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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서 배우는 부자들의 철학]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

[역사에서 배우는 부자들의 철학]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


독립운동 위해 모든 걸 바친 삶… 노블레스 오블리주 온몸으로 실천


이명관 기자 mklee@kyeonggi.com 2015년 01월 02일 금요일 제35면



 











  ▲ 이회영과 6형제의 가족사진  
  ▲ 이회영과 6형제의 가족사진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북한을 놓고 전 세계적으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신흥귀족집단이라 할 수 있는 소위 대한민국의 재벌가도 3ㆍ4대째 부를 세습하고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다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재산과 목숨 등 모든 것을 희생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우당 이회영과 6형제 가문의 후손 이종걸 국회의원(58)은 지난해 말 대한민국을 들끓게 했던 ‘땅콩 리턴’ 사건을 놓고 이같이 말했다.


승무원의 기내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 중인 항공기를 돌려세운 이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는 대한항공(KAL)과 유착한 국토부 공무원을 일컫는 칼피아까지 이어졌고, 증거인멸 혐의로 대한항공 간부까지 구속하는 등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우리나라의 신흥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재벌가의 3세 중 하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비단 조 전 부사장의 일만은 아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재벌 3ㆍ4세의 사고 행각은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더욱 키워갔다.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져야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펼쳐야 할 주체이기 때문에 더욱 높은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우당 이회영의 젊은날의 모습  
  ▲ 우당 이회영의 젊은날의 모습  

1ㆍ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천여명이 전사했고,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이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 않은, 아니 이보다 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문이 있어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우당 이회영과 6형제 가문이다. 조선 후기 수백년 동안 10명이 넘는 정승을 배출한 이 가문은, 나라가 멸망하자 정부로부터 받았던 수백억원이 넘는 가산을 모두 정리해 독립투쟁의 길로 나섰다. 집안 사람 모두가 나라를 구하는 투쟁의 길로 나선 사례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그들의 희생은 참으로 눈물겨웠다. 6형제 중 다섯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형제 중 둘째인 이석영은 1934년 상해에서 굶어 죽었으며, 여섯째인 이호영은 1933년 베이징에서 일가족과 함께 행방불명됐다. 이들 두 형제들은 후손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첫째 이건영은 1940년 사망했으며, 셋째 이철영은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한 뒤 1925년 병사했다. 넷째 이회영은 뤼순감옥에서 일제의 고문 끝에 순국했다. 다섯째인 이시영만 해방 이후 환국해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이 의원은 “시영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물려준 재산도 거의 없으며, 조카들이 자리를 잡도록 개인적으로 권력을 사용하지 않은 꼿꼿한 분이셨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할아버지 형제들이 일본에 굴복해 일신의 안위를 챙겼다면 그 후손들이 개별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며 “후손들 대부분은 자동차 정비업, 태권도 사범 등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는 조상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가문
이회영의 가문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백사 이항복(오성과 한음의 오성) 이래 경주 이씨 백사공파로, 이항복 이후 조선이 망할때까지 무려 11명의 정승을 배출했다.

조선사에 일획을 그은 정승으로는 이항복을 비롯해 구천 이세필, 오천 이종성, 귤산 이유원 등이 있으며, 또한 임진왜란 중 일선에서 싸운 이수일장군도 수백년간 10명에게만 주어졌던 충무공의 시호를 받은 집안 사람이다.

이 중 가문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항복과 이종성은, 직접 받은 땅이 없다. 당시 선비들의 최고 덕목인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것이다.

특히 지금의 야당격인 소론 가문으로 핍박받는 가운데에 이 같은 인물을 배출하고 가문을 유지해 조선 후기 최고의 가문으로 여겨졌으며, 우리나라의 옛적부터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을 뜻하는 ‘삼한갑족’이라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삼한이란 우리 땅을 이르는 말이고 갑족이란 으뜸집안이라는 뜻이다.

특히 이 가문이 주목받는 것은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떨쳐 일어나 외세에 맞서 싸웠다는 점이다.

민족적 위기에 수많은 애국자가 목숨을 바쳐 희생했지만, 단기필마로는 단연 안중근, 군사조직적 대응은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 집안으로는 이회영과 6형제가 꼽히는 이유다.

이들 6형제는 1만석이 넘는 전답과 가산을 모두 파는 등 평생이 보장된 신분과 대대손손 누릴 수 있는 부를 모두 버리고 총칼로 빼앗긴 나라를 찾기위해 낯선 서간도로 떠났다.

