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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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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시황 만리장성의 비밀& 고죽국 왕자 백이.숙제와 강태공의 만남



















중국의 자존심인 진시황 만리장성의 비밀을 벗긴다 (5부)
맹강녀 설화는 진시황 (만리)장성의 위치를 말해준다.
 

성훈 컬럼리스트





아래 글은 본 시리즈의 제 (5부)입니다.
(1부) 섬서성 서안 서쪽까지 점령한 단군조선
(2부)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도 단군조선의 제후국
(3부) 낚시로 천하를 낚은 강태공의 조상은 누구인가?
(4부) 강태공의 고향으로 본 단군조선의 강역은? 

(4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은 동이족인 강태공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강태공의 고향을 동해(東海)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중국 인터넷 백과사전의 자료에 따르면 강태공의 고향은 하남성 신향시 위휘현 서북 12Km에 있는 태공천진 여촌(太公泉镇 吕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주나라의 동쪽 경계는 당시 발해(渤海) 또는 동해(東海)라고 불렸던 대야택이다. 발해로 불린 대야택은 현 중국의 내해가 아니라 하남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있는 가로 100Km X 세로 300Km의 엄청난 크기의 내륙호수였다. 지금은 산동성 서쪽에 동평호, 독산호, 미산호, 남양호 등으로 나뉘어져 남아 있으나 예전에는 바다로 불렸던 큰 내륙호수였다. 사마천의 <사기> 기록으로 보면 당시 강태공의 고향인 하남성 위휘현까지 대야택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   황하 북부 하남성의 지명. 강태공의 고향인 신향시 위휘현은 위하 강변에 있다.  이곳에 맹강녀의 전설도 있다.  

진시황 때 쌓은 장성의 원래 위치는 어디인가? 

현 중국의 자랑이며 상징은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만리장성이 중국의 서쪽 감숙성에서 시작하여 중국의 수도인 북경 북쪽을 지나 동쪽으로 산해관에 이르는 것으로 진시황 때 쌓았다고 알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이러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산해관이 아니라 요녕성 단동 또는 한반도 북부 평안북도까지였다고 제멋대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주장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     중국 역사교과서에 나와있는 진시황의 장성은 한반도 평양까지 들어와 있다.  이 지도는 역사왜곡을 위해 확대.과장된 것으로 실제로는 이렇지 않다.












▲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사회과학원에서 만든 엉터리 역사지리도. 만리장성이 청천강까지 들어와 있다.

진시황은 북방 기마민족인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장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실제 진시황이 쌓은 장성은 지금의 위치가 아니고 산서성 최남부에서 시작하여 황하북부 하남성에 이르는 자그마한 장성이었는데 이것이 역사왜곡을 위해 확대 과장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중국의 주장은 진시황 때부터 고대 중국의 영토가 현 만리장성 안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엉터리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것임을 낱낱이 밝히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국 4대 민간전설의 하나로 유명한 맹강녀(孟姜女)의 유적이며, 고죽국의 왕자인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首陽山)인 것이다. 이번 (5부)에서는 맹강녀의 유적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강태공의 고향인 황하북부 하남성 신향시 위휘현에는 강태공의 유적 외에 또 하나의 유명한 유적이 있는데 바로 진시황 만리장성의 민간설화로 유명한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長城)이 그것이다. 중국은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위하여 원래 하남성 위휘현에 있어야 할 맹강녀의 사당을 지금은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에 세워 놓았는데, 산해관 장성이 진시황 때 쌓은 만리장성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역사왜곡을 자행하기 위함이었다. 
 












▲  북경대학교재에 나와있는 진나라 장성은 감숙성에 있다.  이 지도도 역사왜곡이 많이 되어있는 지도이다.












▲  섬서성 북단 유림시에 있는 진장성 유적. 이 유적은 진시황의 장성이 아니다.
중국의 장성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 때 쌓은 진장성(秦長城)은 주로 연나라 장성과 제나라 장성을 보수해서 연결한 것이라 한다. 그 제나라 장성을 보수하는 공사장에 맹강녀의 남편이 고향을 떠나 장성노역에 강제 동원된다. 공사장에 끌려간 남편으로부터 오랫동안 연락이 없자 맹강녀는 남편의 소식이 궁금하여 고향을 떠나 노역장을 직접 찾아가기로 한다.

