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원전의 21세기담론-세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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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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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론 특별기획, 황제의 동이족 부인 누조(女+累,祖)의 양잠(養蠶) 고사와 양잠시조 동이족 조상 태호복희 천제

깐쑤(감숙)의 천수시 복희묘의 태호복희. 필자는 이곳에 와서 복희 천제가 침구를 처음 시작해 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금슬(악기)은 물론, 신농처럼 신농보다 먼저 백초를 맛보고, 양잠을 처음 시작해, 여와씨가 장려했음을 처음 알았다. 사진은 복희묘의 본전인 무극전의 복희 소상과 태극전인 여와전의 복희소상이다. 두 개의 사진을 참고로 독자에게 모두 처음 선보인다.

*황제헌원은 사마천에 의해 지나의 시조로 자리매김되었지만 부친은 동이족 신농과 같은 소전이며 모친은 동이족이고 부인 역시 동이족으로 동이족의 주 전공인 잠사를 장려한 여인이다. 따라서 알고 보면 황제는 지나의 시조라기보다는  동이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부권제 개념으로 보아도 동이족이지만, 당시는 모권제 사회였으므로 부인이 동이족이고 모친이 동이족이었으니 당연히 동이족이다. 전욱고양은 말할 것도 없이 동이족이지만 사마천이 화하의 시조로 내세운 황제마저 산동성의 수구에서 백의 민족(백민)으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는 바다. 수세기에 걸친 부권에서 모권사회의 대립을 통해 지나족의 시조로 일컬어지고 있는 동방족의 후예 황제헌원이 서방족의 모권사회 속에 데릴사위의 형태로 흡수되어 들어간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사기 5제 본기」의 '황제는 소전의 아들(黃帝者 少典之子)이라는 대목과 동기록 '황보익이 말하되 황제는 수구에서 태어나서 희수(姬水)에서 성장하였으며 헌원에서 거주했다'라는 대목, 그리고 「제계사기」의 '황제는 백민(白民)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동이에 속했다(自屬東夷)'는 대목, 황제는 백민 출신으로 동이에 속한다는(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楚史』) 초사(楚史)의 대목이다. 하필 초사(楚史)에 이 대목이 나오는 이유는 굴원이 고백했듯이 초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이며 황제는 동이족 혈통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5제본기』에 3 황 5 제시대가 5 백 년인데, 황제는 100여 년 재위했으며 황제는 유웅국(有熊國) 소전(少田)의 아들로 소전은 인명이 아니라 (환웅국의) "제후국 이름"이라 하였다.

