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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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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heramia.net
Subject  
   프리메이슨 서양사 10 (안원전의21세기 담론중)

템플기사단 상징 로고

템플 기사단은 중세 유럽의 금융 대출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다. 오늘날 프리메이슨 조직이 전 세계의 금융, 언론, 통신사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뿌리와 무관하지 않다.  템플 기사단의 재산은 현대 은행업무의 기초가 되어 재산을 불린 것으로 종내는 유럽의 왕실들도 대출 받아 사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여행이 어렵고 위험하던 그 시절, 가령 암호화된 예금전표를 사용해 타 지점에서 저리의 지방통화로 재 인출해 쓸 수 있는 안전한 시스템은 일반인으로부터 아주 좋은 호응을 얻었다. 여기에서 축적된 황금은 유럽 전역의 보다 크고 유명한 도시의 템플라(Templar) 영지에 꾸준히 재분배되었다.
따라서 필립이 압수한 재산은 템플 기사단 재산의 일부(프랑스)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들과 중세 군주들이 현금을 취급하는 방식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가령 영국을 예로 들면, 모든 세금은 지방 영주의 세입과 함께 최종적으로 왕을 위해 거두어졌다. 그러므로 지방 수령과 법 집행관에게 납부하던 돈의 몫이 교대로 왕실 쪽으로 납부되었다.



유명 프리메이슨:자동차 왕 헨리포드&벤자민 후랭클린&2차대전 영웅 죠지마샬장군&우주 비행사 앨드린 야구선수

돈 많은 부자 영주들이 자신이 특별보호 하는 대가로 거두어들이는 세입에 대해 중세 왕은 많은 돈이 축적되어 있을 경우에 한해 그 돈을  매우 신속히 사용했다. 그럴 경우 필경 그 돈은 수많은 견고한 박스에 채워져 왕실이 있는 성 같이 지키기 좋은 곳에 운반, 보관되어 있다가 사용되었을 것이다. 중세의 왕들은 강력했으나 그렇다고 그들이 반드시 잘 교육되어 있지는 않았다. 빠리에 둥지 튼 템플라(Templar)의 풍요로움을 눈 여겨 본 프랑스의 필립 4세 같은 왕도 그들 영지에 있는 건물내부 어딘가에 엄청난 양의 보물 이 있을 거라 추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황당한 추정에 불과했다. 다음과 같은 현대의 다국적 회사의 예는 그가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주식시장에서 수십 억 달러를 주무르는 다국적 회사의 경우, 최고로 값비싸게 치장한 초 호화판 회의실 벽 줄줄이에 비록 당대의 대 화가들의 값진 명화로 치장했다해도 그것은 엄청난 보물창고라기보다는 실상은 종이 몇 조각으로 치장해 놓은 회의실 이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템플라(Templar)들이 축적한 보물은 분명히 믿지 못할 만큼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어지러운 패권시대에 그러한 엄청난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 정치적인 자살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다. 따라서 템플라(Templar)의 많은 재산은 그같이 한 곳에 고정된 것이 결코 아니라, 당시 꾸준히 유럽 전역을 유동적으로 돌고 있었으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용되고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인 금융서비스를 더욱 정교하게 제공하고, 비즈니스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그 엄청난 재산을 모두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템플라(Templar)들은 거의 모든 서유럽 곳곳에 방대한 영지를 소유했으며 그곳으로부터 거두어 들여 모은 세입은 더 큰 파이낸스(공적재정)가 되어 효율성이 높은 투기(벤쳐) 산업에 투자되었다. 자금을 주무르는 책임자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희생하는 기사단원인지라 그 효율성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비록 일부 템플기사단의 주력 멤버들을 살려내는 구명대로 계산되어 주장된 감도 없지 않은 템플라(Templar)의 그 "엄청난 보물"은 막상 필립 4세는 물론 그를 제외한 그 누구도 발견한 바 없다. 그 보물을 담보로 그랜드 마스터 "자끄 드 몰라이"는 자신의 형제단원들과 휘하 가족들을 돌 볼 수 있었을 것이며, 그는 확실히 동산과 보물, 각종 값비싼 물건의 형태로 프랑스 왕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몰래 재산을 빼돌려 안전하게 지켜야 했던 것이다.      
  불행히도 템플라(Templar)의 엄청난 재산 가령, 방대한 농장 같은 부동산 류는 "하스퍼털러 기사단(The Hospitallers)"이라든가 그밖에 포루투갈의 "그리스도 기사단(Knights of Christ)" 및 아비뇽 교황청의 관할에 속했던 당시 서구유럽의 모든 카톨릭 군주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겼다.



유명 프리메이슨:George M. Pullman(1831-1897) cabinet maker,  sleeper car제작,  In 1867, 슬리퍼차 제작하는 Pullman 궁전차 회사 설립, Chicago의 일부인 Pullman 산업도시 개발& 코메디황제Richard B. "Red" Skelton(1913-1997)&Paul Whiteman(1890-1967) 밴드리더 재즈왕 & Denton True "Cy" Young(1867-1955) 미국 메이져리그 야구 피쳐선수로 22년간 511 게임 승리.  유명한 "Cy" Young 상은 그를 기리는 것.