아래는 맹강녕의 고향을 설명한 중국 인터넷 백과사전의 자료이다.
(원문) 孟姜女故里(맹강녀고향) : 孟家塬村是我国古代四大民间传说之一“孟姜女”的故里. (맹가원촌은 중국 고대 4대 민간전설인 맹강녀의 고향이다) 该村位于王益区黄堡古镇东2公里的塬顶,紧贴西-铜-黄一级公路,是祭拜黄帝陵的必经之地,东靠著名陶瓷古镇陈炉,南依药王故里及药王山,西望佛教胜地香山,北至唐避暑行宫和玄奘圆寂地玉华山,与脚下的耀州窑博物馆同处于西安旅游中心线的二环带上。该村人文底蕴丰厚,自然气候生态条件优越,“孟姜红”品牌的柿子,桃等品种已获得国家农产品金奖,并远销海外。

이러한 맹강녀의 고향은 섬서성 서안 북쪽에 있는 동천시 왕익구(銅川市 王益區)에 있는 맹가원촌으로 황제헌원의 묘가 있는 부근이다. 우선 현재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섬서성 서안 북쪽이 고향인 맹강녀의 남편이 수천 리 떨어진 멀고도 먼 하북성 동쪽 끝 진황도시 산해관장성의 노역에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섬서성에 사는 사람을 하북성 동쪽 끝 공사장에 동원할 정도로 하북성에는 사람이 전혀 안 살았다는 말인가? 즉 맹강녀의 전설은 진나라 장성의 공사장이 맹강녀의 고향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몇날 며칠을 걸어 장성 공사장에 도착한 맹강녀는 무너진 장성 안에서 죽어있는 남편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  맹강녀의 고향은 섬서성 서안 북쪽이다. 아떻게 저 멀리 산해관까지 남편이 노역에 동원될 수 있으며, 맹강녀가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저 멀리까지 혼자 찾아갈 수 있단 말인가?  맹강녀가 간 곳은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제나라 장성 보수 현장이다. 맹강녀는 여기서 진시황을 만났다.

어찌나 슬프고 크게 울었던지 마침 그곳을 지나던 진시황이 맹강녀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찾아와 달랜 후 남편의 장사를 성대히 치러준다. 그리고는 맹강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에게 청혼을 하나 맹강녀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진시황의 청혼을 거절하고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떨어져 죽었다고 하는데 그 맹강녀곡장성이 바로 강태공의 고향인 하남성 위휘현에 있다. 
 
그리고 그런 맹강녀의 이름을 딴 맹강녀하(孟姜女河)란 강이 위휘현 근처에 있다. 중국 인터넷 백과사전에 따르면, 맹강녀하는 하남성 신향시 서남에서 나와 동북쪽 위휘시에서 위하로 들어가는 강으로, 비올 때만 물이 흐르며 평시에는 형태만 있는 하천이다. <위휘부지>에 따르면, 맹강녀가 남편을 생각하며 통곡하는 전설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  남편의 시신을 보고는 통곡하는 맹강녀를 보고 첫 눈에 반한 진시황 . 이러한 일이 일어난 곳은 하북성 산해관이 아니라 하남성 위휘현이다.













▲  하남성 위휘현을 지나는 맹강녀하에 대한 중국 인터넷 백과사전의 설명.












▲  중국 지도에 있는 맹강녀하는 하남성 신향시 위휘현을 지나며 비올 때 심수와 위하를 연결하는 작은 하천이다.

맹강녀의 전설로 보더라도 제나라는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맹자가 말했듯이, 하나라 뒤의 은나라 주나라가 융성했을 때의 강역도 일천리가 넘지 않았다.(夏后殷周之盛地未過千里者也) ”고 했다. 당시 주나라의 도읍은 낙양이었다. 따라서 맹자의 말은 주나라의 영토가 하남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런 제나라가 지금의 산동성 임치에 도읍을 두었다는 것은 역사왜곡이 심해도 그렇지 유분수라 하겠다. 실제적으로 당시 주나라의 강역은 황하변의 하남성 일대 뿐이고 나머지 동서남북의 땅은 당시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의 천하통일도 알고 보면 중국 대륙 전체의 통일이 아니라 섬서성에서 출발하여 하남성을 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지명조작을 통한 역사왜곡은 그 도가 너무도 지나치다 하겠다. 오죽하면 중국의 한 역사교사가 "일본도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지만 중국만큼은 아니다. 중국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 중 진실은 5%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완전한 허구"라고 했겠는가! 

