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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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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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론 특별기획, 잠사기원 속편-동이족의 주 전공 잠사의 개관
양잠의 기원은 어느때인가?

지나 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누에치기 양잠, 고치를 켜 실을 뽑는 소사( 絲), 비단을 짜는 직주(織綢)를 시작한 곳으로 임혜상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나사가도 그 주인공은 바로 동이 제 족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양잠의 기원에 대한 지나 사가들의 관점은 일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허다한 관점이 존재한다. 우선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잠사에 관한 기록을 모두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세상을 평정하고 깊고 묘한 도를 익혀 여러 생령들을 두루 교화하였다. 팽우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짓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맡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에게는 호적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희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장려케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환단고기 삼성기 전 상편 三聖記 全 上篇 안함로 지음)

*병진(BC,425)년, 주나라 고임금(BC,440-425)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고 바꾸고 백악으로부터 또 장당경으로 옮겼다. 이에 팔조를 법으로 하고 글 읽고 활 쏘는 것을 일과로 하며 하늘에 제사지냄을 종교로 하고 누에기르기에 힘쓰도록 하였다.(환단고기 삼성기 전 상편 三聖記 全 上篇 안함로 지음)

*경자 93년(BC 2241) 단군께서 버들궁전에 계셨는데 흙계단이 저절로 생겼고 풀숲은 없어지지 않으니 박달나무 무성한 그늘에서 곰 호랑이와 더불어 노닐며 소와 양이 크는 것을 보셨다.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고 누에를 치도록 권장하며 고기잡이를 가르치니 백성들은 남는 물건을 나라 살림에 보태었다.(환단고기 단군세기)

*2세단군 부루 재위 58년 신축 원년(BC 2240) 단제께서는 어질면서 다복하셔서 재물을 저장하니 크게 풍부하였으며, 백성과 더불어 산업을 다스리시니 한사람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자가 없었다. 봄 가을로 나라 안을 두루 살펴보시고는 하늘에 제를 올려 예를 다하였다. 여러 왕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랑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 짓고 뽕나무 심을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환단고기 단군세기)

지나 대륙에는 동이족에 관련한 많은 기록을 인멸해 그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지나 대륙에서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바로 가장 널리 유행하고, 가장 크게 영향을 준 한 가지 논점은 황제의 동이족 부인 누조( 祖)가 양잠의 시조라는 설이다.

*참고:전욱고양은 말할 것도 없이 동이족이지만 사마천이 화하의 시조로 내세운 황제마저 산동성의 수구에서 백의 민족(백민)으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는 바다. 수세기에 걸친 부권에서 모권사회의 대립을 통해 지나족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동방족의 후예 황제헌원이 서방족의 모권사회 속에 데릴사위의 형태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대목이다. 사마천의 「사기」『5제본기』에 3 황 5 제시대가 5 백 년인데, 황제는 100여 년 재위했으며 황제는 유웅국(有熊國) 소전(少田)의 아들로 소전은 인명이 아니라 (환웅국의) "제후국 이름"이라 하였다.



누조는 전설 가운데 북방부락의 수령인 황제 헌원(기원전 2550년)의 원비(元妃)다. 황제가 북방부락의 수령이라 표현하는 것만 보아도 황제가 자신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 부근을 떠난 수령이라는 점에서 치우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물러났음은 확실하다. 「수서(隋書)」<예의지(禮儀志)>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북주(北周:557-581)는 누조를

"선잠(先蠶)" 즉 누에치기를 시작한 신으로 모셨다. 「통감외기(通鑒外紀)」에 기재하기를, "서릉(西陵)씨의 자녀 누조( 祖)가 제(帝)의 비(妃)가 되어, 백성에게 누에를 기르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명주실을 관리해 의복 제조에 이바지했다."

