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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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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서성 서안 서쪽까지 점령한 단군조선1,2



















섬서성 서안 서쪽까지 점령한 단군조선 (1부)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이 산서성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기록
 

성훈 컬럼리스트





본 시리즈는 몇 부에 걸쳐 연재됩니다.

B.C 1,100년 경 은나라 말기에는 고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지형(炮烙之刑)으로 유명한 은나라 마지막 주(紂)왕과 은나라의 제후였던 주나라 문왕(西伯昌)과 무왕(武王)이 등장하며, 그 유명한 기자(箕子)와 백이.숙제(伯夷.叔齊) 그리고 낚시로 천하를 낚은 강태공(姜太公)이 등장한다.

필자가 이들의 역사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당시 하남성에 있었던 은나라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단군조선의 강역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3,100년 전 당시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은나라 건국에 관련된 단군조선 

먼저 은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한다. 중국은 삼황오제의 시대를 지나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가 들어서고, 4백 수십 년이 훨씬 지나 하나라 다음에 은(殷)나라가 들어선다. 이 은나라 역시 삼황오제와 하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동족(同族)인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였다. 

중국 사학자들의 공동 저서인 ‘고사변’에 따르면 “현조(玄鳥)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족의 조상신이다. 동이와 은나라 사람은 같은 종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 제준, 소호, 제곡, 제순(순임금) 그리고 설(은나라 조상) 등이 동이족과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 사람들이 명확히 증명하는 바이다.”라고 말하고 있어 은나라는 우리와 동족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현조는 검은 새로 은나라 조상인 설(契)의 탄생난생신화(誕生卵生神話)에 나오는 새이다.

이런 은나라의 건국에는 단군조선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13세 흘달단군 갑오 16년(B.C 1767년) 겨울 은나라가 하나라를 정벌하니 하의 걸왕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단제께서 명하여 구한(九桓)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 하니 은나라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걸왕이 조약을 위배하고 길을 막자 은나라와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견(畎)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낙랑과 합쳐 진격하여 관중(關中-섬서성)의 빈.기(邠.岐)의 땅에 웅거하며 관청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라가 망하고 은나라가 들어설 때의 일인데, 은나라가 하나라를 쳤으나 조선이 하나라를 도우니 은나라가 사죄하고 돌아갔고, 하나라 왕이 약속을 어기자 이번에는 조선이 은나라와 함께 하나라를 정벌하였다는 기록이다. 즉 하나라와 은나라의 운명은 단군조선의 손에 달려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섬서성 빈.기의 땅에 관청을 설치했다 하는데 빈.기는 섬서성 서안 서쪽을 말함이다.
 












▲   고대 중국지도에서의 빈과 기. 섬서성 서안 서쪽의 고대 지명이다.

이 기록은 <단군세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도 그 관련 기록이 있다. 한나라 때 유향이 쓴 <설원(設苑)> 권모(權謀)편에 같은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번역) 성탕이 걸왕을 치려 하자 이윤이 말하길 “청컨대 걸왕에게 바치는 공물을 막고 그의 행동을 살펴보십시오.” 그러자 걸왕이 노하여 구이(九夷)의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이윤이 말하길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아직도 능히 구이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이에 성탕은 사죄하고 다시 공물을 바쳤다.
(원문: 湯欲伐傑 伊尹曰 請阻乏貢職 以觀其動 傑怒起九黎之師以伐之 伊尹曰 未可彼尙猶能起九黎之師 是罪在我也 湯乃謝罪請服 復入貢職)  

이듬해에 탕왕이 다시 공물을 끊어버리자 걸왕이 노하여 다시 구이의 군사를 움직이려 하였다. 그러나 구이의 군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윤이 말하기를 “됐습니다.” 탕왕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잔당을 징벌하니 걸왕은 남소씨의 땅으로 도망하였다.
(明年又不供貢職 傑怒起九黎之師 九黎之師不起 伊尹曰可矣 湯乃興師伐而殘之 遷傑南巢氏焉)