한국에서도 이러한 양심적인 역사교수나 교사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제는 일제의 식민사학을 계승한 대한민국 강단사학계가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고 오직 일제가 남기고 간 망국의 식민사학의 이론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대학교수랍시고 월급 받고 국가에서 연구비를 받고있다. 참으로 웃지못할 현실이라 하겠다.


다음 (6부)에서는 중국의 지명조작을 통한 역사왜곡의 실체를 밝혀준 “고죽국의 두 왕자 백이.숙제의 묘‘에 대해 언급하며, 진시황 때 쌓은 장성의 위치를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역사왜곡을 위해 조성한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에 있는 맹강녀의 사당입니다. 
 











▲   하북성 산해관 맹강녀 사당에 있는 망부석.  섬서성 서안에 사는 맹강녀가  여기까지 온 일도 없고 올 수도 없다.  












▲  하북성 동쪽 끝 진황도시 산해관에 있는 맹강녀의 사당. 












▲   하남성 위휘현에 있어야 하는 맹강녀곡장성이 하북성 산해관으로 이동되었다.  지명조작을 통한 역사왜곡인 것이다.












▲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에 있는 맹강녀 사당 표지판. 





















고죽국 왕자 백이.숙제와 강태공의 만남 (6부)
고죽국을 떠난 백이.숙제가 산 곳은 강태공의 고향인 동해
 

성훈 컬럼리스트





아래 글은 본 시리즈의 제 (6부)입니다.
(1부) 섬서성 서안 서쪽까지 점령한 단군조선
(2부)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도 단군조선의 제후국
(3부) 낚시로 천하를 낚은 강태공의 조상은 누구인가?
(4부) 강태공의 고향으로 본 단군조선의 강역은?
(5부) 진시황 만리장성의 비밀을 벗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는 만주와 한반도 일대로 국한된다고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교과서에 그렇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교과서의 이론은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허구의 반도사관의 엉터리 이론일 뿐으로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제의 식민사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온 재야사학도 학자에 따라 지금까지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토를 자신의 판단대로 임의로 비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재야사학의 이론과 역사교과서의 반도사관의 이론 공히 잘못된 이론이라는 사실이 얼마 전에 한 유적의 발견으로 명백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그 유적은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것으로 유명한 백이.숙제의 무덤이다.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백이.숙제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백이.숙제의 묘가 우리의 역사 강역을 밝히는데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은 아래에 나오는 백이.숙제의 역사이야기를 읽어보면 백이.숙제가 왜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백이.숙제가 역사적으로 왜 중요한가? 

백이.숙제는 사마천이 쓴 <사기 열전>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물론 시대적으로 앞서는 인물이라 그럴 수도 있으나, 열전에 가장 먼저 기술된 이유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상이 바로 백이.숙제와 같이 도덕적으로 깨끗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열전>에는 신라의 김유신장군이 맨 먼저 나오며 그 분량도 상.중.하로 가장 많다. 김유신이 열전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상이 바로 김유신장군과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백이.숙제의 기록으로부터 많은 역사적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일제가 지워버리고 말살한 옛 조선과 고구려의 영토가 어디까지였는지를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사서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영토가 어디였는지 이미 그 기록이 지워졌으나, 백이.숙제는 <사기 열전>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지라 그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그 백이.숙제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영광스러웠던 단군조선의 영토가 어디까지였는지를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이다.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국이 바로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남쪽지역이라는 사실과, 특히 중요한 것은 조선과의 경계선이었던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의 위치를 백이.숙제의 기록으로부터 추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  단군조선과 고구려의 영토가 어디까지였는지를 밝혀준 백이.숙제의 무덤.  진시황의 장성과도 관련이 있다.

백이.숙제는 누구인가?

