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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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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다 쇼인의 후예, 전후 일본 야쿠자의 대부 두산만(도야마 미쓰루)과 현양사(겐요샤) 및 흑룡회







 













도야마 미쓰루(두산만)


1885년 5월 27일-1944년 10월 5일(59세)사망







일본 야쿠쟈의 시조 이자 극우의 시조 격 두산만-도호야마 미쓰루. 명성황후 시해의 배후조종자 이자 쑨원(손문)과 김옥균의 후원자로 현양사(겐요샤), 흑사회 등등  낭인단을 조직, 일본 정계에서 막후거물로 실력 행사. 구일본의 내각총리대신들이 취임할때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당선발표후 문안을 올렸던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 사주 방일영, 방우영처럼 그에게 반드시 인사를 했다. 미국내 유대인 프리메이슨 조직이 대선몰이한 인물이 얼굴마담 대통령이 되고 그들을 연결하는 최고 실무책임자는 부장관이나 장관자리에 넣어주어야 했다. 부시대통령때는 미국무부 부장관 월포위츠 정치학 박사(부시정권내 유대인 최고 실무책임자)가 프리메이슨 최고지도부가 하달하는 정치이념대로 부시는 거수기 역할을 다했다.   두산만 역시 19세기 말 일본 극우 네오콘의 최고보스로 일본총리는 그가 점지한 인물로
극우주의자들의 식민지 정책 수행 및 대동아 전쟁으로의 거수기 역할을 했다.(chera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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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37년간 ‘정한론’ 무르익을 때 조선은 뭐했나 …

이토·야마가타 뒤엔 ‘암흑의 권력’ 현양사(겐요샤)가 있었다

100년 전 일본은 두 개의 흐름으로 조선을 공략해 왔다. 하나는 공식 라인, 다른 하나는 비공식 라인이다. 공식 라인은 눈에 보인다. 정한론(征韓論)의 정신적 지주 요시다 쇼인(길전송음)(Click here!!>의 두 제자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동지이자 라이벌인 두 사람은 공식 라인을 대변한다. 이토는 초대 총리를 포함해 총리를 네 번이나 지냈고, 일본군을 근대화한 야마가타는 이토에 이어 두 번의 총리를 지내며 조선 침략의 발판을 다졌다. 이들의 출신지는 일본 서부 야마구치현(요시다 쇼인 고향)이다. 비공식 라인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일본 특유의 대륙낭인들이다. 그들은 정한론이 대두된 1873년부터 조선을 병합한 1910년까지 공식 라인에 앞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구로부터 일본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 역사 속 현장을 찾아갔다.

 


대외론에서는 일본의 해외 진출을 호소해 구미 열강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대외의 입장에서 주장을 행하였고, 일찍부터 대 러시아 동지회에 참가해 러일전쟁 개전론을 주장했다.


김옥균이나 쑨원, 라스 비하리 보스 등 일본에 망명혁명활동가들을 원조했다.


1881년, 하코다 로쿠스케, 히라오카 고타로등과 겐요샤(현양사)를 설립했다.


 


현양사(겐요샤):1881년 도야마 미치루[頭山滿] 등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몰락한 사족(士族:무사계급)의 불평분자를 규합하여 조직한 국가주의 단체이다. 정한파(征韓派) 사족인 향장사(向場社)를 주축으로 결사되었으며, 처음에는 국회 개설운동에 참가하는 등 민족주의·민권주의를 내걸었으나 차츰 민권운동에서 이탈하여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는 국권주의적(國權主義的) 단체로 변모하였다.

청일전쟁러일전쟁 때에는 대외강경론을 주장하며, 군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정한론을 지지하여 일본의 한국 국권침탈을 준비하고, 초기의 중국혁명을 지원했으며, 러일전쟁 때는 만주의군(滿洲義軍)을 조직하여 게릴라 활동을 하는 등 정치·전쟁·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 점령군인 미군이 해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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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8월 18일 쑨원이 오전 1시쯤 아카사카 안가(安家)에 후원자들과 도착했다.' 일본 외무성 외교사로에는 쑨원이 2차 신해혁명에 실패하고 일본에 망명하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외면하고 중국정부가 쫓던 쑨원을 993일간 숨겨줬던 '후원자'가 두산만(도야마 미쓰루)라는 일본의 우익단체 '원조'다.


