되었는데 보기 드문 문자를 새긴 도편(陶片: 도기 조각)이 있고 다른 곳에서도 모두 고급 규격의 도기가 출토되었는데 이 것은 이 성루들이 분명 구역문화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참고:송호수 글)몇년 전에 일본에 와서 발표한 소련의 여류 민족학자 R.S.M 자리가시노바 씨는 "한동〈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살았고 신석기 시대 초에 이미 독자적인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고 했습니다. 신석기 시대 초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 1만 2천 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이미 우리 동이족들은 주변 국가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 높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공산국가의 학자가 발표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있죠. 역시 공산국가인 중공의 유명한 고고학자 당란이, 1977.7. 14 자 중공 '광명일보' 를 통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산동 반도 지역에서 남한 넓이 만한 광대한 지역에 이르는 대문구 문명권 (大汶口文明圈) 을 발견했는데, 이곳을 발굴하니까 문자가 나오고 그 곳을 통치한 소호씨 (少昊氏) 란 통치자 이름까지 나왔으며, 이것을 방사선 탄소 측정을 해 보니까 지금으로부터 5785 년 전 것" 이라고 합니다. 5785 년 전이라고 하면 단군 건국보다 약 1500 년 전의 일입니다. 그 당시 이미 산동 반도에는 문자를 사용한 고도의 문명 국가가 있었는데, 그 통치자인 소호금천씨 (少昊金天氏) 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중국 고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각화부호도편(刻畵符號陶片: 그림부호를 새긴 도기조각)
이 도편은 회도분(灰陶盆: 회색도기 화분)의 밑바닥으로 5행 11자가 가지런한 배열로 새겨져 독립된 글자를 이루고 있어 아마도 어법이 있는 단어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 도문(陶文)은 이르게는 상(商)대의 갑골문으로 아마도 조기 동이문자 계통에 속하며 갑골문과 동일한 계통에 속할 가능성도 있다.
* 중원 용산문화 분포도:중원 용산문화는 지역이 광활하여 약간의 지(支)문화를 분류해낼 수 있는데 각각의 지문화 내부는 지역과 문화전통의 차이로 인해 몇몇 유형으로 한층 더 세밀하게 분류할 수 있다.



* 2인용 방(쌍간) 유적지
* 흑도고(黑陶觚: 흑도 술그릇):술 마시는 그릇이다. 상주(商周) 시대 청동 예기(禮器) 계통 중 가장 중요한 술그릇이 고(觚)로 즉, 이것이 진화한 것이다. 이 시대에 도고(陶觚)는 이미 예기의 뜻이 함유되어 있었고 많은 수량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대량의 남은 음식으로 술을 빚었던 것을 증명한다.

* 채회도호(彩灰陶壺: 채색 자기 주전자):산서(山西) 도사(陶寺) 유적지에서 출토된 물 담는 도기/* 도력(陶鬲: 속이 비고 세 발이 달린 아가리가 둥근 솥):밥 솥으로 상주(商周)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세 발은 고르게 열을 받아, 불꽃도 충분히 연소될 수 있다.)/* 회도삼족옹(灰陶三足瓮: 회도 삼발이 항아리):산서(山西) 분양(汾陽) 용산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물 혹은 식품을 담는 용기다. 몸체는 비교적 크고 높이는 61cm로 비교적 높은 도기 굽는 기술이 있어야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짧은 세 개의 발은 습기와 열을 막아주고 뜨거운 음식물을 담아도 직접 지면과 접촉하지 않게 하여 도기의 갑작스런 균열을 방지한다.)


②정벌과 약탈의 고국(古國)시대:


염황(炎黃)집단이  활약하던 중원대지



전설과 기록에 의하면 중원지역은 세력이 가장 컸던 황제(黃帝)와 염제(炎帝)가 활동했던 지방이다. 염황 집단은 앙소(仰韶)문화 말기에는 상대적으로 쇠약했다가 용산문화 시대에 이르러 다시 부흥해 마침내는 이곳에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왕국인 하(夏)왕조를 건립하게 되었다. 중원 용산문화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천5백에서 4천년 전으로 문화의 범위가 넓었고 핵심지대는 이락하(伊洛河) 평원이었으며 중앙을 향해 원 모양의 분포로 구성되어 핵심지대를 에어싸고 있어 중국문명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문화 면모의 통일성



중원 용산문화는 비록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지만 통일성이 현저히 나타난다. 도기 제작을 예로 들면 질과 모양 및 무늬장식 등에서 모두 일치하거나 비슷한 곳이 많다. 진흙 재질 흑도(泥質黑陶)의 수량은 회도(灰陶)처럼 많지 않고 게다가 서부로 갈수록 수량이 적어지며 섬서(陜西)와 산서(山西)안까지는 홍갈도(紅褐陶)가 적지 않다. 흰색 도기(素面器)는 산동 용산문화처럼 발달하지는 않았고 도기 표면의 장식은 각종 무늬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끈 무늬, 바구니 무늬 그리고 체크무늬를 기본 무늬로 했다. 도기 형태는 아래가 평평한 것이 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각종 단지(罐)류가 가장 많이 보인다. 내몽고(內蒙古) 중남부는 비록 북방문화와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 곳의 달걀형 항아리(蛋瓮), 흰색 모래섞인 단지(素面夾砂罐), 긴 원통형 도기(直筒形器) 등은 진북(晉北), 섬북(陝北) 그리고 기서북(冀西北)과 공유되어 중원 용산문화 계통으로 구분해 넣을 수 있다. 각지의 통일된 문화면모는 화하(華夏) 집단이 광활한 중원지역에서 이미 비교적 확고한 기초를 다져놓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모양의 주거공간



중원 용산문화의 집은 평면에 원형과 네모가 있고 모양은 매우 다양하며 배방(排房: 여러 개의 방이 배열된 방) 2인실(雙房)과 1인실(單房)로 구분된다. 집 건축기술은 앙소문화보다는 현저히 진보되었고 건축재료는 항토(夯土), 굽지 않은 상태의 흙벽돌(土坯)과 석회(白灰)를 자주 사용했다. “석회면(白灰面)?건축이 유행했다.