백이.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 백이(伯夷)가 장남이고, 숙제(叔齊)가 셋째 아들이었다. 고죽국의 왕인 고죽군(孤竹君)은 셋째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아마 숙제가 왕의 재목(材木)으로 두뇌가 명석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고죽군이 세상을 떠나자 숙제는 “비록 부왕께서 저를 후사로 정하셨더라도 형님이 살아계시는데 제가 어찌 그 자리를 잇겠습니까? 형님께서 뒤를 이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맏형인 백이에게 양위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백이는 “네가 왕위를 잇는 것이 부왕의 뜻이다. 내가 이어받을 이유가 없다.”하고는 동생에게 더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고죽국을 떠나버렸다. 숙제도 끝까지 왕위에 오를 것을 거부하고는 떠나버렸다. 그래서 왕위는 둘째 아들에게 돌아갔다.

고국을 떠나 동해변에 살다 세월이 흘러 늙어버린 그들은 주(周)나라 서백 창(西伯昌)이 노인을 잘 대접한다는 말을 듣고 몸을 의탁하려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막상 주나라에 가보니 이미 서백은 죽었고 뒤를 이은 무왕(武王)이 서백을 문왕(文王)으로 추존하고는 그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殷)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동쪽으로 진군하려던 참이었다. 

두 사람은 무왕의 수레로 달려가 말고삐를 잡고 간언했다. “아비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터로 떠나시니 그것을 어찌 효(孝)라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신하의 몸으로 군주를 죽이려하니 그것을 어찌 인(仁)이라 하겠나이까?”이 말을 듣고 있던 무왕을 따르던 사람들이 그들의 목을 치려하자 곁에 있던 강태공이 “그들은 의인(義人)이니 살려주어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백이.숙제는 무사히 그 자리를 빠져나오게 되었다.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모두가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겼으나 오직 백이.숙제만이 무왕이 저지른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저버린 일을 용서하지 않았다. 주나라를 섬기는 것은 수치로다. 의(義)를 지키어 주나라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을 수는 없노라.” 이렇게 결심하고는 수양산(首陽山)에 숨어살며 고사리로 연명하며 살게 되었는데, 머지않아 그들은 기아에 굶주려 죽게 되었다. 그 때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우리는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로 연명했노라 (登彼西山兮 菜其薇矣)
       폭력으로 폭력을 대한 것을 무왕은 모른다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신농.순.우.성왕의 길을 잃은 (神農.虞.夏忽焉沒兮) 
       우린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我安適歸矣)
       아, 우리의 목숨은 이제 끝나가노라. (于嗟徂兮命之衰矣)

사마천은 사람으로써의 인(仁)과 의(義)를 지킨 백이.숙제가 굶어죽는 비극과 극악했던 도척이라는 자가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비교하며 “과연 천도(天道)란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고 자책하고 있다.













▲  천도와 인륜을 지키려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은 백이.숙제

 
 
이 대목에서 사마천이 쓴 <사기>의 기록의 잘못된 점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첫째. <사기>에는 문왕이 죽고 12년 되는 해에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러 문왕의 위패를 앞세워 군대를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잘못된 기록으로 본다. 왜냐하면 백이.숙제가 아비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터로 떠나는 무왕의 불효에 대해 비판한 대목이 있어 당시는 문왕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 은나라 주왕이 주지육림과 포락지형으로 민심을 크게 잃어 무왕이 군대를 일으킨 것으로 기록했는데, 백이.숙제가 말한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 주왕이 어느 정도 포악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임금을 시해하려는 주 무왕을 꾸짖는 것으로 보아 은 주왕의 주지육림과 포락지형은 후세의 역사가들에 의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백이.숙제는 강태공의 고향에서 살았다

백이.숙제가 무왕에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출병(出兵)의 부당함을 고할 때 무왕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려했으나 강태공이 죽이지 말라고 해서 백이.숙제는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런데 강태공은 백이.숙제가 의인(義人)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강태공이 백이.숙제와 같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4부)에서 언급했다시피 강태공의 고향은 동해(東海)로, 동해는 지금의 황해가 아니라 산동성과 하남성의 경계에 있는 내륙호수인 대야택(大野澤) 즉 발해(渤海)였다. 크기는 가로 100Km X 세로 300K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였다. 

