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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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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서양사16(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프리메이슨이 주도한 전쟁

어떤 작가들은 1914년의 제 1차 세계대전이 실제로 유태인과 메이슨들의 전쟁이었으며,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쟁을 유발시켰으며, 어느 경우가 되었든 간에 그들은 전쟁을 이용했으며 사실상 베르사이유 평화조약과 유럽 전제군주의 몰락, 유럽의 혼란, 카톨릭 국가 오스트리아의 파괴, 유태인이 장악한 재정 지배권의 엄청난 수혜자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실은 다소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거의 사실적인 측면을 담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음의 몇 몇 메이슨 문서들을 보기로 한다. 다음의 마치 한 폭의 그림이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묘사를 보면 세계사를 보는 인식이 새롭게 변할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프리메이슨 조직

1912년 9월 15일 빠리의 무슈 쥬앵(Jouin)이 편집한 「르뷔 엥떼르나쇼날르 데 쏘시에떼 스끄레뜨(Revue internationale des Societes secretes:International review of Secrete Society)」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느 날 “고위 스위스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어에 빛을 발할 것이다.: 그는 비범한 사람이다. 그가 경멸받고 옥좌의 계단에서 죽게됨은 애석한 일이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전제 군주국의 왕위 상속자, 대공(Archduke:오스트리아 황태자 칭호)과 그의 황태자비는 세르비아인 프리메이슨들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 뒤 10월 12일, 암살자 중 한 사람인 카브리노빅(Cabrinovic)은 군사법정의 판사들 앞에서 태연히 말했다. “프리메이슨 조직에서 암살지령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암살사건은 간단히 말해, 정치적인 범죄로 전쟁에 대해 주의력을 산만하게 만들어 민심을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대공과 대공 부인이 공식적인 유람 도중 세르비아 국경 근처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한 작은 마을인 사라예보에 도착했다. 그들은 모토-카의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반대쪽엔 포티오렉(Potiorek) 장군이 합석했으며, 운전석 옆에는 해래크(Harrach) 백작이 합석하고 있었다. 차는 천천히 마을 공회당을 향해 미자카(Miijacka) 강을 따라 아펠(Appel) 부두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군중 가운데는 폭탄과 리볼버 총으로 무장한 8명의 암살자들이 골고루 흩어져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의연한 자들은 카브리노빅(Cabrinovic), 프린시프(Princip), 그라베즈(Grabez)였다.

쿠무르자(Cumurja) 다리 반대편에서 카브리노빅(Cabrinovic)이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차 위에 떨어져 바닥으로 굴러 들어가 폭발했다. 순식간에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포함해 몇몇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백작은 부상자를 살피기 위해 차를 멈추게 했다. 바로 이때, 이미 이를 예상해 미리 준비한 후속 암살 계획이 이들을 맞이했다. 마을 회당에서의 리셉션이 끝났을 때, 해래크(Harrach) 백작은 돌아가는 길에 오른쪽 편에서 대공 부부를 습격하는 시도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차의 왼편 단에 자리잡았다.

프란시스-요셉가(街)의 코너에서, 차가 암살자 중 한 명인 프린시프(Princip)의 코앞에서 갑자기 정차했다. 프린시프(Princip)는 자동연발로 몇 발을 근접 사격했다. 순간, 대공도 대공부인도 움직이지 않았으나 곧 바로 대공 부인은 남편의 어깨 위에 조용히 쓰러졌다. 해래크(Harrach) 백작은 “소피(Sophie), 소피(Sophie), 죽지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라고 조용히 말하는 최후의 말을 들었다.