「한서(漢書)」 <왕망전>에 왕망은 전한을 찬탈한 뒤 고구려를 폄하해서 하구려(下句驪)라 했다. 후한 광무제에게 망한 그들 일족이 평소 냉대하고 박대한 고구려로 가지 못하고 바다 건너 가야, 신라로 간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량지는 고구려의 고(高)가 높고 낮음의 고(高)가 아니라 그 선조가 제곡고신(高辛)씨였기 때문에 이를 상징하는 성씨라 말하고 있다. 사마천 사기는 요가 고구려 혈통의 조상인 제곡의 아들이라 한다. 그런데 요의 어머니는 동이족인 염제족의 진봉(陳鋒)씨 규수 경도(慶都)다. 물론 지나족은 이를 염황부족연맹이라는 명분으로 살짝 다리걸치기를 하여  그 뿌리의 진상을 호도하고 있지만 이쯤되면 지나족의 이상세계의 주인공으로 만든 요 마저 동이족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는 이미 지나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부계사회로 진입해 있는 상황에서 요가 둥지를 튼 지금의 산서성 서쪽의 임분 지역은 낙후된 서부내륙에 속해 모권제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므로 모권제 계승으로 그 부족연맹의 정통성 아이덴티티를 봐야 하는데 보다시피 진봉씨의 경도는 지나사가도 이구동성으로 밝히고 있듯이 이미 동이족인 염제족이다.지나사가가 말하는 바, "요의 부친 제곡은 황제의 4세손, 모친 경도는 염제의 7세손녀로 제요의 몸에는 이미 염제의 혈액이 담겨 있으며, 황제의 혈액이 담겨있으니 가히 염황자손의 첫 시조라 이를 수 있다."  
또 부권제로 본다 해도 바로 고구려의 맥이 그렇듯이 요의 부친이 동이족인 전욱고양의 혈맥을 탄 제곡고신이다. 하여 엎어치나 메치나 모권제가 되었든 부권제가 되었든 요의 종족적인 혈맥의 정체성은 바로 다름아닌 동이족이다.그럼 이러한 요를 지나사가들은 왜 지나족의 뿌리로 삼으려 했으며 지나족이 이상세계로 둔갑시킨 요순세계의 주인공으로 화했을까. 그건 모두 공자가 만든 짓이다. 공자가 만든 것을 맹자가 재확인해 주었고 사마천이 25사로 정통성을 주었다. 사마천은 누군가? 간단히 말해 서슬퍼런 한(漢)무제 아래서 한(漢)족의 정통성을 세우려 보니, 한족의 뿌리는 대륙사에 없으니까 경학을 찾게 되었고, 사서오경, 사서삼경에 공자가 이미 만들어 놓은 요순의 이상적 치세를 가져다가 개칠을 한 것이다. 공자는 춘추를 쓰면서 한 말이 있다. 나를 아는자는 그 오직 춘추뿐이구나! 나를 벌 줄 자도 오직 춘추 뿐이로다! 이 말은 맹자가 밝힌 말(등문공하)이지만 공자는 216 건지책(乾之策) 144곤지책(坤之策) 360일 정역(正易)을 말한 성인으로 후천 세상이 올 것까지 내다본 사람이다. 그러한 그지만 한민족의 핏줄을 견지한 그를 한민족 동이 겨레의 민족사관적인 차원에서 보면 반민족적인 이단아로밖에는 보아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벌 줄 자도 오직 춘추라고 한 말은 노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존주 사대주의를 대륙에 뿌리박고 정작 그 주인되는 동이족을 야만족화 했으니 그 죄악이 천지에 창일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의 중심민족을 주나라로 보고 영적인 중심세계는 그 뿌리되는 동이족이 아니라 바로 노나라라는 시각의 화화사관은 이렇게 형성되었으니 한민족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어둠과 질곡의 역사-공자사관의 노예로 전락한 사대주의 시대를 공자가 선물했던 것이다. 공자는 먼 훗날 후천개벽 심판때 그의 죄악이 심판되는 것까지 내다 본 것이 확실하다 하겠다. 맹자는 공자가 고백한 고뇌어린  이말을 그대로 전해 역사에 역사심판의 증거로 남겨두었다. 당시 춘추시대는 군웅할거의 무법천지세계로 세상이 아주 혼란해 군사부의 법도가 아주 엉망인 세계였다. 공자는 수없이 명멸하는 군주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춘추를 쓸적에 그 전적의 래원(來源)이 모두 동이족에서 기원하는 문서로부터 가치관을 빌어와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황제를 가름질하고 요순을 가름질하여 동이족으로부터 분리해냈다. 사마천이 이를 받아서 다시 가름질하였으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공자도 그 근본은 어떻게 속일 수 없어 나의 죄를 춘추만은 알고있다 고백한 것이고 그 뒤 후세의 양심있는 사가들은 그나마 그와 어느정도 타협하여 사기의 주석인 색은에 그 이면을 적은 것이며 그것이 바로 염황부족연맹이며 또한 동이혈통이었다는 기록이다.
「사기오제본기」에 고신의 제위 하의 수도인 박(높을고 밑에 터럭 모:박은 殷의 수도이기도 하다)에 대해 황보밀(皇甫謐)의 말을 인용한 집해(集解)에서 지금의 하남(河南) 언사현(偃師縣)이라 말하고 있다. 「제왕세기」에 "제곡은 70년 재위하여 105세에 붕했다. 동군돈구(東郡頓丘) 광양리(廣陽里)에 장사지냈다."고 나온다. 또 「산해경(山海經)」<대황남경>을 보면 "제요, 제곡, 제순을 악산(岳山)에 장사지냈다."고 나온다. 황람(皇覽)의 말을 인용한 「역사(繹史)」에는 "제곡의 무덤이 동군(東郡) 복양(물수+ 僕陽) 돈구(頓丘) 성남(城南) 대음(臺陰)의 들판에 있다."고 했다. 돈구는 지금의 하남(河南) 준현(濬縣) 서쪽으로 고신, 전욱고양의 무덤이 서로 인접한 장지다.(是高辛高陽葬地正相隣接) 「산해경(山海經)」<대황북경>을 보면 "대황(大荒)의 한 가운데 황하의 사이에 부우(附 )산이 있는데 전욱 임금과 아홉 명의 후궁을 이 곳에 장사지냈다"고 했다

Got it?