도야마는 1876년 일본정신을 일으켜야 한다며 '교지사'라는 단체를 만들어 1881년 '현양사(겐요샤)'로 이름을 바꾼다. 현양사는 '흑룡회', '낭인회', '대동숙'등의 우익단체를 낳고, 이들은 아시아 침략의 첨병이 됐다. 신해혁명과 만주사변, 중일전쟁에 개입했고, 전후에는 장제스와의 인연을 이용해 중국이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지 않도록 정전협상에도 작용했다.


이론 후쿠오카 인근 신사에 있는 120cm의 시퍼런 일본도 칼집에는 '단숨에 전광과 같이 늙은 여우를 찔렀다.'라는 글이 적혀있다. '늙은 여우'는 명성황후이고, 이 칼로 국모를 시해한 '도 가쓰아키'라는 낭인 역시 '현양사'소속이다. 이들은 갑신정변에 개입했고, 김옥균과 박영효 등을 일본에 숨겨주기도 했다. 동학농민운동때는 '천우협'이라는 단체로 가담하는 등 일본 우익단체는 우리 근대사 곳곳에 어두운 흔적을 남겼다.


맥아더 군정에 의해 현양사등은 해산됐지만, 우익단체의 잔영은 꾸준히 일본 정계에 영향을 미쳐 왓다. 최근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만 해도 우익단체 간부와 자주 술자리를 가져 물의를 빚었다. ㅠ사토 에이사쿠나 나카소네 야스히로 같은 거물 총리들도 우익단체 회원의 조언을 들어가며 정치를 했다 한다. 흑룡회가 남긴 '대일본 제국', '천황 중심주의', '국수주의''현상타파', '상무정신'등의 강령은 지금도 일본 우익단체의 핵심 강령이다.


'일본사도회'라는 우익단체가 독도 상륙을 노리며 5일 출항했다. 지방의 작은 단체라고, 야쿠자와 다를 게 없는 그들이라고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일본 우익단체들은 스스로 1000여개 단체에 20만 넘는 회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나 규모가 아니라, 일본 우익이 역사적으로 일본이란 나라의 심해저에 무슨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가를 먼저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의 구실을 해왔다는 데 있다.

독도 상륙을 외치는 '일본사도회'의 등 너머에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는가를 바로 봐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2004년 5월 6일      -      조선일보 권대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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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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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의 설립자
우치다 료헤이(상,하)
파일:Ryohei Uchida.jpg

 


우치다 료헤이(일본어: 内田良平, 1874년 2월 11일 ~ 1937년 7월 26일)는 일본의 국가주의자, 우익운동가, 아시아주의자이다. 1901년 대아시아주의와 천황주의를 표방하고, 흑룡회를 설립하였고, 천우협을 통해 이용구와 결탁하여 일진회를 움직여 한일합방청원운동을 일으켰다. 또한, 중국혁명동맹회를 후원하여 중국 혁명의 배후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우치다는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일본의 전통 무술에 관심이 있었다. 1895년 토요고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1897년 시베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어려서 겐요샤라는 민족주의단체에 참여하였는데, 겐요샤는 아시아 본토를 향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단체였다. 한국에서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그는 한국으로 건너가서 동학당을 도왔다. 1901년 일본으로 돌아와서 흑룡회를 창립하였는데, 흑룡회는 극우주의단체로서 러시아, 한국, 그리고 만주로 진출할 것을 주장하는 단체였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그는 한국병합에 그의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일진회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그는 일본 사회와 정치의 자유주의를 공격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1925년 수상과 천황의 암살음모로 체포되었으나 무죄로 석방되었다.


 


 


흑룡회(黑龍會, 일본어: 黒龍会 (こくりゅうかい), 영어: Black Dragon Society)는 제국주의 일본의 국가주의 우익 조직으로, 1901년에 결성되었다.