그는 살아남아 조용히 자리를 지켜 부인을 부축하고 있었다. 약간의 피가 그의 입술로 젖어들었으며, 해래크(Harrach) 백작의 질문에 그는 아주 가는 목소리로 “괜챦아. 괜챦아”하고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고 나자 이번에는 그가 의식을 잃었다. 통치자 궁전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1층 침대로 신속히 옮겨졌다. 그러나 급히 달려온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조치라곤 겨우 이미 사망했다는 선언뿐이었다.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겨우 몇 분에 불과했지만, 이 짧은 몇 분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1차대전의 전쟁범죄는 이상한 마인드에서 발아했다. M. 코흘러(Kohler)는 재판 속기록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신과 세계에 상충하고, 기존의 모든 질서에 반하는 염세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이 바로 이곳 러시아의 에누리 없는 분위기였다. 약간의 실용적인 이념, 가령 세르비아와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인구를 통합한다는 것 같은 이념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너무 막연하고 모호한 나머지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해 마침내 오스트리아의 미움만 받고 끝났으며, 마침내 이 엄청난 왕국을 파괴시키기로 결단내려졌다.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독일 또는 라틴 수뇌부에서는 결코 채택할 수 없는 과격한 순간적인 흥분, 모든 정규적인 근로의 혐오, 놀라운 파괴 성벽(性癖), 혁명적 선전의 해독(폐해) 등 전적으로 슬라브 비잔틴 심리학이다. 1914년 10월 12일, 20명의 기소자가 사라예보 군사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 8명은 살인에 직접 가담한 자였다. 가장 열성분자인 4 명은 카브리노빅(Cabrinovic), 프린시프(Princip), 그라베즈(Grabez), 일릭(Illic)이었다. 프린시프(Princip)는 유태인이었다.

기소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 중 아무도 그들이 누구를 죽이고 왜 죽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아주 명백히 밝혀졌다. 그들은 누군가를 죽이는데 동의했지만 누구를 죽이고 왜 죽이는지 하는 문제는 완전히 부차적인 고려대상인 듯이 보였다. 원칙적으로, 그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슬라브족 주민과 특별히, 보스니아의 슬라브족 주민이 독일인과 헝가리인의 이익을 위해 압제받고 있다고 생각해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들의 증언을 보면 그들을 암살로 내몬 감정은 군주제도의 증오심 때문으로 보인다. 그들 모두는 본능적으로 대공(황태자) 프란츠-훼르디난드(Franz-Ferdinand)의 강한 성격이 혁명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때로는 서로 반대 성향을 지닌 이들 다양한 혁명가들을 하나로 묶어준 바로 그 동일한 증오심이 그들로 하여금 아주 신속히 암살이라는 합의점을 갖게 했다. 다음의 몇몇 진술은 이 사건의 내막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회자-당신이 한 행위로 남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슬라브족이 어떠한 이득을 얻게 되리라 믿었는가?  그라베즈(Grabez)-나는 남부 슬라브족이 돈을 비롯 거의 모든 혈세를 갖다 바쳐야 최소한의 생존권을 얻는다고 믿었다. 사회자-이들 최소한의 생존권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라베즈(Grabez)-자세히는 모른다. 사회자-그럼 왜 쓸 데 없는 말을 하는가.

그러나 프린시프(Princip)가 솔직히 말한 바와 같이 그들 모두는 암살하려 한 데 동의했다.

프린시프(Princip)-우리는 남부 슬라브족을 돕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동의했다. 사회자-그 방법들은 무엇인가? 프린시프(Princip)-암살이다. 범슬라브주의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자와 인민에게 불공정한 자를 모두 처단하는 것이다.

카브리노빅(Cabrinovic)-그(카시미로빅)는 프리메이슨이다. 그것도 어느 정도 그들  우두머리 중의 한 명이다. 암살을 지시한 뒤 그는 곧 해외로 여행했다. 그는 러시아, 프랑스, 부다페스트로 갔다. 내가 시가노빅(Ciganovic)에게 우리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척됐는지 물을 때마다 그는 내가 카시미로빅(Casimirovic)이 돌아올 때를 알아야만 한다고 대답했다. 이때쯤 시가노빅 또한 내게 프리메이슨들이 이미 2 년 전에 그 황태자에 대한 제거 결정을 내렸지만 그러한 결정을 실행할 인물들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뒤에 그는 내게 자동 리볼버 총과 카트릿찌(탄약통)를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사람이 지난 밤 부다페스트로부터 돌아왔소. 나는 그가 우리가 떠맡은 일(암살)과 관련해 여행을 했으며 해외에 있는 어떤 집단과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소.”