이 의원은 “할아버지 형제 중 다섯째인 시영할아버지(대한민국 초대 부통령)는 당시 1ㆍ2차 내각을 주도했던 김홍집이 장인으로 이미 지금의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판윤 등을 지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형제의 뜻에 따랐다”며 “또 큰어머니 중 한분은 흥선 대원군의 손녀이기도 했다”고 당시 집안에 대해 부연설명했다.

 











  ▲ 가문대대로 내려오는 인장  
  ▲ 가문대대로 내려오는 인장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로 평가받는 우당 이회영 일가의 재산은 얼마나 됐을까.
이회영의 손자 이종걸 국회의원은 “당시 급하게 서간도로 가기 위해 신속하고 은밀하게 처분하다보니 당시 돈으로 40만원(현재가치 600억원)의 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100여년 전의 일이라 모든 것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연세대학교 왕현종 교수의 2001년 ‘우당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 재산조사사업’을 통해 드러난 토지만 해도 서울과 양주, 파주 등 수도권과 개성, 충주 등에 널리 분포돼 있다.


주로 왕실에서 받은 땅이 대부분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회영 일가의 개인재산만 양주 화도면ㆍ진건면ㆍ은현면 일대 646필지 251만9천75평, 개성 홍교면 일대 19필지 7만4천74평, 파주 장단 군내면일대 6필지 8천8평, 충주 감미면, 금생면ㆍ금천면 일대 52필지 6만5천952평, 서울황금정이정목ㆍ영락정 일대 3필지 1천226평이다. 수도권 일대 금싸라기 땅을 포함해 전체 726필지 266만8천335평이다.

이 의원은 “이 조사에는 서울 명동 1만평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요즘 시세로 명동 땅이 평당 2억원이니까 명동 땅 가치만 2조원에 달한다고 단순 계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토지의 가치에 더해, 드러나지 않은 재산까지 현재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적게는 수십조에서 많게는 수백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세계 억만장자 1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의 재산은 860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89조6천억원에 달한다.

 











  ▲ ‘독립운동가’ 이회영 손자 이종걸 국회의원  
  ▲ ‘독립운동가’ 이회영 손자 이종걸 국회의원  

조선 최고의 형제
우당 이회영을 비롯한 6형제는 1910년 9월 조국이 일본에 합병되자 서둘러 망명을 결심한다.

그해 12월 가솔과 노비를 해방했으나 수행을 자청한 일꾼까지 합해 일가 40여명을 거느리고 신의주~안동(단동)을 거쳐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한다. 다음해 3월 북경에서 원세개(袁世凱) 총통과 회담해 통화현 합니하에 독립군 기지를 설치한 후 이동영, 장유순과 함께 각지의 동지를 모아 대회를 열고 경학사를 조직했다.

경학사를 기반으로 신흥강습소(후에 신흥무관학교로 개칭)를 설립했고,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까지 계속하여 독립군을 양성했다. 총 배출 인원은 3천500명으로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토록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 의원은 “당시 따라 온 모든 노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편입시켜 독립군 동지임을 일깨웠고, 노비에 대한 차별적 낮춤말을 평등한 높임 말로 대화하도록 했다”며 “심지어 그 빨래는 할머니가 했다. 노비의 옷을 마님이 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이회영은 임시정부 초기에 참여했으나 망명정부라도 하나의 정부기구로 권력이 집중되면 결과적으로 지위와 감투욕 때문에 투쟁력을 저하한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북경으로 돌아와 단재 신채호와 더불어 몸소 실천을 통한 독립투쟁을 전개하다 생애를 마쳤다.

이 의원은 “당시 ‘우당집에 밥 얻어먹지 않는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다”며 “그 많은 재산도 이런 나날을 보내느라 모두 탕진됐고 말년에는 궁핍한 생활을 한 것도 모두 이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맺으며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오는 3월1일까지 덕수궁 중명전에서 ‘우당 이회영과 6형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된 이회영의 묵란(墨蘭ㆍ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 난초그림) 작품 4점은, 83년만에 돌아와 다시 푸른 잎사귀로 돋고 있다. 막연히 알고 있던 이회영과 6형제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그들의 삶은, 천년이 지나도 우당이 남긴 은은한 난 향기처럼 후손들의 심신을 감싸안고 있을 것이다.


이명관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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