一作累祖,為西陵氏之女,黃帝正妻。傳說中她是中原養蠶製絲方法的創造者,北周以後被奉祀為先蠶(即蠶神)。她與黃帝所生之子昌意是有虞氏及夏的祖先;另一個兒子玄囂,則是商人與周人的祖先。



황제의 동이족 부인 누조(女+累,祖)의

양잠(養蠶) 고사

<필자가 2002년 8월 섬서성 황릉 현지에서 채취한 향토사료 국내 최초 공개>

*타계한지 얼마 안되는 중국의 갑골문 고고학자  낙빈기는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황제의 부인 누조의 실체에 대해 황제와 치우의 싸움의 본질을 밝히면서 기존의 지나사학자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다음과 같이 파격적으로 말한다.
-결국 신농은 황제에게 패해 임금자리를 내놓게 되는데 이에 신농의 어머니계 군주인 치우가 지금의 탁록( 鹿)에서 황제와 수년간 전쟁을 벌인다. 그래서인지 황제는 임금자리에 앉지 못하고 아들인 소호금천(기원전2474-2468)이 제위를 잇는다. -
여기서 신농은 염제신농이 아니고 염제국의 말왕인 염제 유망인 줄은 이제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낙빈기가 말하는 이 대목이 아주 쓸모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왜냐면 기존의 학자들은 치우가 황제에게 패했다 왜곡하고 있지만 낙빈기는 환단고기의 기록대로 치우에게 패해 역사에서는 동이족으로 더 많이 어필된 아들 소호에게 제위를 넘기고 도망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융과 훈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정현은 「사기」<오제본기> 황제편에서 치우가 천하를 제패했음을 말한다.(鄭玄云 蚩尤也覇天下)


치우천왕과 황제의 전쟁에 대한 진실은 환단고기에도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지만 낙빈기가 지목하는 이 대목은 황제의 딸 한발(旱魃) 과 관련한 다음의 전설에서도 그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을 일컬어 한발이라 한다. 한발의 발(魃)은 여신의 이름으로 그녀는 전설에 따르면 황제(黃帝)의 딸로서 몸은 이글거리는 용광로와 같았다 한다. 당시 황제와 대권다툼을 하던 동방의 천제 중에 치우가 있었는데 짙은 안개를 일으켜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유인하여 죽이곤 했다. 황제는 치우가 용의 울음소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응룡과 신룡을 불러 대비코자 했다. 그러나 응룡과 신룡이 조화를 부르기도 전에, 치우는 선수를 쳐서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로 하여금 폭풍우를 일으켰다. 황제의 군대는 궤멸되고 말았다.

황제는 딸을 불렀다. 용광로와 같았던 여신 발(魃)이 나타나자 폭풍우는 그쳤지만 그러나 폭풍우를 잠재우느라 기진맥진한 발은 기진맥진하여 인간 세상에 머물고 말았다. 그녀가 머무는 곳은 용광로처럼 뜨거워 산천초목이 말라죽고 식수가 고갈되었다. 그녀가 나타나는 곳마다 비 한방울을 구경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을 그녀를 한발이라 하며 미워했다.

이에 아버지는 딸에게 적수(赤水) 이북에만 살도록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방랑벽이 있었던 그녀는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은 적수쪽으로 도랑을 파놓고 기도를 올렸다.."당신 집으로 어서 가주세요." 사람들의 기도를 들은 한발은 미안하여 사라지곤 했다 한다.-

그러나 이와같이 치우천왕에게 패한 황제의 전설 일화는 무슨이유에서인지 후일 우임금때 쓰여진 「산해경(山海經)」에서 황제와 맞선 형천(刑天)과 과보의 일화를 말하면서 바꿔치기되고 만다.
  