이 외에도 <후한서> 동이(東夷)전과 서강(西羌)전에도 같은 내용이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
(동이전) “걸왕이 포악하고 잔인하자 여러 동이들이 쳐들어왔다.(傑爲暴虐 諸夷來侵)”
(서강전) “걸왕이 어지럽자 견이가 빈(邠).기(岐) 사이에 들어와 점거하였다. (傑之亂 畎夷入居邠岐之間)”

위 <단군세기>의 기록과 중국 사서의 기록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위 중국 기록에서의 구이(九黎)와 견이(畎夷)는 단군조선임을 알 수 있다. 하나라가 멸망한 것도, 은나라가 일어난 것도 모두 단군조선의 강력한 힘이 작용했다는 기록이다.

이렇게 탕왕(湯王)에 의해 세워진 은나라는 17세 30명의 왕에 의해 통치되었다. 은나라의 통치기간에 대해 중국 기록인 <죽서기년>에는 은나라가 496년간 다스렸다고 하고, <삼통력>에는 629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단군세기>의 기록으로 볼 때는 <삼통력>의 기록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  북경대 역사교재에 나와 있는 하대형세도에 하나라는 하남성 일대에만 있고 서안 바로 서쪽에 견이가 그려져 있다.

 
은나라와 단군조선의 갈등 

은나라는 단군조선 덕택에 나라를 세우고는 조선에게 계속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곤 했다. 그러다가 약 470년 후에 아래와 같이 단군조선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참고로 고등(高登)이란 사람은 쿠데타를 일으켜 단군조선의 22세 단군이 되는 색불루의 조부이다.

<단군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21세 소태단군 47년(B.C 1291년) 은나라 왕 무정(22대)이 귀방(鬼方)을 쳐 이기더니 대군을 이끌고 색도(索度), 영지(令支)등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
B.C 1289년 개사원의 욕살 고등(高登)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습격하여 이를 멸망시키니 일군국과 양운국의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러한 귀방이 어디인지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찾아보기로 하겠다. 참고로 귀방은 은허(殷墟)에서 발견된 갑골문자에도 나와 <단군세기>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 기록인지를 입증하고 있다. 

鬼方(귀방) : 古远方国,《易既济》“高宗伐鬼方,三年春之,”其说有五,
1)谓即西戎,《后汉书章帝纪》克伐鬼方,开通西域,《西羌传》武丁征西戎鬼方,三年乃克,《文选赵充国颂李善注》“鬼方,于汉则先零戎也,”世本注同,案当在今青海境,
(서융으로 “<서강전>에 무정이 서융귀방을 정벌했다” 지금의 청해와의 경계이다)

2)谓即周荆楚之地,〈惠栋九经古义〉汲郡古文云,武丁三十二年,伐鬼方,次于荆,三十四年,王师克鬼方,氐羌来宾,商颂殷武云,挞彼殷武,奋伐荆楚,疑周之荆楚,商时谓之鬼方,古文所谓次于荆者,盖鬼方之地也, (주나라 형초의 땅)

3)谓即今贵州,《清一统志》贵州,商周为鬼方地,(지금의 귀주)

4)《丙子学易篇》“苍颉篇云,鬼,远也,又云鬼方言其幽昧也,”此不以地实之,惠栋斥为臆说, (유매의 땅)

5)近人王国维谓鬼方即狄人,殷周时据陕西西北一带,古之獯鬻,汉之匈奴,皆其同种,春秋时狄人隗姓,隗即鬼也(즉 적인으로 은.주 때 섬서성 서북일대)

여기서의 귀방은 1)번과 5)번으로 거의 같은 지역이다. 즉 단군조선이 하나라가 망할 때 점령해서 관청까지 설치했던 빈(邠).기(岐)와 가까운 곳이다. 필자는 이 지역을 계속 단군조선의 점령지로 보는 이유는 은나라의 도읍은 하남성에 있었기 때문에 아마 섬서성 서쪽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맹자가 이야기했다. “하나라 뒤의 은나라 주나라가 융성했을 때의 강역도 일천리가 넘지 않았다. (夏后殷周之盛地未過千里者也)”

