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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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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캠퍼스에서 지켜 본 2004 大選 - 왜 예일대학이 미국의 대통령을 量産할까-68학번 부시와 66학번 케리의 싸움
캠퍼스에서 지켜 본 2004 大選 - 왜 예일대학이 미국의 대통령을 量産할까



  

250개 서클이 리더십 양성소…국가와 사회에 대한 봉사, 애국심,「돈보다 명예」를 강조하는 校風
  

  
올드 캠퍼스에는「네이선 헤일」의 동상이 있다. 예일大 학부생들은 매일 아침, 美 독립전쟁 때 『내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된 애국자의 동상을 보며 교실로 간다.

尹 禎 皓 美 예일大 박사과정  
  


68학번 부시와 66학번 케리의 싸움


<1997년 11월 조지 부시 대통령 도서관 준공식에 참석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 왼쪽부터 조지 부시, 빌 클린턴,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이들 중 카터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예일大 출신이다.>




  코네티컷州 뉴헤이번의 지난 11월3일 오후는 다른 도시들과 같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예일대학이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을 이끌 대통령을 또 배출했기 때문이다. 예일大는 법학 대학원 졸업생을 포함해 1974년 이후 네 명의 대통령─38代 제럴드 포드, 41代 조지 부시, 42代 빌 클린턴, 43代 대통령 조지 W. 부시─을 배출했다.
  
  1974년부터 2004년까지 30년의 절반 이상을 예일大 출신 대통령이 백악관을 지킨 것이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 모두 예일大 출신이다. 부시는 68학번, 케리는 66학번이었다.
  
  학교 캠퍼스 안에는 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現 부시 대통령은 예일大 캠퍼스 안에서 태어났다.
  
  「힐 하우스」 에비뉴를 따라가면 총장 공관 근방에 부시가 태어난 집이 있다. 아버지 부시가 태평양 전쟁에 복무한 뒤 뉴헤이번에 돌아와 자리를 잡았고, 부시는 이 집에서 탄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낯설게 들리겠지만, 미국 대학의 캠퍼스 안에는 개인 집들이 많이 있다.
  
  그곳에서 다운타운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배탤 교회가 나온다.
  
  아버지 부시의 上院의원 선거 낙선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아들 부시는 채플 시간에 들어갔다가, 예일大 校牧으로 反戰주의자이자 리버럴(Liberal)이던 코핀의 설교를 들었다. 코핀은 『기득권층인 부시(아버지 부시)가 낙선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후 아들 부시는 동북부 리버럴 主流 사회에 대해 깊은 환멸과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
  
  교회가 위치한 올드 캠퍼스는 예일大 학생들이 입학 첫해를 보내는 곳이다. 캠퍼스 길 건너에는 부유층 자녀들의 비밀결사 조직인 「스컬 앤 본스」와 조나단 에드워드 칼리지가 있다.
  
  부시는 부시 家門의 전통에 따라 비밀 결사인 「스컬 앤 본스」의 회원이 되었다. 운동과 학업 및 클럽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케리 역시 이 적갈색 건물에서 「스컬 앤 본스」의 멤버가 됐다.
  
  
  상대 후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역대 대통령들이 먹고 자고 공부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예일大 학생들은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까?
  
  大選 선거운동 기간 예일大 출신 두 후보에 대한 예일大 학생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관심은 높지만, 「우리 동문이니까」라는 의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學緣(학연) 중심으로 사회생활을 풀어가는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공화당 대학생회」 예일 지부의 회장을 맡고 있는 알나와즈 지와(이하 「알」)는 『예일을 찾아온 외국 특파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많이 들었다』며 『부시나 케리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했다.
  
  「민주당 대학생회」 예일 지부장인 니루팜 싱하는 『빌 클린턴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지만, 대통령이 다녔던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시와 하버드 졸업생 앨 고어가 맞붙은 2000년 선거 당시에는 예일大 캠퍼스 분위기는 지금과 비슷했다.
  
  필자는 2000년 大選 때 『우리 동문 부시를 지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선거 때만 되면 정파와 이념을 떠나 고등학교·대학교 동문회가 선거조직의 중추 역할을 하는 한국사회와는 큰 차이가 난다.
  
  공화당 대학생회 예일大 지부장 알은 부시의 再選운동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校誌인 「예일 데일리」를 비롯한 학교 언론에 부시 지지 논설을 싣고, 각종 토론회에 참가해서 공화당 노선을 지지했다.
  
  선거 막바지에는 뉴햄프셔州로 내려갔다. 뉴햄프셔 공화당 선거운동본부를 돕기 위해서였다.
  