재판은 전쟁의 와중에 벌어져서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으나 공판기록에 의하면 카브리노빅(Cabrinovic)은 시가노빅(Ciganovic)이 자신에게 대공 프란츠 훼르디난드에 대한 프리메이슨들의 제거결정이 1년 훨씬 전부터 내려졌음을 말했다고 진술했다. 황태자에게 치명적인 사격을 가한 프린시프(Princip)는 시가노빅(Ciganovic)과 암살수단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그 스스로 프리메이슨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곧 모 인사와 접촉하여 필요한 수단(무기)을 받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황태자를 메이슨 롯찌(Lodge)에서 죽일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상의 사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보다 더 자세한 내용들을 공표 했다. 그 중 1차 대전 당시 독일 군 총사령관이었던 루덴도르프(Ludendorff)의 말은 인물의 비중으로 인해 말에 무게를 더했다. 독일지역 그랜드 롯찌(Grand Lodge) 프리메이슨 코트너(Kothner)는 1911년 10월 28일 A.M 11시 15분, 프리메이슨 교단의 그랜드 마스터 도나 쉴로디엔(Dohna Schlodien) 백작과  베를린 에이제나셰(Eisenacher) 12번 가에 소재한 이 메이슨 교단의 <위대한 힘(Great Power)>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진술한 말에 의하면 그는 창가의 총안(銃眼:서양건축 인테리어 형식으로 창가를 나팔꽃 모양으로 안쪽을 넓고 바깥쪽은 좁게 하여 밖을 조망하기 좋게 한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솔직했고 잘 믿었기 때문에, 나는 해외의 다른 롯찌들에서 1911년 동안, 몇 가지 사항을 발견했는데, 그것들 때문에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우연히 프리메이슨 조직이 독일에 대해 아주 끔찍한 것을 준비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정황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우연히 어떤 경솔한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 대화는 세계전쟁의 불씨가 될 오스트리아 대공(황태자) 프란츠-훼르디난드를 암살하여 군주와 카톨릭 교단을 몰락시키려는 계획을 어렴풋이 감지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그 모든 것은 바로 그때부터 벌어졌다. 이 끔찍한 사실에 대해 유일한 능력가인 그랜드 마스터 도나 쉴로디엔(Dohna Schlodien) 백작에게 가서 내 귀로 분명히 듣고 내 눈으로 본 것을 말했다. 그러나 그는 듣는 것 같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모든 그랜드 롯찌와 로마의 몇 몇 롯찌와(이들 또한 독일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프리메이슨 단원 체인의 일부였다) 결정적인 불화로 몰고 갈 이 대화는 프리메이슨 조직은 오직 하나일 뿐이라는  그랜드 마스터의 단정적인 대답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랜드 마스터 묄렌도르프 박사 휘하에 있는 독일지방의 그랜드 롯찌는 이 대화의 승인을 철회하도록 코트너(Kothner) 씨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그의 역사적인 선언들은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세계범죄의 형세와 메이슨 조직의 상호관계를 보여준다. 메이슨 코트너(Kothner)는 1926년, 그랜드 마스터 묄렌도르프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특별히 주장한 상기(上記) 선언 만 제외하고는 실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철회했다. 그는 ‘그랜드 헝가리안 프리메이슨’들이 독일인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범죄행위를 집행한 것을 롯찌(Lodge)가 승인한 명백한 증거를 도나(Dohna) 백작에게 말해 주었다고 강조한다.  

