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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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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명의 편작을 통해 본 동이족-동방(東方) 한의학(韓醫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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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東方) 한의학(韓醫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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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의 어진겨레, 동방의 큰 활 잘쏘는 겨레라는 뜻을 동이(東夷)의 겨레라합니다. 물론 동방은

중국의 동쪽, 특히 동북쪽을 지칭합니다. 중국인들은 동이를 뚱이라고 부르면서 "도둑놈" 또 "동쪽

오랑캐"라 부르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하를 중심으로한 신의(神醫)인 [편작]의술을 침구

의술의 대표로 여겨왔습니다.

편작의 어원은 산까치를 뜻하여 의학 사도의 편력(주류천하)을 말했으며

춘추전국시대 말기(전국시대)에 발해출신의 신의(神醫)가 바로 [편작]입니다.


편작의 의술은 투시, 예지(豫知)에 뛰어났다는데 어려서 기인(奇人)이 가르쳐준 선약(仙藥)을 먹은

후 내장속의 병명을 투시하고 외과적으로 마취시킨후 적출수술까지 단행한 중국지역의 의신(醫

神)에 속합니다. 고래로상서로운 기쁜까치를 숭상하는 겨레는 동이족이었습니다. 까치는 하늘과 땅

을 이어주는 신조(神鳥)입니다. 옛 중국 은나라시대의 의사들은 모자에 까치꼬리털을 끼어 직업을 표

시하였습니다. 근래 동이족의 후예중 대백제국이 경영하던 영토가 북중국(황하이북)만주, 일본까지

였다는 설도 있지만 동이족의(우랄알타이) 핵심지역은 발해와 백두산 부근 광대한 영역이었습니다.

앞서말한동방 동이족이 돌을 가지고 침과 칼을 만들어 외과의료 기구를 사

용했다는것은 황제소문(黃帝素門) 이라는 의학도교경전에 나타나 있습니다. 봉황새의 전설도 풍신

(風神)을 숭상했던 고대 은나라(동이족) 시대의 갑골문자(상형문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은 산동(山東)지방에도 그 일파가 있었는데 그들은 바람을 관리한 새에 대한 신앙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은 봉황새를 풍신(風神)으로 받들었습니다.
의학 사도(使徒) 로서의 편작(偏鵲)은 투시술에 밝았다하는데 그는 발해군 정(鄭)의 사람으로 성씨는 진씨(秦氏)이고 이름은 월인(越人) 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장상군(長桑君) 이라는 동해(海東)의 신선이며 뽕나무의 화신에게서 의술의 비결책을 전해 받고 초능력까지얻었는데 신비스런 약을 위못가의물로 복용하여 그후 투시술에 능하게 되어 뱃속의 오장육부를 투시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편작은 병의 순서가 피부-> 혈맥-> 내장-> 골수로 깊어간다 하는 것 까지 투시했습니다. 돈황에서

발굴된 [색신기]에서도 편작이 훌륭한 의사로서 전국을 두루 다니며 치료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는 B.C 307년 경에 산동성에 있던 제(齊)나라 출신 이라고도 전합니다.

발해 백두산 산동성은 동이족과 불가분의 깊은 관계가 있음은 여러가지 문헌에 사실로 뿌려져 있어

이란의 후예라고도 전하는 [화타]라는 고대 외과의사 보다는 발해 산동출신 이라는 [편작]이 우리

동이족에 가깝거나 일치됩니다. 편작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의술을 샤먼과 분리시켰을 뿐 아니라

엄연한 공학(工學)으로 과학화시킨 장본인 입니다. 즉 기술자로서의 자리매김을하여 [동이보감]에

나타나는 내경의학(內經醫學)이 바로 도교(道敎) 의학적 공의학(工醫學)에 근거를 둡니다. 편작의

훌륭한 의사로서의 인격은 궁정의학을 지키며 머무르지 않고 산동성 장청(長淸)-출생지-를 근거로

하여 제나라를 편력하며 서민들을 진료했고 국외로 탈출하여 공자, 묵자, 맹자, 소진과 같은 편력을

개시했습니다. 제-> 조(趙)-> 위(魏)-> 낙양-> 함양(진나라)로 편력은 확대 되었으나 항상 약자,

빈자, 서민을 돌보았습니다. 금전에 초연하였음도 나타나 오늘날 서울과 수도권의 H대 부속병원 에서

는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는데 안양 모 산부인과 에서는 가급적 산모에

게 제왕절개를 권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것은 산고를 피하려는 반자연적 산모심리에 편승한

축재(치부)술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편작은 서민이 고통을 겪는 부인과, 노인과, 소아과 같은

과목을 택했습니다. 당시 치료를 방해하는 요소로 환자의 교만과 고집, 몸보다 재산을 중요하게 여김

의식(의식)의 부조화된 섭생, 약한체질, 미신 등을 꼽았습니다. [영추경] 사전(師傳)편에 왕, 공작,

대인들이 방자하고 욕심이 많아 남을 업신여기니 병을 고치는데 장애요소라 한것과 편작의 의료

윤리와 일치 합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신의(神醫)로 모셔지는 갈홍(葛洪)

의 스승 갈현(葛玄)과 참동계(參同契)의 작가 위백양(魏伯陽)은 황하권이 아닌 백두산(혹 長白山)권

에서 수도하여 의학과 철학의 대가가 된것을 보아도 동이권 백두산족 즉 한문화권(韓文化圈)은 가히

한(漢)문화권의 스승이자 선배이며 원조(元祖)가 되었음을 웅변으로 말합니다.