*「산해경(山海經)」 해외서경(海外西經) 편에, 形天與帝至此爭神, 帝斷其首, 葬之常羊之山…형천은 황제와 이곳에 이르러 신의 자리를 두고 싸움을 했다. 황제는 그의 머리를 잘라 상양산에 묻었다
*山海經復涉  (자랑할 과誇에서 말씀언 뺀 글자 과父謂應龍(黃帝神龍)已殺蚩尤又殺誇父,  (大荒北經), 應龍殺蚩尤與 誇父, (大荒東經), 誇父者, 大荒北經云, 后土生信, 信生誇 父.  而海內經謂后土爲炎帝之裔, 是誇父亦炎帝之裔也.(과장할 과(誇)에서 말씀언을 삭제하면 자랑할 과이고 어버이 부는 보로 읽는다 글자 지원이 부족해 자랑할 과 대신 과장할 과誇로 쓴다)
-산해경 과보(誇父)편에 의하면, 응용은 황제의 신룡(神龍)인데 치우(蚩尤)를 죽였으며 또한 과보(誇父)도 죽였다고 적고 있다.  대황북경에서는 응용이 치우와 과보를 죽였다. 대황동경에서는, 과보(誇父)는 대황북경에서 이르기를, 후토가 신을 낳고, 신이 과보를 낳았다. 해내경(海內經)에 의하면, 후토는 염제(炎帝)의 후손인데, 이에 과보 역시 염제의 후손이다.

*在黃帝與蚩尤之戰中,誇父自亦當參加蚩尤戰團, 因而始相繼爲應龍所殺蚩尤與 父喪亡後, 乃又有刑天舞其干戚, 與帝爭神.  刑天者炎帝之臣, 或亦炎帝之後也.… 則刑天者, 亦猶蚩尤誇父, 奮起而爲炎帝復仇, 以與黃帝抗爭者也.
-황제와 치우의 전쟁 중에 과보는 스스로 치우의 전단에 참가했다. 인해 처음과 서로 연결한다면, 응용이 치우와 과부를 죽여 장사지내고 난 후에 또다시 형천이란 자가 있어 방패와 도끼를 휘두르며 제왕과 신의 자리를 두고 싸우려 했다. 형천은 염제의 신하라고도 했고, 염제의 후손이라고도 했다.…   즉 형천은 치우와 과보와 같이 염제의 원수를 갚고자 떨치고 일어나, 황제와 맞서 싸운 자이다.


낙빈기가 해석하는 혈통 계보를 보면 다음과 같다. 황제는 신농의 모일급 정비가 낳은 딸 누조( 祖)와 결혼한 신농의 큰 사위고, 소호금천은 신농의 자일급차비가 낳은 딸 소진(小辰)에게 장가든 작은 사위다. 낙빈기가 바라보는 세계는 부권제가 아닌 모권제이므로 외가의 권력이 황제를 좌우한 것으로 본다. 황제가 도망가고 아들 소호가 제위를 잇자 신농계열에서는 소위 "구려(九黎)의 난"이 일어나 7년 만에 소호는 제위를 신농의 손자이자 황제의 외손자인 전욱고양에게 넘긴다.