1901년 2월 23일, 한반도를 주 무대로 하는 천우협(天佑俠)의 일원인 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 등이 한반도, 만주, 시베리아 일대의 낭인들을 모아 '흑룡회'라는 우익단체를 결성하였다. 이는 도야마 미쓰루(頭山満)의 겐요샤(玄洋社, 현양사)의 해외공작 담당그룹이었다고도 한다. '흑룡'이라는 명칭은, 그들이 일본 제국흑룡강(黑龍江, 아무르 강) 일대의 주도권을 차지하도록 지원함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이다. 우치다 료헤이는 그 주간(主幹)이 되었고, 도야마 미쓰루는 고문이 되었다.


초기에는 현양사의 폭력적인 요소에 거리를 두는 노력으로 낭인들 외에 내각의 장관과 군부 고위층 관리를 회원으로 끌어들이기도 하였으나, 점차 범죄적인 수단을 동원하게 되었다.


흑룡회는 《흑룡》이라는 기관지를 간행하였고, 정탐 요원을 양성하여 파견하기 위한 학교를 운영하여 만주, 한반도, 중국 등지에서 대(對)러시아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일본의 정치가들에 강력한 외교 정책을 펴도록 압력을 가하였다. 흑룡회는 대아시아주의를 지원하여, 쑨원(孫文)이나 에밀리오 아기날도와 같은 혁명론자에 자금을 빌려주기도 하였다.


러일전쟁(露日戰爭)에서는 일본제국 육군이 흑룡회 조직을 첩보, 사보타주, 암살 등에 활용하였다. 흑룡회는 거짓 정보와 선전을 퍼뜨려 일본 군부와 관련된 심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이들은 일본 군대의 통역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첩자인 아카시 모토지로를 지원하기도 하였고, 아시아불교 세력과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흑룡회는 한국 병탄(韓國倂呑)에 앞장섰고, 이를 위해 일진회(一進會)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병탄 이후에는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한국인 학살을 주도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였다.


흑룡회의 영수 우치다 료헤이는 중국으로 세력을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중국 혁명과 공화제를 지지했다. 그가 신해혁명 기간에 쓴 "중국개조론"에서 "일본은 열국(列國)을 지도하여 중국을 개조하는 주도권을 장악해야 하고, 공화 정치를 건설하는 일을 찬성하는 방법으로 중국이 과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힘껏 고취했다. 그리고 1914년 10월에 기초한 "중국 문제 해결에 관한 의견서"에서 더욱 철저하에 그가 중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망령된 의도를 드러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이 비밀군사동맹조약을 체결하되 조건을 걸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즉, 일본은 중국의 남만주· 내몽고· 산둥· 푸젠 등에서 특수한 권리를 누리고, 중국의 군대· 군수공장· 해군· 재정· 교육 등은 모두 일본에게 위탁 처리하고, 중국이 타국에 차관 조차 할양을 할 경우 반드시 일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사실상 이것은 중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의견서는 뒤에 일본 정부가 위안스카이 정부에 제출하여 중국을 멸망시키려 했던 21개조 요구의 토대가 되었다. [1]


1920년대 ~ 1930년대에는, 주류 정치단체로 성장하여, 공공연하게 자유주의좌익사상을 공격하였다. 이 시기의 회원 수는 수십 명 정도가 넘지 않았으나, 정부와 군부, 재계의 유력인사와의 밀접한 연계로 다른 초국가주의단체보다 훨씬 큰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30년대에는, 초기의 목표였던 러시아에서 유럽미국은 물론, 에티오피아, 터키, 모로코, 동남아시아남아메리카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흑룡회는 1946년미국 점령 당국의 명령으로 공식적으로 해산되었으나, 1961년, 우치다 료헤이 작고 25주년제를 계기로 하여 '도야마 미쓰루, 우치다 료헤이의 사상을 계승하고 보급한다'는 취지 하에 다이토주쿠(大東塾) 숙장 가게야마 마사하루 등을 제창자로 하여 흑룡구락부가 재결성되어 흑룡회의 계보를 잇고 있다.[2]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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