또 은나라 왕 무정이 공격했다가 단군조선에게 대패한 영지(令支)에 있던 나라는 바로 고죽국(孤竹國)이었다. 중국에서는 고죽국을 은나라의 제후국으로 보고 있으나, 고죽국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임이 증명되는 기록이라 하겠다. 은나라가 자기네 제후를 침공하는데 단군조선이 공격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고죽국이 있던 지역이 바로 후에 유주(幽州)의 요서군(遼西郡)이 되는 곳이다. 그 문헌적인 근거가 아래에 인용한 <한서지리지>이다. 이 요서군의 위치는 고죽국의 왕자인 백이.숙제의 묘가 산서성 남부 황하 굴곡 지점에서 발견됨으로서 분명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영지에 고죽성이 있다)。莽曰令고 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유수)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   백이.숙제는 고죽국의 왕자로 고향인 수양산에 와서 굶어 죽었다. 백이.숙제의 묘가 황하 굴곡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  이곳이 바로 요서군의 땅이라고 밝혀주는 백이.숙제의 묘가 일년 반 전에 발견되었다.


이어서 단군조선이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했던 때인 23세 색불루단군 때의 <단군세기> 기록이다.
“B.C 1285년 은나라 서울을 격파하고 곧 화친했다가 또 싸워 이를 쳐부수었다. 이듬해 2월 이들을 추격하여 황하 주변에서 승전의 축하를 받고 변한(弁韓)의 백성들을 회.대(淮岱)지방으로 옮겨 살게 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쳐졌다.

B.C 1266년 람국(藍國)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孤竹君)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니 은나라 땅과 가까웠다.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邠.岐)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나라를 여(黎)라 칭하고 서융(西戎)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황제의 교화가 멀리 항산(恒山) 이남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당시 은나라의 도읍은 황하북부 하남성이며, 고죽군(孤竹君)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고죽국의 왕으로 뒤에 나올 백이.숙제의 아버지이다. 단군조선은 다시 빈.기를 점령하고는 여(黎)라는 나라까지 세운다. 여는 구리(九黎)와 연관된 말로 단군조선을 의미하며, 여파달이라는 장수의 성이기도 하다. 

<단군세기>의 이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에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당시 빈 땅에) 고공단부(古公亶父)가 살고 있었는데, 훈육(熏育)과 융적(戎狄)이 공격해 와 그에게 재물과 땅을 요구한 뒤 땅과 백성들을 차지하려 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융적에 맞서 싸우고자 하였으나 고공단부는 백성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 하고는 기산(岐山) 기슭으로 옮겨가자 백성들 역시 그를 따라 기산으로 모여들었다.”

고공단부가 옮겨간 기산이 섬서성 서안 서쪽 감숙성과 가까이 있는 바로 기(岐) 땅이다. 이러한 고공단부의 손자 중에 창(昌)이라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데, 은나라 말기에 서쪽 제후로 봉해졌다 하여 서백창(西伯昌)이라고 하며, 나중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되고 강태공(姜太公)을 발탁한 인물이기도 하다.  













▲   조선이 섬서성 서안 서쪽인 빈.기를 점령한 것은 조선의 핵심 강역이 산서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안 서쪽의 피라미드는 누가 만든 것인가?

섬서성 서안 서쪽에서 엄청나게 큰 피라미드가 많이 발견되었다. 발굴 작업을 하던 중국 당국은 이 유적에서 동이족의 유물들이 튀어나오자 급히 발굴을 중단했다. 그리고는 발굴 작업을 했던 인부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게다가 피라미드를 흙으로 덮고 나무를 심어 위장을 해 인공위성에서 볼 수 없도록 했다. 중국 정부는 왜 그랬을까?