「로사(路史)」에 칭하기를:"복희가 누에를 치고, 서릉(西陵) 씨가 양잠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회남잠경(淮南蠶經)」에 이르기를, '서릉(西陵)씨가 누에농사(蠶稼)를 권장하고, 친히 누에치기를 시작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송(宋), 원(元) 이후 성행하기 시작했다. 20세기 50년대까지 쭉 지나의 양잠 기원 문제에 대한 유관 문헌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찬동할 만 해서 많이 인용, 서술되었다.

1926년, 고고학자들은 산서성 하현(夏縣) 서양촌(西陽村)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아주 잘 정리된 반쪽의 잠충(蠶 :누에풀,고치)을 발굴했다. 이는 세계 학술계의 지대한 흥미를 끌었다. 사람들은 이 반쪽의 잠충(蠶 )을 누조( 祖)가 잠사를 시작했다는 설과 더불어 상호 인증(印證)하고, 이로 말미암아 앙소(仰韶) 문화시기의 황하유역에 양잠업이 존재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50년대로부터 사학계의 적지 않은 사람이 누조( 祖)가 잠사를 시작했다는 설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의 주요이유는 이 설법이 출현한 것이 비교적 늦다는 이유에서였다. 「사기(史記)」에는 비록 황제가 동이족 서릉(西陵)씨의 여식 누조( 祖)에게 장가들어 처를 삼았다고 나오고 있으나, 누조가 잠사를 시작했다는 설명은 없으니, 가히 한초(漢初)에는 아직 이러한 설법이 출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로사(路史)」가운데 사용한 「회남(왕)잠경(淮南(王)蠶經)」은 일반인이 위서(僞書)로 여기고 있다. 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주(北周)는 누조( 祖)를 잠사의 시조로 존경했는데, 단 이 이전의 북제(北齊:550-577)도 일찍이 황제(黃帝)를 잠사를 시작한 신으로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동시에, 산서성 하현(夏縣) 서양촌(西陽村)의 반쪽의 잠충(蠶 )이 던지는 의문점에 대해 약간의 고고학자들은 이의 발굴이 당대의 것이 아님에 기대어, 대개 이는 하나라 가마솥인 "하내(夏 )"의 예와 같이 후세에 혼입해 들어간 물건으로 보고있어, "화북 황토지대 신석기 시대 유적지의 문화층 가운데서 나온 잠사(蠶絲)의 재질은 그와 같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 무슨 예리한 칼끝 같은 도구가 있어서 그같이 예리하게 분할해 자를 수 있겠으며, 아울러 극히 정교하고 가지런한 가장자리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아국고대잠상사주적역사(我國古代蠶桑絲綢的歷史)」) 「문물(文物)」 1972년 2호를 보면, 이러한 이의와 질의가 비록 아주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륙 내 유관 연구자의 찬동은 없다.

사람들은 누조가 잠사를 시작했다는 "누조시잠설( 祖始蠶說)"이, 비록 후세인이 추측해 만들어 넣은 것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는 하나, 일찍이 황제시대에 양잠업이 이미 있었다는 사실은 가히 믿을 만 한 것이라 여기고 있다. 자못 권위를 갖춘 「중국방직과학기술사(고대부분)」(진유직(陳維稷) 주편(主編) 과학출판사 1984)는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하나라 가마솥인 "하내(夏 )"의 의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반박하는 글을 발표했다. 일인(日人)학자 포목순랑(布目順郞)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강우량이 극히 적은 황토고원에 있어 잠충(蠶 )은 4,5천 년 이상 완전한 보존이 가능한데, 그는 당시 사람이 사용하던 생산공구를 본뜬 모의 공구-엷은 석편과 골편을 이용해 시험을 진행한 결과, 절개된 잠충(蠶 )의 절개부위가 확실히 곧고 정교하게 절개됨을 확인했다.