특히 산동지방(山東地方)은 고대 은(殷)나라의 중요 발상지여서 발해와 함께 한문화(韓文化)의 요람

지 입니다. 그곳에서 신의(神醫) 편작이 출생한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도교 내경의학(內景醫學) 에서는 정(精), 기(氣), 신(神) 삼보(三寶)를 주장하여 형이상학적 외형을 지녔으나 의술이 샤먼(Shaman)이 아니라 기술공학(技術工學) 이라고 체계가 갖추어진 [편작]같은 대가의 노력은 후세의 [도교의공학]과 [동의보감] 이론의 모태(母胎)가 됩니다.

신의 편작의 범 중국대륙적 의료유세 편력은 혼잣만 한것이 아니라 제자집단과 함께 서민구제를 실시했습니다. 사마천 [사기]에서 자양(子陽) 자표(子豹)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자동(子同), 자명(子明), 자유(子游), 자의(子儀), 자월(子越)등 7명의 의료집단이 구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쪽으로는 제나라에서 서쪽 진나라까지 황하 전유역을 커버하여 소진(蘇秦)의 행동반경과

거의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의료집단은 기술이 주된 무기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작 일행은

기술자 집단인 묵가(墨家)의 사상과 행동을 닮은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묵가의 치료위생반은 주술성

(무당의사 : 점복을 취택후 약을줍니다)이 농후하여 편작의 입장과는 다릅니다. 묵자는 병의 천벌

원인설(天罰原因說)을 주장했습니다. 편작이 병을 대하는 관점은 의술을 공학적 기술로 보는 사상을

견지 했습니다. 후세에 편작을 봉안한 사당(廟)를 약왕묘(藥王廟)라 하여 편작 묘(墓)의 황토와 그

황토위에 자라고있는 쑥이 영험하다는 의료설화까지 전합니다. 황토숭배 사상이나 쑥을 숭상하는 사

상은 동이한족(東夷韓族) 문화의 특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한백제에서는 황토를 빚어 옹기로 관

을 만들어 지도자 상류층이 죽어서도 황토와 함께 영생하겠다는 의지를 단적으로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군사화(檀君史話) 에서도 쑥은 마늘과함께 나라의 개국 영약으로 일러져 오고 있습니다. 쑥

뜸마늘음식은 식품이자 약품으로도 뛰어난 최근의 대체요법(대안요법)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편작이라는 어원도 두루 세상을 편력하는 까치라는 뜻으로 [회남자:淮南子] [역위토부험:易緯通卦驗]과  같은 문헌 경전에도 까치가 미래를 미리아는 새로 묘사되어 있어 후세에 치료의 신인 편작의
병에 대한 예후능력을 암시하였습니다.

편작의 묘 부근을 파서 흑갈색 흙을 얻으면 병을 고치며 편작의  묘로 가는 길 양옆의 쑥은 의가(醫家)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영약 이라고 일러 왔습니다.

그것은 약이되는 묘의 흙 신앙으로 [포박자:抱朴子] 도의편(道意篇)에 보이는 고분의 "석회수"와 같

은 범주에 속합니다. 동이족의 역사중 은나라 시대의 바람(風), 물(水)에서 편작에 이르기 까지 산동

지방과 깊은 관계를 맺은것은 신선사상이 그 지방에서 발생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동양 신선

사상은 백두산권역, 발해권역 그리고 동이족 은나라의 본거지 산동반도에 그 발상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한서]예문지 의경(醫經)과 경방(經方)으로 나뉘는 의서는 방중(房中) 신선과 함께 방기

(方技)의 범주에 속했습니다. 방(方)이란 제사, 기도, 장생불사, 신선의술 같은 광범위한 요소를

포함한 기술을 의미하고 무당, 신선 의술은 원래 같은 뿌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신선술의 발생지

산동지방은 전술한바와 같이 편작의 고향이고 도교의학의 연원을 찾을수 있음직 한 곳이기도 합니

다.

원래 산동지방은 은나라 사람들의 세력하에 있었고 은나라의 갑골문자는 후대 금문(金文)으로 문자

언어학적 발전을 보였으며 한문(漢文)이 아닌 한문(韓文) 발음 기호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두

문자는 바로 갑골문자와 매우 유사하여 두가지 음이 합성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하이(海)가 해로

발음되는 것은 한문자(韓文字)입니다.


생명성 바람(風)기의 영력을 풍수 같은 것으로 응집시킨 샤먼(무속)과 생명의 연장(장생)을 구하는

방사(方士)와 인체에 깊숙하게 스며든 악령을 몰아내는 것을 책무로하는 의(醫)는 바로 공통지반과

기초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바람의 겨레 한민족은 바람쐬러 간다는 신통한 말을 만들었고 바람의

화신을 봉황새로 보았습니다.


신비하고 난해하다는 산해경(山海經)이 은나라와 발해권에서 오랜 세월동안 형성된 선가(仙家)와 도

가(道家)의 중요 경전이며 [산해경] 자체가 동양 본초(약물) 공부의[본초경:신농] 중추가 됩니다. 즉

본초학의 원류가 [산해경] 이라고 말할 수 있고 [산해경]의 서술 방식이 조선조 명종 시기의 허목(許

穆)-허미수-신선이 비갈문을 새겼다는 [동해척주비]와 맥을 같이 한다는 필자의 증명과 주장이 풍기

(風氣), 풍월(風月), 선도(仙道)에서 합류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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