중국 고대역사의 심장이라는 서안의 서쪽에서 동이족의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중국의 자존심이 구겨지고 또한 고대 중국의 영토는 옛날부터 만리장성 안쪽이라는 엉터리 거짓말이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섬서성 서안 서쪽 피라미드의 주인은 바로 단군조선이었던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고조선의 영토로 보는 식민사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사실들이 마치 기록이 잘못된 허구의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핵심 강역을 산서성에 놓고 보면 단군조선의 서안 서쪽 점령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님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아~! 단군조선은 실로 엄청나게 크고 위대했던 나라였던 것이다. 이런 나라를 이천년 넘게 다스린 47분의 단군을 곰의 신화로 만든 식민사학자들에게는 천벌이 내려야 할 것이다. 













▲  섬서성 서안 근처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아래 사진과 같이 중국정부에서 나무를 심어 철저히 위장되고 있다.
 











▲  길림성 집안에 있는 피라미드들.  피라미드는 원형이 고인돌로 단군조선/고구려의 전통 무덤 형태이다.


곧 이어서 (2부) ‘낚시로 천하를 낚은 강태공의 조상은?’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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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나라를 멸한 주나라도 단군조선의 제후국 (2부)
주나라를 세운 문왕은 서이족으로 단군조선의 신하
 

성훈 컬럼리스트





본 글은 아래와 같은 시리즈의 제 (2부)입니다.
(1부) 섬서성 서안 서쪽까지 점령한 단군조선
(2부)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도 단군조선의 제후국 


단군조선에 의해 초토화되는 은나라 

은나라 27대 무을왕 때 단군조선은 은나라를 초토화시킨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23세 아흘단군 2년(B.C 1236년) 람국(藍國), 청구(靑邱), 구려(句麗)의 왕들이 회합하여 몽고리의 병력과 합쳐 은나라의 성책을 부수고 깊숙이 오지로 들어가 회.대(淮岱)의 땅을 평정하고 엄(淹),서(徐),회(淮) 땅에 제후로 봉하니 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위세를 우러러보며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의 회.대(淮岱)의 땅은 황하와 회수 상류 사이의 하남성을 의미하며, 중국에서는 엄(淹)을 강소성 상주시로 말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엄은 노나라와 관련 있으므로 하남성 어딘가로 보아야 할 것이며, 서(徐)는 안휘성과 하남성의 경계인 서주이며, 회(淮)는 회수 상류의 하남성/안휘성 일대로 보인다. 즉 회수 이북의 하남성과 안휘성 일대를 정벌한 것으로 보인다. 은나라는 단군조선에 의해 거의 멸망 직전이었다.

이러한 <단군세기>의 기록은 중국의 <후한서>에도 거의 같은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서강전> “은 왕실이 쇠미해지자 여러 동이가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殷室中衰諸夷皆叛)”
<동이전> “은나라 무을이 약해지고 낡아지자 동이가 점차 강성해져 마침내 회대 땅으로 나누어 옮겨와 점차 중토에 머무르게 되었다.(武乙衰弊 東夷寢盛 遂分遷淮岱 漸居中土)”
(후한서> “무을이 포악하니 견융이 변방을 침략하였다. (武乙暴虐 犬戎寇邊)”

또한 사마천은 <사기>에서 “은나라 27대 무을은 황음무도한 짓을 좋아해 천신(天神)을 모독하고 농락하는 것을 즐기며 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황하와 위수로 사냥을 나갔다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시 사마천은 춘추필법의 대가답게 매우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천신은 단군조선이며 벼락에 맞아 죽은 것은 조선과 전쟁 중 전사한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회.대의 땅과 엄,서.회 땅은 황하 남부 하남성을 의미한다.  하남성 상구시 밑 안휘성의 북부가 사(徐) 땅이고, 회 땅은 회수 상류 주변이다.



은나라 30대 마지막 주왕 

은나라의 마지막 주왕은 하나라 걸왕과 더불어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는 ‘資辯捷疾 聞見甚敏(자변첩질 문견심민)’이라 표현했는데, 주왕은 자질과 말솜씨가 뛰어났으며 두뇌가 명석하여 모든 일을 보거나 듣고 그 진상을 꿰뚫어 보는 눈이 날카로웠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재능을 덕을 쌓는데 쓰지 않고 나쁜 쪽으로 쓴 것이 문제였다.