* 동이족은 상고시대부터 양잠을 시작해 각 시대의 조정에서 왕비들이 양잠의 책임자로 백성들의 양잠을 솔선 수범해 왔다. 특히 가장 저명한 것이 양자강 유역의 동이 9려(黎) 족(래이족)과 동이 묘족의 양잠은 아주 유명하여 그 전통이 지금의 항주 소주 인근에 아직 남아 대륙의 특산품이 되고 있다. 그럼 누가 양잠을 처음 시작했는가?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아직 상고사학으로 끌어올릴 사료는 없다. 다만 환단고기나 단기고사 등에 환웅시대의 잠사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우리민족이 잠사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듯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태호복희가 태어난 감숙성 성기(成紀)- 곧 지금의 천수(天水)시 복희 사당에 들르면 다음과 같이 복희가 누에를 가르쳤으며 복희가 사람들에게 잠사와 실을 잣는 섬유식물 사용을 가르치고, 사람에게 잠사를 가르쳤다는 글을 만날 수 있다. 《路史汲記·(羅注引<星圖要覽>)》 云(노사급기 나주에 성도요람을 인용해 말하기를),  伏羲氏化蠶(복희가 누에를 가르쳤다) 上羅注引 <白氏帖> 云(나주를 인용해 "백씨첩"이 이르기를) "伏羲化布 敎人用蠶絲 植物纖維紡線(복희가 사람들에게 잠사와 실을 잣는 섬유식물 사용을 가르치고) *網織布 縫衣著裝 使人們抵禦寒冷的能力有了大提高(천을 짜 옷을 봉제해 꾸며입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추위를 막는 능력을 제고시켰다) 다시 말해 양잠은 바로 동이족의 조상이신 태호복희때부터 시작했으니 바로 배달국 환웅시대부터 시작했음을 확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동이족은 상고시대부터 양잠을 시작해 각 시대의 조정에서 왕비들이 양잠의 책임자로 백성들의 양잠을 솔선 수범해 왔다.(환단고기 참조 요) 특히 가장 저명한 것이 양자강 유역의 동이 9려(黎) 족(래이족)과 동이 묘족의 양잠은 아주 유명하여 그 전통이 지금의 항주 소주 인근에 아직 남아 대륙의 특산품이 되고 있다. 특히 치우천왕의 묘예인 동이 묘족은 지금도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을 전통적으로 입어오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지나의 양심있는 학자 임혜상은 대륙의 모든 실크는 양자강 유역의 동이 제 족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주나라때에도 이들 동이족이 궁중의 모든 비단을 공급했으며 심지어 서역으로 향하는 실크로드를 개척한 주인공도 바로 그 실은 동이족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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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양자강 중류 호남성 동정호 주변  4대문명보다 앞선 양자강 문명 발굴Click!
2.벼농사와 밀접한 관련, 최초 문명의 양자강Click!
3.양자강의 도작문화 유적지 Click!-
상기 1,2,3번을 읽으면, 최초의 벼농사 지역인 동이 제 족의 상고대륙사의 유적지에 대해  한반도를 제끼고 일본 야요이 문화의 직접적인 뿌리로 이어보려는 일본상고사학계의 고심을 이해할 수 있으며 반대로 대륙고고학으로 광역화된 일본 고고학계의 거시적인 학문태도와는 달리  해방이후 지금까지 반도고고학에 머물고 있는 한국 강단사학계의 한심한 실정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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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족은 지나족이 황별의 시조로 내세운 황제헌원의 부인과 관련된 양잠고사를 내세워 마치 양잠이 지나족에 의해 시작된 것 인양 오도하려 하고 있지만 다음의 황제헌원 부인 동이족 누조의 양잠고사는 역설적으로 동이족의 면면한 양잠의 역사를 각인해 줄 뿐이다. 참고로 황제는 4인의 여자가 있는데 정실부인은 누조(女+累,祖)로 동이족 후손답게 근로 총명하고 양잠을 가르치고 직조제의했다하며 후인이 "先蠶娘娘"이라 불렀다 하며 나머지 3인은 방뢰(方雷), 동어(丹+터럭삼,魚), 모모(女+莫,母)다. 모모(女+莫,母)는 장상(長相)이고 가장 추했으나 심지가 선량하고 가장 현덕했다 한다. 자식은 모두 25인으로 14인이 새 성씨를 가졌다. 황제는 어머니는 서교(西橋)씨의 여자인 부보(附寶)로 부보는 24개월만에 황제를 낳은 것으로 사료상 되어 있으나 역시 신비화하기 위해 왜곡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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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 고향 감숙성 성기-천수시 진성구 복희묘 본전인 무극전 전경. 향로에 태호궁이라 써있다.

황제의 처 누조는 부락의 부녀를 데리고 산 위에 올라 야생 과일을 따러 산 위에 올라갔다. 태양이 막 얼굴을 드러낼 때, 그녀들은 키 작은 산 위에 기어올랐다. 산 위의 키 작은 나무 위에는 빨갛고 붉은 작은 열매가 열렸는데, 누조는 나이가 많은 부녀 몇 몇은 기다리게 하고 나이 어린 여자아이들을 시켜 그 열매를 따오게 했다.

태양이  산허리 위로 반쯤 얼굴을 내밀자, 그녀들은 옆에 있는 큰 산 위로 올랐다. 몇 그루인지 셀 수 없는 태고적 나무 위에 맑은 황색을 띤 적지 않은 열매가 열려 있어서, 누조는 임신한 부녀는 기다리게 하고 자신이 직접 신체가 건강한 소수의 부녀를 거느리고 다른 산 위로 매달려 올랐다. 태양이 온전히 머리를 들자, 그녀들은 세 번째 산 위를 타고 올랐다.