강태공의 고향인 동해 근처에 백이.숙제도 살았던 것이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21세 소태단군 52년(B.C 1286) 고죽군(孤竹君)의 자손인 백이.숙제가 나라를 버리고 동해(東海)의 해변가에 살며 혼자 살아갔다.”라는 기록이 있어, 백이.숙제가 강태공의 고향 근처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백이.숙제와 강태공 여상은 모두 같은 동이족이었다. 따라서 강태공이 백이.숙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동해 = 발해는 하남성과 산동성의 경계에 있던 큰 내륙호수이다.


 
백이.숙제와 강태공의 차이점은?
백이.숙제는 무왕의 출병이 인륜을 저버린 일이라며 만류를 하다가 죽임을 당할 지경에 이르게 되고, 이를 본 강태공은 백이.숙제가 의로운 사람이니 살려주라고 해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 당시 강태공은 무왕의 출병을 기획하고 지휘한 총사령관이었기 때문에 백이.숙제의 말은 곧 강태공이 저지른 패륜을 꾸짖는 말이다.

그런데도 강태공은 “그들은 의인(義人)이니 살려주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강태공 자신도 무왕의 출병이 도덕적으로 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단 말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의롭지 않은 일을 나서서 한 것이고, 백이.숙제는 의롭지 않은 일은 아예 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너무도 원칙주의자인 백이.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게 되고,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강태공은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한 후 제나라의 제후로 봉해져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또한 강태공은 정치를 잘하여 제나라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켰고, 춘추.전국 시대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나라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결국 백이.숙제는 천륜과 인륜을 지킨 청절지사(淸節志士)로 이름을 남기게 되고, 강태공은 권모술수의 대가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백이.숙제는 비록 옳은 일을 하였으나 굶어죽는 것은 지나치다는 감이 들고, 강태공은 결과적으로 볼 때 나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강태공도 영어로 말하자면 Famous(유명한) 인물이지, Notorious(악명높은) 하지는 않았다. 당시 실제상황과 지금 남아있는 역사기록이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고죽국은 어떤 나라인가?

중국에서는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국을 은나라의 제후국으로 말하고 있으나, 고죽국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 그 근거로는 행촌 이암선생이 쓴 <단군세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22세 색불루단군 때인 B.C 1266년 람국(藍國)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孤竹君)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니 은나라 땅과 가까웠다. 이에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邠岐)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나라를 여(黎)라 칭하고 서융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황제의 교화가 멀리 항산(恒山) 이남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기록되어 있어 그 근거가 된다. 

또한 36세 매륵단군 때인 "B.C 653년 병력을 보내 수유(須臾)의 군대와 함께 연나라를 정벌하였다. 이를 연(燕)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알리니 제나라가 고죽(孤竹)에 쳐들어 왔는데 이기지 못하고 화해를 구걸하고는 물러갔다."는 기록이 있어 고죽국과 연.제나라는 매우 가깝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죽국은 단군조선의 남쪽에 있었던 것이다.

위 <단군세기>의 기록은 <사기>에도 같은 내용이 언급이 되어 있어 <단군세기>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제나라 환공 23년에 북방의 만족(蠻族)인 산융(山戎)이 연나라를 침공하게 되자 연나라는 곧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해 왔고 그것을 응낙한 환공은 연나라에 출병하여 멀리 만족을 고죽(孤竹) 땅까지 몰아내고는 군사를 돌렸다.” 여기서의 만족과 산융은 바로 단군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제나라 환공은 여러 나라들의 회맹(會盟)을 주도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남으로 소능(召陵)까지 원정하여 웅산(熊山)을 보았고, 북으로는 산융(山戎).이지(離枝).고죽(孤竹)까지 토벌했다. 서쪽으로는 대하(大夏)를 토벌코자 사막을 넘어간 일도 있었다.” 즉 제나라의 북쪽 경계가 고죽이란 말이다. 

제나라가 남쪽까지 원정한 소능은 지금의 하남성 정주 밑에 있는 탑하(漯河)시이며, 북쪽인 고죽은 지금의 산서성 남부 운성(運城)시의 서쪽인 영제(永濟)시이다. 따라서 제나라는 황하변 하남성 주변에 있던 나라였던 것이다. 이런 제나라가 산동성에 있었다는 중국의 주장은 명백한 역사왜곡인 것이다. 













▲   원래 하남성에 있었던, 제나라, 노나라, 연나라를 산동성과 북경 근처로 지명이동 시켰다.