그는 주색에 대해서도 몹시 호탕하여 달기(妲己)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져 결국은 나라를 망치게 된다. 어느 날 달기가 주왕에게 말한다. “대왕마마 환락의 극치가 어떤 것인지 한번 끝까지 보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시어 제왕으로서 후회 없는 삶을 누리소서.” 그러자 주왕은 달기를 위해 환락의 극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침내 주지육림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지육림이란 글자 그대로 연못의 물을 퍼내고는 술을 가득 채우고, 안주로는 주위의 나뭇가지에 고기를 걸어놓았다. 그리고는 벌거벗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뒤엉켜 술과 안주를 마음껏 먹어가며 비명과 환성을 지르며 온갖 망측한 놀이를 즐기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주왕과 달기는 희열을 느꼈던 것이다. 
 












▲  중국에서 2004년 주지육림의 현장으로 발표한 연못. 황하 북부 하남성 은허 주변에 있다.


그리고는 포락지형(炮烙之刑)이 실시되었다. 포락의 형이란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 숯불을 피워놓고 구리 기둥 위로 죄인들을 걸어가게 하는 형벌이었다. 무사히 기둥을 건너는 자에게는 죄를 면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으나 모두 불구덩이 속으로 빠지고 만다. 죄수들이 불속에서 타 죽으면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달기는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은 왕조의 충신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을 올렸으나 주왕은 묵살한다. 주왕의 작은아버지인 비간이 목숨을 걸고 사흘에 걸쳐 간언을 올리니 주왕은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비간의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지 보자”하며 비간의 심장을 갈갈이 찢어버렸다.

이밖에도 임신한 여자의 자궁을 갈라 그 속에 무엇이 있나 보려한 일도 있고, 기수(淇水)라는 강에서 어떤 노인이 강을 못 건너자 주왕이 이유를 물었다. “뼈 속에 골이 비어 다리가 시려 목 건너고 있습니다.”하자 노인의 종아리를 잘라 그 골이 어떤지를 봤다고 한다. 여기서의 기수는 황하 북부 하남성 동쪽 학벽시를 흐르는 강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왕의 포악함은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이유는 주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려고 출전했을 때 백이.숙제가 주 무왕의 말고삐를 잡으며 간하는 말과 그 후의 행동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다가, 기자(箕子)까지 인륜을 저버린 주나라를 떠나 조선으로 정치 망명을 한 것을 보면 역사에 기록된 것은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어찌하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것을....
근세조선 연산군도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되었을 때 역사 기록은 연산군의 악행만 과장한 면이 있지 않았던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은나라는 이미 이전에 단군조선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유린되었기에 어차피 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은나라 멸망의 원인을 주왕의 방탕과 폭정 때문이라고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  포락지형을 당하고 있는 통돼지. 포락지형이란 사람을 이렇게 태워 죽인 형벌이다.


 
은나라의 왕족이었던 기자(箕子)

기자는 주왕의 작은 아버지였다. 기자는 주왕의 방탕과 포악함에 대해 여러 번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은 차라리 나라를 떠나라고 권하나 기자는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라를 떠나버리면 신하로써 군주의 부끄러움을 천하에 알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일도 된다. 나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결국 기자가 선택한 길은 미친 사람의 옷차림을 하고 노예의 신분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은둔 생활을 하며 거문고를 뜯으며 슬픔을 달랬다. 후세 사람들은 이 가락을 기자조(箕子操)라고 불렀다. 은 주왕은 작은아버지인 기자를 옥에 가두어 버린다. 


주나라 문왕(서백 희창)은 동이족이다.

당시 은나라의 제후 중에 주(周)나라의 서백 희창(西伯 姬昌)이라고 있었는데 나중에 문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서백 창은 주왕의 포악함을 탄식하다가 숭후호(崇侯虎)에게 밀고당하여 옥에 갇히고 포락지형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서백은 주왕에게 낙서(洛西)의 땅을 바치겠다는 조건으로 풀려나 주나라로 돌아온다. 