   메이슨 도나(Dohna) 백작의 행위에 대해,  자신에게 전해진 정보를 날카롭게 추적한 그는 정부와 독일인에게 알려주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메이슨 코트너(Kothner)는 그의 공식적인 그랜드 마스터 도나(Dohna) 백작이 유태인 프리메이슨들을 보호했으며 자신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국제적인 연대에 의해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첨언한다. 메이슨 코트너(Kothner)는 또한 전쟁에서 죽은 이래, 자형인 콜러(Coler) 소령에게 이 말을 군 당국자에게 전해주는 임무를 맡긴 바 있다. 그것은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그밖에 체르닌(Czernin) 백작은 자신의 저서 「전쟁의 와중에서(In the World war)」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공(오스트리아 황태자)은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이 다가왔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이 있기 일년 전, 그는 내게 프리메이슨들이 자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내게 암살이 착수된 곳으로 알려지고 있는 마을까지 말해주었다. (그 뒤로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몇 몇 헝가리인과 오스트리아 정치인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들은 모두 사실이다. 이들 예언들은 사건이후 쓰여진 것으로 말해지고 있으며, 이들 증언들은 독일인들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아주 흥미로운 소식통으로 말해지고 있는데 루덴도르프(Ludendorff)는 고위직 신분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실을 말한 유일한 인물이 아니다. 독일인이 아닌 카브리노빅(Cabrinovic)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프리메이슨 조직이 죽여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사람들이 무어라 말하든 간에 아무도 1912년 9월 15일 빠리에서 기록된 다음의 짧은 문장을 지우지는 못 할 것이다. 『그는 비범한 인물이다. 그가 제거대상으로 결정된 것은 딱한 일이다. 그는 왕좌에 앉기 전 단계에서 죽을 것이다』”

1917년 4월 빠리에서 프리메이슨 조직 국제 대회가 열렸다. 토의 주제 중의 하나는 <평화의  기초가 윌리엄 2세와 챠알스 1세의 폐위가 전제되어야 하는 이래, 군주제도에 대항해 어떻게 강력한 운동을 독일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였다. 갑자기 모든 신문들이 모든 종류와 형태로 이러한 생각을 표현했다. 윌리엄 2세와 챠알스 1세가 폐위되기 전에 평화가 올 수는 없었다.

프리메이슨 윌슨(Wilson) 대통령은 참전 선언을 하면서  전쟁은 독일 국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독일 정부에 대한 것이라고 의회에 엄숙하게 알렸다. 이러한 모든 것은 1917년 5월 13일, 그랜드 마스터인 마가타스 리마(Magathas Lima)에 의해 리스본에서 열린 메이슨 회의에서 공식화된 지도방침과 일치한다.-<동맹국(독일에 대항해 싸운)의 승리는 메이슨 원리의 승리여야 한다>

메이슨 신문들은 수 차례에 걸쳐 전쟁은 메이슨적 이념의 승리를 목표로 해 치루는 메이슨 전쟁이라고 말했다. 프리메이슨紙 『위치틀(Wichtl)』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있다.

-이미 전쟁의 첫 주 동안 대단한 메이슨 회합이 미국에서 열려 영국과 영국의 동맹국들에게 현 전쟁을 지원할 모든 가능한  결정을 통과시켰다.(1917년 5월 601P)....프리메이슨 조직은 2백 만 명이 넘는 회원 수를 확보하고 있다. 모든 미국인 메이슨들은 공화국의 안전과 지속을 위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세계 전쟁은 독재정치에 대한 민주주의 투쟁이며, 세계의 미래는 독일의 카이저(Kaiser)가 알든 모르든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

이상의 『위치틀(Wichtl)』 인용문은 아마도 조심스럽게 용인된 작가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의 메이슨 권위자 A. 르베이(Lebey)가 빠리에서 말한 다음 글에 의해 충분히 확증된다.
-문제는 무엇이 옳고 좋은 신앙이며, 아니면 허위, 선 또는 악, 자유 또는 독재정치인가를 아는 것이다. 지금의 투쟁은 1789년(프랑스 혁명)에 시작된 투쟁의 연속이다. 두 개 원리 중의 하나는 반드시 승리하거나 소멸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의 삶 자체가 위기상황이다.

인류는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자유롭게 살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반대로 굴종하며 살 운명인가? 그것이 바로 대재앙이 우리에게 풀라고 선물한 딜레마인데, 모든 민주주의자들은 이미 이에 대해 답변한 바 있다. 오직 하나의 길이 있을 뿐 후퇴도 타협도 없다. 전쟁기간 동안 너무나 분명히 정의되고 명백했으므로 아무도 자신의 의무에 대해 주저할 수 없었다..