  민주당 대학생회 예일大 지부장 니루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선거 최대의 격전지였던 오하이오州로 갔다. 생면부지의 오하이오 주민들에게 케리 지지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고, 선거 당일 민주당 지지 투표자들에게 투표소까지 교통편을 제공하는 일을 맡았다.
  
  선거운동 기간 중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편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민주당원인 니루팜은 『부시를 멍청이라고 보는 시각은 근거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부시가 知的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정치가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인 대중과의 친화력을 갖추었다. 한 번 세운 원칙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과정에서 신뢰감을 준다』
  
  공화당원인 알은 『부시의 적수이기는 했지만 케리가 채택한 정책 중 상당수를 지지했다』며 『특히 의료보험에 관한 케리의 입장에는 공화당의 공식 정책보다 귀기울여 들을 만한 요소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 모두 후보들의 정책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미국은 분열되었는가


  大選이 끝나고 나서 만난 두 사람은 미국 여론의 분열을 우려했다.
  
  니루팜은 『미국이 상이한 가치를 지향하는 두 개의 미국으로 나눠졌다』며 『兩黨의 초당적 협력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알은 『차기 대통령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갈라진 두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일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일大 안의 모든 정치서클이 소속되어 매주 토론을 하는 「예일 정치연합」의 회장 린지 블리스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두 정당의 공식 입장만을 듣고 있으면 미국이 극복하기 어려운 분열에 빠져 있는 듯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정서는 다르다』고 했다.
  
  멀게는 2000년 선거 이후, 가깝게는 개표 이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 사회에 치유될 수 없는 분열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분열상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아 보인다.
  
  스탠포드大의 모리스 피오리나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美 국민의 절대다수는 대결보다는 타협과 相生의 정치를 원하고 있다. 76%의 공화당원들과 87%의 민주당원 그리고 86%의 無당적자들이 모두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국민들 사이에 심각한 분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민주 兩黨이 실제로는 심각하지 않은 분열을 120% 이용하는 데 있다. 피오리나 교수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극소수의 정치 엘리트들과 그들이 이끄는 정당들이 국민들 사이의 의견 차이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일大 학생들은 두 기성 정당의 선거운동 방식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TV 광고가 선거운동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과정에서 후보와 유권자의 의사소통은 길어야 30초 동안 지속되는 자극적인 정치광고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중요한 이슈들이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린지 회장은 『중요한 유권자층들 중 하나로 떠오르는 히스패닉系의 눈치를 보느라 불법 이민문제가 충분히 다뤄지지 못했다』며 『교육과 에너지 문제가 쟁점으로 등장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했다.
  
  
  외교정책에 대한 공감대
  
  이번 선거에서는 첫째도 국가안보, 둘째도 국가안보였다.
  
  케리는 전당대회에서 자신이야말로 軍 최고 통수권자로서 적임자임을 보여 주려 애썼다. 경제 및 복지 정책을 강조해 오던 민주당으로서는 엄청난 변화였다.
  
  부시의 정치참모 칼 로브는 지난 11월7일 방영된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대담 프로인 「미트 더 프레스 (Meet the Press)」에 출연, 『선거 당일 출구조사는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가 국가안보 문제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했다.
  
  로브는 『출구조사 질문지의 구성이 잘못되어 도덕성과 문화 문제의 중요성이 과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질문지는 투표를 마치고 나온 시민들에게 도덕성,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戰, 세금, 경제문제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 투표 기준이었는지를 물었고, 그 결과 22%의 투표자들이 「도덕성 이슈」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로브는 질문지에서 개별 문항으로 처리된 이라크戰과 테러와의 전쟁을 합해서 국가안보 문제라는 단일 문항으로 처리할 경우, 34%의 투표자들이 국가안보 문제를 최우선으로 손꼽았다는 것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예일大 학생들의 생각과 통한다. 이곳 학생들은 부시 행정부의 對外정책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 발표 다음날 예일정치연합 토론회가 열렸다. 「美 국민들은 커다란 실수를 했는가」라는 주제 아래 학생들은 부시 행정부의 재정정책, 교육정책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한 학생이 『(영화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式의 비판은 삼가해야 한다』고 하자 모두가 공감을 표했다.
  
  이곳에서 만난 많은 학생들은 한결같이 3년 전 테러를 TV로 지켜본 경험을 들려주며 『9·11 이전까지 미국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9·11 이전의 미국과 이후의 미국은 다르다』고 했다.
  
  
  


  『너희 나라는 너무 건방지다』
  
  부시의 외교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지지와 공감대가 9·11 테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부시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를 견지해 온 뉴욕 타임스도 인정했듯 1기 부시 행정부는 무시할 수 없는 외교적 실적을 쌓았다.
  