산 위의 가파른 절벽 위에 붉고 검은 색의 작은 열매가 만발해 있어서 누조는 남은 부녀를 데리고 절벽 위의 열매를 따기 시작했다. 이 열매는 비록 먹음직스러워 보였으나, 열매는 많지 않았다. 누조는 자기 혼자 다른 산위로 올라 열매를 찾기로 결정했다. 태양이 서산 위에 걸리자  , 누조는 네 번째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뜻하지 않게 산 고개 옆에 초록으로 울창한 나무 위가 모두 실로 작은 열매로 가득 찼음을 발견했다. "이 곳은 가히 우리가 찾고 있던 바로 그 곳이다. 오늘은 능히 적지 않은 열매를 딸 수 있게 되었다. 내일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다. 부락 사람이 가히 이 열매를 오랫동안 잘 먹을 수 있으니 아주 잘 되었다."

태양이 점점 지기 시작해 산 뒤로 숨으려 했다. 누조(女+累,祖)는 곧바로 노곤한 허리를 일으켜, 태양을 바라보고 또 손가에 놓인 열매를 바라보니, 한줌의 열매로 그치기에는 너무도 원치 않는 것이어서, "열매가 너무 많으니, 사람들을 데리고 여러 번 오면 충분히 딸 수 있어!" 누조는 나긋나긋한 허리 아래 큰 광주리를 준비하고, 수 차례 힘을 쓰니, 광주리를 지고 일어날 수 없었다. 이 때 누조(女+累,祖)는 가까스로  위장이 텅빈 나머지 허기져서 사지가 무력한 것을 깨달았다.

누조(女+累,祖)는 열매 하나를 입에 넣고 깨물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깨지지가 않아서, "이 종류 열매는 삶아야 겨우 먹을 수 있겠군!" 누조(女+累,祖)는 단지 허리춤 사이의 가죽 주머니 속으로부터 한 덩어리 고기를 꺼내 들었다. "먹기가 안 좋지만, 힘을 들이면 먹을 수 있어!" 누조는 고기를 씹어 목에서 배로 넘기려 노력했다. 그녀는 또 손을 끌어 몇 조각 나뭇잎을 입에 넣어  씹어 갈증을 느끼는 인후를 다소 적셨다. 날이 저물자 누조(女+累,祖)는 큰 광주리를 등에 지고 일어나려 노력한 끝에 겨우 비틀비틀 뒤뚝뒤뚝 거리면서 산 아래를 향해 하산했다. "빠르게 달리자, 모닥불 가의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기다릴거야!" 누조(女+累,祖) 는 황혼에 접어든 산꼭대기에서 빠르게 하산했다.

"산은 높지 않아, 열매 하나 깨무는 사이 올라왔다. 산 고개가 높지 않아서 단 한번에 내려갈 수 있어" 누조는 산 위를 기어올라오다시피 할 때 스스로에게 다졌던 말을 내려갈 때도 되뇌었다. 멀리서 검은 구름 사이에 번쩍 빛나는 초록의 으시으시한 눈동자가  보이더니, 울부짖는 호랑이와 이리가 불시에 산중을 덮칠 것 같았다. "두려워하지 마, 두려워하지마, 맹수들은 감히 오지 못해,  빨리 달려! 빨리 달려! 그들은 내게 달려오지 않아!" 누조(女+累,祖)는 달리는데 만 열중해 날듯이 앞만 보고 달렸다. 마침내 부락의 햇불 더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를 부르는 부락민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돌아왔구나, 여러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누조(女+累,祖)는 아주 신이 나서, 마을 사람 곁으로 속히 달려가고자 하여, 공포와 누적된 피로가 가셨다. 그녀는 다시 움직여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 땅위에 넘어져 기어다니다시피 해 걸었다. 모든 것이 희미하고 아련한 경황 속에, 누조는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오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무거운 발걸음에 힘을 주어 사력을 다해 걸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양어깨에 걸머지고 있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어 그에게 말하려 안간힘을 썼다.

"열매가 딱딱하니 삶아 드세요!" 모기만 한 소리로 전한 이 말 뜻이 제대로 전해지자 마자, 그녀는 마음이 풀리고 스르르 눈이 감기더니,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튿날, 누조(女+累,祖)가 눈을 뜨자 빛나는 태양이 하늘에 걸려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주위는 지극히 평화롭고 조용했다. 이 시간은 남자들이 모두 수렵을 나가고, 여자들은 열매를 따러 나가는 시간이었다. 부락에는 단지 연로해 힘없는 사람과 아이들만이 남았다. 누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혼신을 다했으나 몸이 욱신거리고 시었다. 한 나이 많은 부인이 놀라서 탕 그릇을 들고 나타나 누조(女+累,祖)에게 반강제적으로 먹이니 정신이 다소 호전되었다.