신석기 시대 주요 도기제작방법 중 하나인 니조반축법(흙덩어리로 쌓아가며 만드는 법) 신석기 중기 앙소문화 시절 이미 출현. 그릇형 솥과 속이 깊은 항아리 심복관.모두 니조반축법으로 흙덩어리를 가공해 붙여 만든 것이다. 양자강 하류 상해 항주 소흥 부근의 동이족 유적지인 하모도 유적지의 간란식 방옥 구조도.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이른 목구조 건축물이라 자랑한다. 양자강 하류는 하천이 그물처럼 얽힌 습한 지대로 아래는 돼지 등 가축을 기르고 사람은 위에서 생활했다. 섬서성 서안의 동이족 고고학 반파유적지를 비롯한 대륙내 고고학 유적지는 돼지를 순장한 묘장문화를 선보인다. 문자학자는 집 家를 보면 집 안에 돼지를 키운 뜻을 가지고 있는데(돼지 시(豕)) 돼지를 집안에 키운 민족은 동이족밖에 없으므로 漢字가 동이족 것이라 말한다. 원래 漢族은 돼지고기를 먹지않았다.  돼지는 습한 지방에서 뱀을 막기 위한 이유와 식용으로 길렀다. 돼지는 생활에 유용하여 동이족간에는 화폐구실을 하여 지금의 돈이 되었다. 돈은 원래 동이족 간의 돼지(亥)인 돈(豚)을 말하는 것이다. 건축은 기후와 풍토를 반영하므로 지금의 한반도 건축 습성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길이가 23미터이므로 70평 이상의 대단히 큰 가옥이다. (안원전 잔소리-대륙의 구석기 신석기 시대는 모두 동이족이 열었으니 이들 문화는 모두 동이족 문화다. 본인의 홈피에 실린 고고학 발자취는 모두 동이 제 족의 것이라 생각하고 일별하면 편하다.)

불균형한 장례 풍속



중원 용산문화는 일반적으로 便예┒側?부족하며 수장품도 상당히 적다. 하지만 도사(陶寺) 같은 개별 유적지는 이와는 정반대로 대형 공동묘지가 발견될 뿐 아니라 대형묘에서 매우 많은 수장품이 출토되었다. 중원 용산문화의 이런 장례 풍속의 극도의 불균형은 아마도 그 때가 매우 급격한 변혁의 시기였다는 시대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안원전 번역)   



http://search.yahoo.com/search?p=hongshan+culture&csz=&ei=UTF-8&fr=FP-tab-web-t&cop=mss&tab=&togg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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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특집)안원전의 담론 388. 대한민국 한류 디자인-대한민국을 새로 디자인하라!!   안원전    2012/09/07  4053
428   비밀글입니다  안원전의 담론 387.   안원전    2011/07/26  213
427    안원전의 담론 386.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5-진나라를 흥하게 한데 큰 공이 있으며 진나라를 망하게 한 죄인인 楚人 이사(李斯) 1부   안원전    2011/07/04  5682
426    안원전의 담론 385.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4-진나라 제왕의 위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위염(魏冉)   안원전    2011/06/07  4577
425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384. (漢字의 秘密) 한자(漢字)의 주인은 한겨레 韓민족이다.   안원전    2011/06/01  6576
424     안원전 담론 383. 소통(疏通)에 대하여   안원전    2011/05/24  2835
423    안원전 담론 382.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3-초인이 진나라를 섬기던 역사의 공헌 및 통일전쟁의 서막을 올린 감무(甘茂)   안원전    2011/05/17  3280
422    안원전 담론 381.약초를 널리 보급하여 질병을 치료한 다릉(茶陵:차릉)의 ‘세 가지 보물(三寶)’   안원전    2011/05/11  2961
421    안원전의 담론 380. 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 2   안원전    2011/05/09  2636
420    안원전의 담론 379.염제(炎帝)가 불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던 이야기1   안원전    2011/05/09  2726
419    안원전의 담론 378.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2- “진나라가 망하고 초나라가 보전되는(亡秦必楚)”의 문화 운명   안원전    2011/05/03  2576
418    안원전 담론 377. 대륙향토사료를 통해 웅영족(熊盈族) 楚나라 실체를 밝힌다.1-초나라가 갑자기 쇠퇴한 원인은 음란과 방탕 그리고 모든 통치계급의 부패와 문란   안원전    2011/04/30  2519
417    동이 대륙상고사 답사를 마치고2(2002) 續원고   안원전    2011/04/30  2510
416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6. 거영신(巨靈神: 강의 신)   안원전    2011/01/10  2990
415    안원전의21세기 담론 375. 황하(黃河)의 수신(水神) 하백(河伯)   안원전    2011/01/05  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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