  지난 4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일본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부시의 再選을 공공연하게 지지하고 나설 정도였다. 한때 「核전쟁」說까지 나돌았던 인도-파키스탄 관계도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舊바르샤바 동맹국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팽창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도 특기할 만한 업적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동맹국들로부터 「일방주의」로 비난받고 있지만, 부시의 對外정책은 미국 외교정책의 전통 위에 있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스탠포드大의 멜빈 르플러 교수는 『권위주의 정권을 전복시키고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시켜 평화를 꾀하는 정권교체 전략은 부시가 처음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부시의 전략은 「미국 민주주의야말로 全세계의 모범이다. 자유의 제국을 건설하자」고 주창했던 토머스 제퍼슨의 믿음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지적했다.
  
  멜빈 르플러 교수는 부시가 추구해 온 일방주의와 선제공격 독트린은 선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지 워싱턴은 퇴임사에서 유럽 국가들과의 동맹정책이 가지고 오는 위험을 경고했고, 1818년 앤드루 잭슨은 스페인領 플로리다를 先制공격했다.
  
  하지만 많은 예일大 학생들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해서 걱정하는 편이다.
  
  최근 독일·영국·인도를 함께 여행했던 알, 니루팜 그리고 린지는 『우리가 미국에서 왔다는 것을 밝히는 순간부터 「너희 나라는 너무 건방지다」는 비난을 들었다』고 전했다.
  
  니루팜의 얘기다.
  
  『미국을 비판하는 외국 사람들이 「미국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부시를 싫어할 뿐」이라고 단서를 달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부시 대통령과 미국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사람들의 주장이 진실인지 혼동된다. 미국 국민들의 과반수가 부시에게 표를 던진 이번 大選 이후에 부시 정부에 대한 반감이 부시를 지지한 미국 국민 전반에 대한 반감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된다』
  
  세 학생들은 反美主義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결국 미국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反美 데모를 벌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예일大 학생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미국內 진보적 지식인들의 주장을 미국內 主流 여론으로 전하는 한국 신문이나 방송의 태도는 위험해 보인다. 한국 언론의 보도만 보다 보면, 대다수 미국인들이 부시의 외교정책에 비판적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미래의 미국 외교정책 결정자들이 다수 배출될 이곳 예일大에서는 부시의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공동체에 대한 봉사」 중시하는 校風



  
  예일大가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리처드 레빈 예일大 총장은 한 방송 토크쇼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학부 과정이 리더십 양성 과정이 되도록 애써 왔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학과 과정 이외의 학생활동을 적극적으로 장려해 왔습니다. 학부 과정에 250개의 서클들이 있습니다. 250명의 서클 회장 또는 리더가 현재 활동하고 있고, 내년에는 새로운 250명의 회장 또는 리더가 탄생합니다. 새로운 서클을 창설하는 것이 적극 장려됩니다. 예일大에서는 학생들이 하나의 팀이나 조직에 소속되거나, 리더가 되어 공통된 목표를 향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예일大에는 국가와 사회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신성하게 여기는 校風이 있다.
  
  예일大 법학대학원은 학생들에게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학자와 행정가, 정치가 그리고 언론인이 되라』고 장려한다.
  
  총장 공관 옆에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校友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학교의 대강당인 「울시 홀」과 「커먼스 홀」(식당 겸 행사장)을 연결하는 흰 대리석 벽면에는 주요 전쟁에서 戰死한 예일大 출신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올드 캠퍼스의 한 구석에는 「네이선 헤일 (Nathan Hale)」의 동상이 서있다.
  
  예일大 1학년 학생들은 매일 아침 美 독립전쟁 당시 『내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영국軍에게 처형된 애국자의 동상을 보며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린지 회장에게 예일大와 다른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주저없이 『예일大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증진하는 데 공헌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다』고 대답했다. 알과 니루팜도 같은 의견이었다.
  
  예일大 학생들은 선배들과 교수들로부터 이렇게 배운다.
  
  『너희들은 지금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지금 누리고 있는 특권이 결코 공짜라고 여기지 말아라. 언젠가는 너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특권을 사회와 국가에 되돌려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예일大 졸업생들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직업을 마다하고 박봉의 공직에 자원한다.
  
  1년에 4만 달러에 가까운 학비를 내는 학생들이 취업박람회장에서 평화봉사단, 해외 교육봉사단 부스 앞에 긴 줄을 선다.
  
  한때 미국 보수주의의 牙城(아성)이었던 예일大는 오늘날 다른 많은 동북부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의 牙城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봉사」라는, 학교 설립 당시부터 내려오던 전통은 아직도 면면히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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