별도로 50년대 이래로 장강(長江:양자강) 하류지구에서, 일 계열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 발굴은 양잠기원의 논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1958년, 절강(浙江) 오흥(吳興) 전산양(錢山  ) 유적지에서 실로 짠 제품이 발굴되었는데 감정결과 그 절대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4,5천 년 전 것으로 밝혀졌고, 1963년, 강소(江蘇) 오강(吳江) 매언(梅堰) 유적지에서 누에무늬(蠶紋)의 장식이 그려진 흑도기가 발굴되었고, 1977년, 절강(浙江) 여요(余姚) 하모도(河姆渡) 유적지에서 방직공구 세트들과 잠문(蠶紋)과 편직문(編織紋) 장식의 작은 어금니 조각 그릇(牙彫小 )이 출토되었다.(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많은 학자들은 잠문(蠶紋) 장식 도자기와 이러한 아조(牙雕)의 출현이, 당시 인류가 잠사의 인식정도에 대해 인류와 잠사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표명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데,  잠문(蠶紋)과 편직문(編織紋)에서 방직공구의 출토는 방직에 있어 잠사의 응용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발굴을 종합해 보면, 대륙의 동남지구(양자강 하류) 역시 양잠업의 일개 발상지라 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양잠을 개시한 시대는 심지어 아주 오래 전 전설중의 황제헌원과 누조가 대표하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절강성 지구(춘추시대의 월나라)의 고대문화는 중원보다 낙후되어 전산양(錢山 ) 유적지 하층은 여러 시대의 유물을 포괄할 가능성이 있는데, 심지어 부분적으로 섞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보는 것은, 당시 전산양(錢山  ) 고고학 발굴에 참가한 학자들은, 발굴과정에 진행된 사실에 대해 언급하기를, 기본적으로 뒤섞였을 가능성을 아예 처음부터 배제했다고 회고해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회고한 시간과 발굴시간과의 차이가 비교적 긴 것으로 말미암아, 어느 세부적인 마디 구분을 확정적으로 판정하기에는 곤란함이 있다. 또 사람들이 인정하듯이, 전산양(錢山 ) 지구에서 출토된 사직물(絲織物)에 사용된 섬유는 항상 집에서 양잠한 섬유가 아니고, 떡갈나무(상수리나무) 잠사 등 등 야생잠사도 있다고 인정한다. 방직계에 관련된 인원이 석포(石脯) 절편과 현미경으로 투영해 보는 방법을 사용해 전산양(錢山 )에서 출토된 견직물 조각을 거듭 새로 감정하니 그들이 확실히 집에서 인공 양육된 잠사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그들은 출토된 견직물 조각이 아주 적은 이유로 인해서 탄화과정이 아주 심해 분석작업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인정했다. 이외에, 하모도 유적지 등지에서 출토된 기물상의 무늬장식 연구는 필경 누에가 아니면 기타 곤충의 형상이라는 한결같지 않은 의견이 존재하고 있다. 임혜상이  양자강의 비옥한 동이 9족의 나라에서 실크를 처음 재배했음을 전하고 있듯이 고구려의 10월 동맹(東盟) 제천행사에서는 모든 사람의 의복이 비단에 수놓은 옷을 입고 금, 은으로 장식한다 했다.(「삼국지」<고구려전>)

또 당(唐)의 영호덕분(令狐德 ) 등이 찬(撰)한 「주서(周書)」 <고려전>에는 장성한 남자의 관(冠)은 골소(骨蘇)라 부르는데, 대부분 자색의 얇은 비단으로 만들며 금은을 섞어 만든다(多以紫羅爲之 雜以金銀爲飾) 하고 세금부과는 명주와 베 곡식으로 한다(賦稅則絹布及粟) 하였다.    