템플라(Templar)들의 보물은 아주 다양한 형태여서 태양아래 빛을 발하는 금, 은 등의 보물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항해가였으며, 최상의 유능한 자본가였고,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건축업자인 동시에, 당대에 가장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학자들이었다.  1307년에 자끄 드 몰라이가 지키려 염원했던 보물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프랑스 템플라(Templar)의 5분의4가 어떻게 해서라도 밀항해 빠져나가려 했거나 또는 그렇지 않으면 필립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피한 이유중의 바로 하나이다.
마침내, 템플라(Templar)들의 많은 전문적 기술이 씨를 뿌리기 시작했으며, 신대륙을 발견할 지도들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항해에 대한 전문지식과 탐험가에게 필요한 일반 수학적인 기술이 빛을 발해 신대륙 탐험에 절대적으로 기여하게 되었다. 양(洋)의 동서를 하나로 묶어주면서 그동안 분리된 동서양 신명세계의 길을 하나로 틔우도록 다리를 놓은 장본인은 바로 다름아닌 이들이었다.
뿐 만 아니라 그들은 유럽과 성지에서 그들의 모험을 시작한 바로 그 옛날부터, 예루살렘에서 주목할 만한 발견을 했다. 서양에는 템플라(Templar)들이 성배(聖杯)라든가, 계약의 궤(모세의 십계명 판을 넣은 궤)라든가, 그리스도 성체라든가, 세례요한의 머리라든가, 보다 덜 실체적인 보물을 발견했다는 풍부한 전설들이 수없이 많으며 이에 대한 최근의 책 만 해도 부지기수다. 보물섬에 대한 전설적인 무용담을 비롯해 서양인의 모든 관습과 문화, 사고유형의 특징을 결정지어 준 것은 바로 프랑스 필립왕 르벨에 의한 템플기사단 박해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작가인 크리스토퍼 나이트(Christopher Knight), 로버트 로마스(Robert Lomas)에 의하면, 템플라(Templar)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굴한 부장품들이 스코틀랜드 주도 에딘버러(Edinburgh)에 있는 로슬린 채플(Rosslyn Chapel)의 마룻돌 아래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나이트와 로마스는 이 저장땅굴이 기독교의 실제성격과 성서적인 중요성을 설명해 주리라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탐욕의 꿈을 넘어선 소중한 그러한 보물 은닉장소가 곧 있을 특종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한다. 고고학자를 동원해서 로슬린 채플의 마룻바닥을 들어내도록 허락을 받고 과거를 확인하면 사실은 즉시 밝혀진다.  

그러나 많은 기록과 다양한 보물이 한때 로슬린 채플 아래 놓여져 있었었다는 믿음에 대해 반론하나 없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것이 아직도 그 안에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전역에는 각종 부장품 에이전시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러한 자료, 보물들을 감추고 있는 은닉장소가 아직도 로슬린 채플의 옛 집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프랑스 남부에 템플기사단의 근거지로 알려진 한 작은 마을이 있다. 카타콤베의 마을로 수많은 미로형 동굴 주거지가 산재한 "랑느-르-샤또(Rennes-Le-Chateau)"라는 이름의 이 마을은 템플라(Templar)의 보물과 관련해 거의 10 여권 이상의 연구서에 이미 언급된 유명한 마을이다. 이러한 책 중 이에 대해 가장 상세히 언급한 책이 한국에서도 이미 80년대 초에 소개 된 적이 있었던 「성혈(聖血)과 성배(聖杯)(The Holy Blood and Holy Grail) Baigent, Leigh and Lincoln 著」라는 책과 2000년에 선보인 「신의 무덤(The tomb of God) Richard Andrews& Paul Schellenberger 著」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를 받은 바 있는 성배(聖杯)를 가지고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랑느- 르 샤또로 온 이야기라든가(이 무렵 유태인이 대거 유입되어 유태인 집단촌이 된다), 이 곳에 도착할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는 이미 예수의 아이들과 함께 임신 중이었다는 이야기, 사막의 여우 롬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킨 총독 빌라도가 만년에 이곳 "골(Gaul)" 지역으로 오게 된 일화, 이 곳을 점령한 북방의 메로빙가 사람들의 일화 가령, 다고베르(Dagobert) 2세가 비져가쓰 族(Visigoths:4C경 로마를 침략한 서고트족으로 이곳을 지배함)의 공주 랑느-르 샤또의 공주 지젤(Gizelle)과 결혼한 이야기, 메로빙 유력자들이 죽으면서 온갖 금은보화를 함께 매장한 이야기 등 풍부한 일화를 전한다.
이곳은 고래로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어 헤롯 안티파스, 폰티우스(본디오) 빌라도가 이곳에 유형 당한 것처럼 로마황제들이 유형지로 애용한 곳으로 험난한 역사 과정을 통해 유태인의 거주지인 "다이애스퍼러(Diaspora)"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마을에는 템플기사단의 보유지가 많이 있었으며 이 마을의 "블랑쉬포르(Blanchefort's)" 가문은 지척에 머물고 있는 가장 성공적인 그랜드 마스터 중의 한 사람에게 물자를 조달해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템플라(Templar) 자신들을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옛날부터 전해지고 있는 보물을 탐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일찍이 로마를 약탈한 비져가쓰 族(Visigoths:4C경 로마를 침략한 서고트족으로 지금은 루마니아에 있다)이 지배했던 곳으로 엄청난 약탈 보물을 비축해 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마도 템플라(Templar)들은 이 보물을 발견했을 것이며, 그 뒤로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더 이상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물과 관련된 주제의 연기는 그 뒤로도 모락모락 피어나 그것이 비져가쓰 族(서고트족)의 것이 되었든 아니면, 템플라(Templar)의 것이 되었든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최고사령부 마저 이 지역 곳곳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을 정도였다.      
"랑느-르-샤또(Rennes-Le-Chateau)"의 산이 감추고 있는 보물에 대해 오늘날 객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