모국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공화국에게 넘겨주는 것이 될 것이다. 모국, 공화국, 혁명적 정신, 사회주의는 서로 용해될 수 없도록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민의 권리가 사람의 권리를 완성해야 하는 때이다. 전쟁의 심장부에서 실로 그것은 봉건적이며 살인적이고 불모의 전제정치인 죽은 이념에 대항해 항쟁하는 인류의 자유 연합의 살아있는 이념이다.-

종전을 향해 독일 내부의 혁명은 활발히 준비되고 있었다. 사회민주당 바테르(Vater)는 막데부르그(Magdeburg)에서 열린 근로자와 병사들의 평의회 모임에서 준비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연설을 했다.

-1918년 1월 25일 이래 우리는 혁명을 질서정연하게 준비해 왔다. 그것은 어려운 과제였으며 위험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오랜 세월 옥고를 치르는 것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사회민주당은 엄청난 스트라이크가 혁명을 가져다 주지 않음을 목도했으며 결말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노동이 열매를 맺게 해 주었다.  우리는 탈주자들을 맨 앞에 조직하여 그들에게 탈주를 부추기는 거짓 신문, 돈, 선전 전단을 제공했다. 우리는 모든 방면으로 대리인들을 보냈는데, 주로 병사들이 있는 일선에 보내어 군대를 해체하도록 했다. 그들은 병사들을 설득해 적을 향해 탈주하도록 했으며, 이 같은 방식으로 몰락이 야기되었으며 서서히 확실하게 끝이 왔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우익과 자유, 문명을 명분으로 불같은 전쟁 선포 아래 숨겨진 진짜 목표는 군주제도의 타도였으며, 카톨릭 권력의 분해와 혁명의 성공이었다. 이제 이러한 승리는 손에 들어온 듯이 보였고, 새삼 그것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고(故) 쿨리지(Coolidge) 미국 대통령은 1927년 6월 14일 해몬드(Hammond)에서 행한 연설에서 공식적으로 그것을 인정했다.

-이 무서운 갈등 속에서 문제가 되고있는 주요 질문은 장차 어떤 종류의 정부형태-전제주의 형태 혹은 공화국 형태-가 세계의 모든 나라들 사이에 우세하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승리는 최종적으로 국민의 편에 남아있다.(로이터통신, 1927년 6월 14일)-

프리메이슨이 근대사에 있어 인류에게 선사한 불멸의 선물은 그들이 세계지배화의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전제 군주화 내지 독재화된 카톨릭 국가 권력의 해체를 위해 우선 계몽주의 사상가를 동원해 자유, 평등, 박애를 기치로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공화국 체제를 선물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공화국 체제의 내부를 해부하면 중세 템플 기사단으로부터 발전시켜왔던 프리메이슨의 주특기 자본주의가 내장되어 있다. (이상 안원전의 21세기 담론)
*내가 세상을 비빔밥으로 만들리라.(해원이념에 의한 프리메이슨의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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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30 7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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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대학가에 민족혼의 바람이 불고있다 [3]

안원전
2003/12/25 8902
71
 <개천절 방북기>과연 檀君이 單君임을 확인한 행사 학술토론회, 북측 `대동강 문화` 강조 [1]

안원전
2003/10/11 5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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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입니다 (구) 홈페이지 소개글(기록용)

안원전
2003/08/04 4011
69
 민족사의 여명과 역사의 수난 - 송호수,두계학파와 실증사학 -신복룡

안원전
2003/05/14 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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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의 뿌리와 미래(가장 쉽게 정립된 기초 강의안이므로 먼저 읽고 시작할것!),동방 한민족의 대도 세계와 민족사를 공부하는 정신자세에 대하여 [2]

안원전
2003/01/23 8615
67
 민족사의 맥을 찾아서 (박성수 교수)

안원전
2003/01/23 8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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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메이슨 서양사3(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안원전
2002/07/12 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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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서희건)

안원전
2003/01/23 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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