"래이(萊夷:동이 9夷의 하나)는 목축을 했으며, 공물 광주리에는 산뽕나무 실이로다.(闕  絲)"(우공) "래이는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래산(萊山)의 이(夷)다. 제나라에 래후(萊侯)란 관직이 있으니 래인은 곧 지금의 래주의 땅(산동, 강소) 출신이다. 목축을 한다는 것은 가히 방목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夷) 인은 목축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산뽕나무는 뽕나무이니 산뽕나무의 실은 질겨서 거문고, 가야금의 현으로 사용된다. 소(蘇) 씨가 말하기를 생각건대 동쪽의 래(萊)에 이 실이 있어서 그림 있는 비단이 되며 그 견고하고 질김이 이상하여 래인은 이를 일러 '산누에고치'라 부른다."(채주)

우공(禹貢)에 "기주(冀州)......조이피복(鳥夷皮服)"이라 하였고, 「채주(蔡註)」에 "해곡(海曲)을 섬(島)이라 하고, 해도(海島)에는 이(夷)가 사니, 가죽옷으로 공물을 바친다."했다. 「상서」<금고문 주소(注疏)>에 "사가 사마천이 도(島)를 조(鳥:새 조, 땅이름 작, 섬 도=해곡(海曲)이라는 뜻이 있다.)로 바꾸었으니, 마융(馬融)이 가로대 조이(鳥夷)국 정(鄭:정강성으로 불리는 정현이 스스로 동이족의 하나인 조이족이라 고백)씨가 말하기를 조이(鳥夷)는 타고날 때부터 새와 짐승을 먹는 동북의 백성이라 했다."


「우공(禹貢)」에 "양주(揚州).....도이(島夷)는 풀로 짠 옷을 입으니, 공물바구니인 대나무 광주리에는 무늬비단(織貝), 공물 보따리에는 귤, 유자, 가는 삼베"라 했고, 「채주(蔡註)」에 "도이(島夷)는 동 남해의 섬에 훼초(卉草)로 사는 이(夷)이다....치패(織貝:무늬비단), 금(錦:비단)이 뛰어난데, 무늬비단이 돈(貝文)이 되었으니 시(詩)에 이른 패금(貝錦)이 이것이다. 지금도 남이(南夷)의 목면(木棉:면화)은 만듦새가 정밀하고 좋으니 또한 이를 일러 길패(吉貝)라 한다. 해도(海島)의 이(夷)는 초목을 입고 조공을 바치니, 만듦새가 정밀한 무늬비단(織貝)을 광주리에 넣어온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복희가 누에를 가르쳤으며 복희가 사람들에게 잠사와 실을 잣는 섬유식물 사용을 가르치고, 사람에게 잠사를 가르쳤다는 다음의 기록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路史汲記·(羅注引<星圖要覽>)》 云(노사급기 나주에 성도요람을 인용해 말하기를),  伏羲氏化蠶(복희가 누에를 가르쳤다) 上羅注引 <白氏帖> 云(나주를 인용해 "백씨첩"이 이르기를) "伏羲化布 敎人用蠶絲 植物纖維紡線(복희가 사람들에게 잠사와 실을 잣는 섬유식물 사용을 가르치고) *網織布 縫衣著裝 使人們抵禦寒冷的能力有了大提高(천을 짜 옷을 봉제해 꾸며입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추위를 막는 능력을 제고시켰다) 다시 말해 양잠은 바로 동이족의 조상이신 태호복희때부터 시작했으니 바로 배달국 환웅시대부터 시작했음을 확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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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잠으로 옷감을 만들어 옷입는 것을 개선하다

《路史汲記·(羅注引<星圖要覽>)》 云(노사급기 나주에 성도요람을 인용해 말하기를),  伏羲氏化蠶(복희가 누에를 가르쳤다) 上羅注引 <白氏帖> 云(나주를 인용해 "백씨첩"이 이르기를) "伏羲化布 敎人用蠶絲 植物纖維紡線(복희가 사람들에게 잠사와 실을 잣는 섬유식물 사용을 가르치고) *網織布 縫衣著裝 使人們抵禦寒冷的能力有了大提高(천을 짜 옷을 봉제해 꾸며입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추위를 막는 능력을 제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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