다음 (7부)에서는 백이.숙제의 고죽국이 어디인지 그 위치가 밝혀집니다.





원본 기사 보기:hinew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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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운의 한국문화재 아직도 日에 6만점

안원전
2010/08/10 2208
297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안원전
2010/08/09 2615
296
 뉴라이트의 당당한 고백 "우리는 '친일파'다"!"

안원전
2010/07/12 2570
295
 미 하버드 대학 한국학 연구소 마크 바잉톤 박사-한국 고대사에 반해 역사 바로잡기

안원전
2010/07/01 2814
294
 가슴 뭉클한 대한민국의 비밀

안원전
2010/07/01 2446
293
 [Why] 일본이 필사적으로 반출 막으려한 '독도팻말'의 비밀

안원전
2010/07/01 2147
292
 日 정권 실세, 오자와 "천황가는 한국에서 왔다!"

안원전
2010/07/01 2434
291
 낚시로 천하를 낚은 강태공의 조상

안원전
2010/05/29 2936
290
 진시황은 지금의 만리장성을 쌓은 적이 없다

안원전
2010/06/21 2712

  진시황 만리장성의 비밀& 고죽국 왕자 백이.숙제와 강태공의 만남

안원전
2010/05/29 2755
288
 섬서성 서안 서쪽까지 점령한 단군조선1,2

안원전
2010/05/29 2704
287
 환단고기의 새로운 면모 <환단고기에 나오는 안파견의 비밀>

안원전
2010/05/18 2807
286
 이것이 일본의 실체 입니다

안원전
2010/05/11 2710
285
 "한국병합은 원천 무효" 최초 공동선언

안원전
2010/05/11 2389
284
 김구선생 홍익 대한민국의 꿈

안원전
2010/04/25 2145
283
 2 왜곡된 한민족사의 현주소와 이를 개혁하자고 절규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안원전
2010/04/22 2467
282
 왜곡된 한민족사의 현주소와 이를 개혁하자고 절규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안원전
2010/04/22 2591
281
 흔적 없는 안 의사...특별묘지의 이토

안원전
2010/04/05 2459
280
  (존주양이/尊周攘夷) 공자는 동이(東夷)의 역사를 말살한 장본인(coo2.net)

안원전
2010/04/04 2746
279
 ‘약탈’한 사료 포함 한국 관련 639종 4678책 보관

안원전
2010/03/24 2685
278
 한국이 과연 동아시아를 바꿀까

안원전
2009/12/24 3135
277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주원장이 고려사람인가요 ?

안원전
2009/11/10 3843
276
 화백제도(和白制度)는 신라시대에 시작된 제도가 아니다

안원전
2009/11/04 3504
275
 유럽대륙의 훈족은 고구려인이었다 [1]

안원전
2009/11/04 3529
274
 한단고기에 대한 위서 시비-위서 아니다(박현)

안원전
2009/11/04 3198
273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운행(運行) (System)을 관장하는 것이 금척(金尺) [7]

안원전
2009/10/21 3409
272
  (가보고 싶은 곳) 강서성 마고산!

안원전
2009/10/21 3248
271
 광동성(廣東省)에는 3세 가륵 단군의 현손 번우씨가 세운 번우국(番禺國)이 현존

안원전
2009/10/21 2796
270
 원주민 학살과 기독교

안원전
2009/10/12 2575
269
 ‘간도반환소송’ 통일정부대표 국제사법재판소 정식접수

안원전
2009/09/03 2679
268
 (자료공개) "극동 猶태자치공화국" 정신 바짝 차리세요!(송준희Coo2.net) [1]

안원전
2009/08/30 2760
267
  이병도 및 자칭 사학 전문가들의 망론광설(亡論狂說) 203가지(Coo2.net 송준희) [9]

안원전
2009/08/30 2620
266
  [인터뷰] <천년의 금서> 가지고 돌아온 김진명 "대한민국 국호의 비밀, <시경> 속에 있다"

안원전
2009/06/16 4091
265
 신라황제릉은 중국 섬서성에 즐비하다&돈황벽화에 나오는 고구려성, 봉황산

안원전
2009/07/24 3686
264
 친일인사 4776명 공개…안익태·최승희 포함&김구와 임시정부 계열이 지목한 숙청대상 친일인사 명단

안원전
2009/06/11 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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