참고로 서백은 서쪽의 제후(佰)란 뜻이고, 서백의 성은 희(姬)이고 이름이 창(昌)이다. 그리고 낙서는 낙양을 흐르는 낙수(落水) 서쪽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명군으로 세상에 덕망이 높던 서백 창의 주나라는 당시 섬서성 서안 서쪽에 있는 기산(岐山)에 도읍을 두고 있었다. <사기>에 따르면, 그는 주나라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서쪽에 있는 견융(犬戎)과 밀수국(密須國)과 기국(耆國)을 정벌하고, 동쪽의 한(邗)과 숭국(崇國)을 정벌하고는 도읍을 풍읍(서안 부근)으로 옮겼다.













▲  섬서성 서안 서쪽 기산에 있는 주공(周公) 사당 


 
참고로 서백에게 정벌당한 숭국의 왕은 서백을 밀고한 숭후호였다. 여기서의 기국(耆國)은 바로 약 100여 년 전에 단군조선이 세운 여국(黎國)이다. 기국 = 여국이라는 것은 <사기 주본기 정의>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1부)에서 인용한 <단군세기>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인용하기로 한다.

(인용) “23대 색불루단군 B.C 1266년 람국(藍國)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孤竹君)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니 은나라 땅과 가까웠다.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기(邠.岐)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나라를 여(黎)라 칭하고 서융(西戎)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황제의 교화가 멀리 항산(恒山) 이남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끝)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사마천의 기록이 뭔가를 숨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서백창이 주나라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서쪽에 있는 견융(犬戎)과 밀수국(密須國)과 기국(耆國)을 정벌했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고 서백창은 바로 서이(西夷=西戎=犬夷=畎夷) 그 자체로 당시 서안 서쪽의 기산에 있던 단군조선의 신하 즉 동이족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기록의 근거로는 맹자가 “주나라 문왕은 기주에서 태어나 필영에서 죽었는데, 그는 서이(西夷) 사람이었다.(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也)”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1부)에서 언급한 <사기>의 기록인 “(당시 빈 땅에) 고공단부(古公亶父)가 살고 있었는데, 훈육(熏育)과 융적(戎狄)이 공격해 와 그에게 재물과 땅을 요구한 뒤 땅과 백성들을 차지하려 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융적에 맞서 싸우고자 하였으나 고공단부는 백성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 하고는 기산(岐山) 기슭으로 옮겨가자 백성들 역시 그를 따라 기산으로 모여들었다.”는 것은 사마천의 곡필이 아니가 한다. 
 












▲   기산은 섬서성 서쪽에 있다. 이곳까지 단군조선이 점령했었다.


즉 고공단부가 빈.기(섬서성 서안 서쪽)를 침범한 융적을 피해 기산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고공단부 자체가 융적 즉 서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격파하고 나라를 세운 것 역시 자체적인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대국이었던 단군조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경>과 <사기>에서 주 무왕을 지원한 우방들이 참전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후한서>는 만이(蠻夷).융적(戎狄)이라 하여 역시 단군조선이 협조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고대신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사해(四海)의 네 해신(海神)과 하백(河伯), 그리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이다. 수신 하백의 이름은 풍이(馮夷)이고, 우사의 이름은 영(詠)이며, 풍백의 이름은 이(姨)라 한다.”

여기서의 풍백과 우사는 배달국과 조선에 있던 관직이며, 나머지도 모두 동이족을 가르치는 말이다. 주 무왕 자신도 동이족이고, 그들을 도운 나라도 동이족이고, 게다가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은 바로 동이족인 강태공인 것이다. 따라서 주나라는 동이족의 나라로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나 다름없는 나라였던 것이다. 실제 <단군세기>의 기록에도 주나라는 조선에게 공물을 바치고 조선과 전쟁한 기록이 없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  중국 역사지도책에 나와있는 주나라는 중국 대륙 전체이다. 그러나 맹자가 말했다. "하나라 뒤의 은나라 주나라가 강성할 때도 영토도 일천리를 넘지 않았다."  이게 일천 리를 넘지 않은 것인가?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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