누조(女+累,祖)는 급히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산위에 아주 많은 하얀 열매가 있는데, 모으면 우리들이 아주 오래 잘 먹을 수 있습니다." 노부인은 기어들어 가는 새 소리 지저귀듯 멀지 않은 곳의 큰솥을 가리켰다. 누조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솥 앞으로 갔는데, 솥 안에는 곤충이 오므라든 것이 마치 가는 나뭇가지와 같았다. 손으로 한번 잡으니 미끄럽게 흘렀으며 찬 실같은 것이었다. 노부인이 수행해 와서 말하기를;"하얀 열매를 물에 넣고 삶으니, 모두 이런 가늘고 긴 벌레로 변해 누구라도 감히 먹지 못합니다."

누조(女+累,祖)는 힘없이 나무 아래에 기대어 의복을 바느질했다. 누조가 가죽옷을 다 수선하자 ,또 거친 베옷을 손에 들었다. 팽팽했던 베(麻)실이 불시에 끊어져 축 늘어졌다. "아직  마(麻) 실이 남아 있나요?" 누조가 물었다. "없습니다. 채집하러 나간 여자들이 마(麻)를 가지고 오면 가까스로 실을 비벼 잣는 것이 가능할겁니다." 노부인이 대답했다. 누조는 낙심해 의복을 내려놓고, 가늘게 뜬눈을 치켜 부릅뜨고 솥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먹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를 얻으려 큰 힘을 들였는데, 실로 애석한 일이로다!" "어? 이는 당연히 실로 사용활 수 있겠는걸?" 누조(女+累,祖)는 영감이 한번 스쳐지나가자, 솥 안의 "누에고치" 가지 하나를 건져, 골침에 구멍을 뚫어 실을 뽑아 의복을 바느질했다. 그녀는 바느질이 잘 된 베옷을 질질 끌고, 들어 올리며 좋아했으니 이는 아주 특별한 결실이었다.

누조(女+累,祖)는 극도로 신이 났다. 그녀는 벌레를 집어들고 햇빛에 말려 베로 짠 실과 같이 말아서, 마포(布)를 짠 것 같이 그 실로 포(布)를 짰다. 그리고는 그 포로 작은 의복을 만들어 황제에게 주었다. 누조가 이 일을 하는데는 허다한 날이 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옷인가? 연(軟)하기도 하고, 매끄럽기도 한 것이 진실로 우아한 옷이로다." 황제는 이 옷을 한참 이리저리 연구한 뒤에 기뻐서 말했다.

누조(女+累,祖)는 다시금 신이 나서 황제에게 나아가 의복의 내력을 설명했는데, 말미에 가서 그녀는 흥분해서 말했다: "이후, 여름을 나고 있는 우리 족인들로 하여금 모두 이 의복을 연구하게 할 것인 바, 옷이 아주 서늘하고 또 햇빛과 모기 등의 곤충이 물어뜯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누조는 다시 그 산으로 하얀 열매를 따러 갔으나 하얀 열매는 이미 하나도 없고  온 산에 잿빛 나방만 가득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듬해 봄, 누조는 다시 하얀 열매를 찾아 그 산에 올라갔으나, 나무 위에서 단지 허다한 백반반(白,目+半,目+半)의 작은 벌레만 발견했다. 또 일단의 시간이 경과하자, 누조는 작은 애벌레가 한 가닥의 미세한 실을 토하더니, 그 실들이 스스로를 감싸는 것을 발견했다. 며칠 뒤, 산 위에는 또  작고 흰 열매가 허다하게 선보였다. 누조는 마침내  백색의 물건은 열매가 아니라, 작은 애벌레 집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누조는 산 위에서 몇 년간을 관찰하여, 마침내 이 "작고 하얀 열매"가 변태해 나아가는 전 과정을 파악하여, 작은 벌레를 집에서 길러 하얀 열매(고치)를 뽑아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누조는 부락의 부녀를 거느리고 작은 애벌레를 기르기 시작했다.  누조는 작은 벌레에게 "잠( :누에)"라는 이름을 부쳐주고, 누에를 기르는 나무를 뽕나무(桑樹)라 불렀다. 이로부터 인간은 새 의복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옷은 점점 더 정미(精美) 로와졌다. 후세 사람은 모두 양잠의 시조 누조를 잊지 않을 것이다.(안원전:향토사료 누조의 실크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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